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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hard B Nov 14. 2024

결핍 없는 삶은 없다지만...

결핍에 대한 수치심과 공허함은 어느 새 나이든 불만족자를 낳았다.

태국의 코끼리 쇼 장(場)에서는 야생에서 잡아온 아기 코끼리의 발목에 족쇄를 채워 키우며 도망을 가지 못하게 한다. 훗날 이 코끼리는 집채만한 성체가 되었음에도, 그 족쇄를 파괴할만한 힘이 있음에도 도망을 못가는 어른 코끼리가 되어 여생을 서커스장에 갇혀 보내게된다.



삶이 발에 걸릴 때 마다 인생을 돌아보는 특이한 버릇이 생겼다.

앞으로 더 나아가게 한다거나 어떤 일이나 성과를 쟁취하게끔 힘을 주는, 어떠한 반추할만한 동기 또는 동력이 아닌 결핍으로 다져지고 뭉쳐진, 일그러진 자아를 돌아보는 꽤나 불쌍한 버릇이다.


자아에 대한 결핍, 그 결핍에 대한 창피함과 수치심이 내면에 깊이 자리잡아 스스로를 감추고 숨기고 싶은 존재로 만들었으며 그 모든것을 가리기 위해 억지스럽고 우악스럽게 무언갈 취하려했고 손에 잡고자했다.


매 번 그 크고작은 욕망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더 많은 결핍을 안겨주었고 어느 새 무엇 하나 작은 것에 만족감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성년이 되었으며 이내 그 마져 내려놓게된 서른 중반의 남성이 되어버렸다. 


세상과 우주의 중심이 '나'라는 존재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몇 달 되지 않았으며 인생이라는 우주에서 빛한줄기 들지 않는 칠흙같은, 아니 그보다 더 어두운 절대암흑 속의 우주공간에서 어떠한 삶의 목적을 찾기위해 우주유영을 서른 해를 넘기도록 해 오면서 아무런 중력도 자기장도 어떠한 형태의 에너지도 닿지않는 그 암흑천지 속에서 결핍이란 존재와 그로 다져진 유년시절을 내던져버리는 것은 만 도씨에 달하는 태양의 뜨거운 홍염에 몸을 태우는 것 보다 고통스러웠다.


평생을 마주했던 그 결핍 그리고 그 결핍이 낳은 욕망과 욕구불만, 그러한 욕망으로부터 도망을 쳐야만했던 지난 세월이 너무나 야속하며 그러한 어려움으로 이십대를 몽창 송두리째 날려버려야 했던 것들을 생각하면 욕지기가 나올 정도로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


소용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고, 쓸모짝에 없는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적어도 하루에 서너번 정도는 나와 피를 나눈 가족들이라는 존재들에 대한 증오감이라던가 나를 세상의 빛을 보게해준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일종의 혐오감은 여전히 내 발목을 잡아 비틀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내 자신의 관성의 법칙을 거스르는 반자연적인 현상을 선사한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자아라는 감정에 대해 뿌옇게나마 인지를 하기 시작했던 다섯 살 무렵부터 기억하기를 어떠한 행위에 대한 반대, 제약과 제한 그리고 대부분의 행동을 저지하는 고성과 욕설이 나의 유년시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있다.


이를테면 가족이란 사람들과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자리에서는 말 한 마디 할 수 없었으며, 유치원생 다람쥐반이었던 다섯살의 나는 밥상머리에서 몇 마디 거들었다 아버지라는 사람에게서 욕설을 이유없이 그러나 매우 자연스럽게 들어야하는 것이 일상이라던가, 일을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싸가지없이 밥을 축낸다'는 둥 주말 아침 늦잠을 자는데 고성을 지르며 한 두시간의 달콤한 늦잠을 자는 것 조차도 제한받았었다.


이럴 때 나라는 존재를 보듬어주어야했던 어머니라는 존재는 '눈치 좀 있어봐라' 라는 소릴 한다던가 그저 모르쇠로 방관을 했던 것이 일상이었다. 


그렇게 나는 일곱살의 나이에 그러한 애정과 관심에 대한 결핍 증상이 심해져서인지 식이장애를 가졌고 그 버릇은 스무살무렵까지 나를 괴롭혔다. 공허한 속을 채우기위해 목적과 의식없이 음식물을 마구 채워넣다가 몸이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를 게워내는 고통스러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알 수 없는 이유의 결핍으로 다져진 나의 얼룩진 유년은 스스로를 어떠한 욕망의 대상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으며 그것이 곧 미덕이 되어야하는 시절이었다. 그렇게 성년이 된 나는 부모라는 존재 그리고 그것들을 매 분 매초 일깨워주는 가족이라는 존재의 그늘로부터 멀어졌을 때 조금씩 수그러 드는 것 같았으며 결핍에 대한 공허함 그리고 그로부터 스스로를 옥죄는 수치심과 같은 감정들 또한 옅어졌다.


그렇게 감정의 홀로서기를 시작을 했고 그렇게 한 발자국씩 떼기 시작했다.

나의 걸음마는 이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시작이 되었고, 서른이 곧 넘어서 아장아장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코 끝시린 십 일월 중순이 넘은 지금, 그 어린날의 그리고 더 철이 없었던 유년의 결핍으로 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지길 기도한다. 그 결핍이 짓눌러 제대로 성장치 못했던 나의 자아가 더 성숙해질 수 있기를, 발목에 채워진 족쇄를 힘껏 뿌리치며 성장의 걸음마를 뗼 수 있는 서커스장 바깥의, 드넓은 초원의 성체 코끼리의 모습을 하고있는 내일의 나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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