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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hard B Nov 21. 2024

방랑자주의보

여기저기 떠도는 인생, 한번 쯤은 괜찮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도는 삶, 한번 쯤은 살아볼만 한 것 같다.

마치 발에 귀신이 달린 듯, 무언가에 홀린 듯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삶은 독신을 선언한 삼십대의 독거남에게는 꽤나 그럴싸한 삶인 듯 하다.


승무원이라는 일을 하기 전에도 한 곳에 정착해 사는 것이라거나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나에겐 쉬운일이 아니었다. 무엇하나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거처를 옮겨다닐 만한 재력을 갖춘것도 아니었다.


한 가지 일을 시작하면 다른 일도 재미있어 보였고, 한 곳에 붙어 살기엔 세상이 너무 좁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딱히 하고싶은 일 조차도 없었으며 썩어날만큼 재산을 물려받을 인생도 아니었기에 어차피 죽기 직전까지 일을 해야하는 인생이라면 무엇이던 해보고 싶었다.


더군다나 20대부터 독신을 표방한 독거생활을 해온탓에 먹여살릴 처자식이 있는 입장도 아니었기에 자의적으로 부초처럼 떠다니는 인생을 자처해 이어오고 있는데 어느 날엔 시리듯 외롭다고 생각하다가 또 오늘 같은 날엔 꽤나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승무원일을 하면서 20인치 캐리어 하나와 28인치 캐리어는 항상 반쯤 채워져있다거나 반쯤 풀어져있다.

언제라도 비행을 위해 상시 지니고 다녀야할 물건들은 가방안에 쳐박아 둔채로 생활을 하고 세탁해입어야 할 옷가지들이나 교체해야하는 생필품들만 꺼내 갈아주고있다.


이 때문일까, 새로 입주한 홍콩의 집에서도 짐의 반은 풀러져있는가하면 다른 캐리어 하나는 손도대지 않았다.

큰 캐리어에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옷들이 제각각 뒤섞여있고 언제라도 야반도주에 적합한 '스탠바이' 자세로 일상을 살고있는데 이 자체가 나의 인생과 맞물려 톱니바퀴 돌아가듯 돌아가고 있다.



정서적으로 아직은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인생을 살고있는 나로서는 이렇게 정처없이 떠도는 삶이 때론 더욱 복잡한 심리상태를 조성하기도 하지만 때론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삶의 루트를 따라야한다는 사회적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특권을 주는 매체이기도하다.


희안하게 점집에 점을보러 가거나 철학관에 사주, 토정비결을 보러가면 용하던 사짜이건 모두가 입을모아 한다는 소리는 사주팔자에 결혼과 정착이라는 것이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물 건너 강 건너 여기저기 쏘다니는 팔자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정해진 팔자나 사주는 분명히 있는 것 같기도하다.


결혼을 너무나도 하고싶어하는 주변의 승무원 친구들은 적당한 배필이 나타나면 결혼을 구실로 이 직업을 내던지고 다른 일을 구해 오손도손 살길 희망하는데 나로서는 그 모습이 부럽다가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도 않는다. 뭐랄까, 스스로 불구덩이에 몸을 내던지는 모습이랄까.


정처없이 떠도는 삶은 초라하기 마련이다.

내 집이라고 번듯하게 집 한 채 마련해놓는 것이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어야한다거나 시간대와 생활환경이 수시로 변하는 것에 반 만 적응이돼 퀭한 모습을 달고다니는 경우도 다반사다.


오랜만에 만난 주변인들이 행색이 왜이러냐는 다소 무례한 질문에 장거리 비행다녀왔다는 핑계 하나면 만사 오케이인 생활패턴 덕분에 거지행색을 하고 나돌아 다니는 것이 다소 편리할 때가 있긴하다.

그러나 홀애비 소릴 듣고싶진 않아 이것저것 주워 걸쳐입고 덕지덕지 바르고 뿌리고 하는 일 또한 적지않다.


그러다 마흔이 되고 오십이 넘으면 이럴 기운이나 있을까 생각해본다.



인간혐오증에도 걸려있고 남에게 방해받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나로서는 좋아하는 강아지를 입양해 키우는 것 조차 꺼린다.


때론 지독한 외로움에 사무쳐 바로 옆에 36.5 도씨의 평범한 체온을 발산시키는 유기체를 끼고 살고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내 치를 떨어버린다. 그러다 내 형편이 조금 안정되면 작게나마 후원하고 뒷받침이 되어줄 수 있는 작은 존재를 지척에 두고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육시설을 차츰차츰 알아보기 시작했다.


무책임한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차가운 세상속에 던져저 쓸쓸히 자랄 미래의 양자 또는 양조카를 얻어 그들이 보지않는 곳에서 작게나마 후원을하고 그가 세상에 나오기 전 무대 뒷 켠에서 한 마디, 작은 용돈 한 푼 쥐어주며 내심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그런 대상을 물색하고 있다.


모진 세상풍파를 홀로 견뎌내게 될 그의 미래에 온전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따윈 일절없으나 그 바람에 실려 더 넓은 세상을 항해할 수 있는 돛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그저그런 삼촌 하나가 되어준다면 그 또한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보람찬 짓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기인한 생각이다.


역시 방랑자같은 인생이다.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내던져지진 않았으나 그와 상응하는 조건 속에서 나부끼며 살아온 나의 인생의 설움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옆에서 한 번의 토닥임으로 그들에게 손난로 정도의 온기나마 전해줄 수 있다면 서로가 조금 덜 외로운 방랑자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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