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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hard B Nov 15. 2024

서른 살의 걸음마

만 서른부터 인생 홀로서기를 비로소 시작하며 스스로 걸음마를 배웠다.

아이가 태어나면 보통 생후 1년 내외의 시점부터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다.

그러다 생후 18개월 무렵부터 제자리 뛰기를 시작하고 그 이후부터는 자유로운 걸음이라던가 뛰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그 보다 약 30년이 늦은, 만 서른 살이 되던 해 부터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여 이제 제자리 뛰기를 시도하려는 듯 두 다리 사방을 둘러싼 대근육이 마치 초 봄의 꽃봉우리가 꽃을 틔기 시작하려는 양 조금씩 움찔거리고있다.


부디 근육경련의 증상이 아니면 좋으련만...


하는 일 마다 풀리지 않는 것 같고 항상 제자리걸음 아니, 뒤로 퇴보하는 듯한 느낌을 늘상 받아온 인생이었다.

딱히 하고싶은 일도 없었으며 남들과 비교해 우월하다 할 만큼 잘하는 것 또한 없었고 늘 평범함 내지는 그 기준치 이하의 삶을 살아온 평생이었다.


집 안팎으로 인정이란 걸 받을만한 구석도 없었거니와 역시나 안팎으로 내세울만한 그 어느 것 조차 없었기에 평생을 그저그런 사람,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 아들로 살아왔었고 꿈 역시나 내놓고 꾸지 못할만큼 소심한 위인이었다.


내면과 배경이 불우했던 아이 치고는 웃음은 많았고, 사람들 앞에서 자발적인 '삐에로 놀음'을 하면서 사람들을 유쾌하게 해준다거나 웃음을 주는 그러면서 스스로도 즐거움을 찾는 다소 쾌활한 성격은 있었으나 집에 돌아오면 웃음기 조차 감추어야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고 대학을 가면서 집을 떠나와 비로소 내 성격대로 살아볼 수 있었다. 다만,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아성체 '코끼리'였기에 그 웃음의 이면은 항상 씁쓸함이 뭍어나왔다.


언젠가 하늘을 훨훨나는, 세상을 활보하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미소로 화답하는 승무원이라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싶다고 목표를 잡은 후 코로나19 팬데믹을 비롯한 여러 우여곡절 끝에 목표를 이루었고 한 발짝 더 나아가 대형 항공사, 소위말해 글로벌 대기업 항공사로 이직하면서 커리어적인 측면에서 최종에 준하는 목표를 이루었다. 만 5년이 걸렸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어중간한 길이의 굽이진 인생을 살아오며 처음으로 간절하게 가져본 목표를 이루었다는 것 하나가 굉장히 기념비적인 이벤트였으나 그 것을 자축하며 느끼는 기쁨은 그리 길지 못했다.

아니, 더 이상 절절하게 메달릴 무언가가 더 이상 없다는 것에 허무함을 느꼈으며 이 다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편집증적인 생각에 시달린 요즘이다.


마음 편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익숙지 않은 삶이기에, 내놓고 자유롭게 공짜로 꾸는 꿈조차 쉽사리 허락되지 않은 삶이었기에 무언갈 보란듯이 이루어낸 후에 대해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지라 그 다음으로 옮겨야할 내 발자국은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어중간한 위치에 가만히 서있다.


과연 어느 방향으로 발 걸음을 옮겨야 좋을까.



독신, 비혼주의 그리고 삼 십대의 독거남.

결혼을 약속하거나 같이 미래를 꿈꾸고픈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오, 먹여살려야 할 처자식이 딸린 처지가 아님에도 스스로를 삶 이란 멍에에 속박시키고 있는 내 스스로가 이해가되질 않는다.


그러다 내가 이루고 싶은 하루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당장 내년 이맘 때 즈음 내 통장 잔고에는 과연 얼마만의 돈이 모여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조금 더 여유로워진 표정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게될지를 상상하다가 그 것을 내 단기 인생의 목표로 일단은 잡아보았다.


약간은 희망찬 기분이다.

마치 땅에 뜨개질을 해 놓은냥 다닥다닥 붙어있는 홍콩의 닭장 아파트, 서울은 따라도 못 올 집 월세 그리고 고정지출을 어떻게던 줄여야 하겠기에 동료 승무원들과 돈을 보태 집을 함께 쉐어를 해야하는 이곳의 상황에선 언젠가 꿈꾸던 성공한 직장인 독신남의 멋들어진, 잡지에 나올법한 집을 꾸려 살기엔 역부족이다.


그러나 그만큼 고정지출을 아낀만큼 통장 잔고에는 어느 정도의 돈은 쌓여있길 바라본다.

9년 째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을 조금 더 좋은 것으로 바꾸거나 5년째 사용하고있는 핸드폰을 비교적 최신형으로 바꾸는 사치를 꿈꾸기도한다. 


가끔은 편의점 음식이 아닌, 제대로된 식당에서 방금 막 해 나온 따뜻한 음식을 한 끼 식사로 부담 없이 사먹길 바라기도하며, 애정가는 친구에게 뜻 밖의 선물을 턱하니 사 줄 만큼 인심을 쓰는 일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어처구니가 없을만큼 소소하고, 소소하다 못해 하찮음에 버금가는 행위를 나의 성공지표로 잡는 것이 살짝 서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금 까지의 삶의 모습보단 꽤나 여유로운 모습을 꿈 꿀 수 있는 내년일 것 이기에 그 마져도 나의 희망의 끈이라던가 나의 발걸음을 옮길 다음 방향이라고, 그것이라도 잡을 수 있었음을 또 하나의 위로 포인트로 스스로의 어깨를 토닥여주기로한다.



서른이 넘어 혼자만의 걸음마 수업을 시작하기 전 까지 한 시도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다.

그 동안 어지럽혀지고 가눌 수 없이 혼란스러었던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하는데 한 세월이 걸렸다.


수 많은 일을 해왔고 실패와 좌절을 맛 보았다.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것이 있었다면 영양가 없는 사람들과 모여앉아 밤 새 지독히 들이켰던 술과 담배였으며, 그 마저도 나를 채워주지 못해 음식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을 모조리 끌어모아 궁핍한 속을 채우고 게워내기를 반복했던 지난 세월이었다.


환난과도 같은 심리 상태는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밑 빠진 독으로 만들었으며 감정, 돈 시간을 채우고 모을 수 없게 하였다. 그토록 뼈가 빠지도록 일을 했으나 어째서인지 모은 돈은 항상 0에 수렴했으며 하루살이 신세를 면하지 못하였다.


그러다 생긴 목표라는 것을 만 서른에 겨우 이루어 내었으며,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제 막 인생의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이젠 내가 원하고 갈망하던 모습을 조금씩 이루어나갈 수 있는 삶의 여건이 주어진 것일까.


그러다 문득 생각을 해본다.

어째서 나의 인생에서, 나의 걸음 걸음마다 작용되는 중력은 남들의 그것보다 더욱 무거우며 강력하여 나를 걷지 못하게함은 물론이고 매 순간 주저앉게만 만들었던 것일까.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나의 심리적 관성의 법칙은 어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항상 역행하게 만들었으며 기울어진 지구의 자전 축 보다 더 기울어진 삶의 각도는 어째서 나를 이리도 비틀어지고 왜곡된 사람으로 만들었는지를 생각을 해본다.



나름대로 소소한 일상에서 약간의 행복이라던가 만족감을 이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화려하진 않아도 소담스런 하루속에서 내가 해야할일을 아무런 저항없이 이루어낼 수 있는 하찮은 하루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을 드디어 살게되었고, 쉬는 날 늦잠을 자거나 조금 늘어져있어도 괜스레 욕을 얻어먹지 않아도 되는, 죄책감을 더 이상 갖지 않아도되는 보잘 것 없는 여유를 갖게도 되었으며 그저 그렇게 굴러만 가는 것 같은 일상속에서 나의 패턴을 찾아 당장 해야하는 것, 조금 느긋해도 되는 것의 우선순위를 매기며 나의 속도에 맞게 살아갈 수 있는 것 등에 대한 만족감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장족의 발전이란 이런 것일까.


무언가 바빠야하고 바쁜것이 없으면 바쁜척이라도 해야했던, 눈치밥과 텅비어버린 공허한 속을 채우려 게워낼때까지 먹어야했던 '헛 밥'을 먹어야했던 그 어두운 시기가 점차 옅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쥐구멍같은 보잘 것 없는 인생에 이따금 포근한 한 줄기의 볕이 든다는 것을 아주 세밀하게 느끼기 시작한 요즘이다.


마흔 즈음에는 이러한 멍에와 같은 정신적, 마음적 속박을 완전히 벗어던질 수 있을까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조금 더 어린 시절에 이런 것들을 진작 알았더라면.

지금 보다 더 어리고 기운이 더 넘쳤던 이 십대의 시절에 이러한 것들을 깨닫고 느껴 나를 조금 더 돌볼 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억울한 생각도 잠시 스쳐간다.


한창 꾸미고 예쁘고 인생에 단 한번 뿐인 꽃보다 아름다운 이십대의 시절을 더욱 활기차게 보냈더라면 지금 쯤 내가 마흔에 이루고자 하는 상당수의 모습을 벌써 누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해본다.


나는 날고있다.

정확히는 나는 일을 하고있다.


수 백명의 승객을 태우고 말 그대로 세계를 누비고 다니고 있고, 한 달이면 수 천명의 사람들을 어우르고 세계 곳곳으로 날아다닌다.


그러나 진짜 나는 이제 걸음마를 떼었다. 

진짜 나는 당당하게 걷고 뛰고싶으며 마침내 날면서 나의 우주를 자유로이 활보하고싶다.


매 순간 팽창하고 거대해져가는 나의 우주에서 자유로이 유영을 하는 그 날을 가만히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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