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외로움이란 꼬리표를 주렁주렁 달아버린 나의 삶
비혼주의, 삼 십 대, 외국인 노동자, 승무원. 어느 하나 외롭지 않은 꼬리표가 없다.
향수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향수는 있다. 아이러니함이 잔뜩 묻어있는 일상에서 그것과 멀어지려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간혹 늪에 빠진 것처럼 더 깊은 향수와 외로움이란 심연으로 가라앉을 때가 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내가 삶에 있어 가장 경계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누군들 외롭지 않겠는가. 결혼을 하여 오손도손 화목하게 가정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 또한 인간으로서의 삶에서 외로움을 느낄지 언데 독신으로 타국살이를 하고 있는 나는 과연 어떻겠는가.
외로움에 대해 차마 신경을 쓰지 않고 살려고 해도 문득문득 내 도처에 도사리고 있으면서도 가장 경계하는 대상이 이 외로움이다. 무료함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외로움으로 자리 잡아 나의 내면과 외면에서 나를 좀 갉아먹는 이 비련 한 감정은 참으로 친숙하면서도 낯설다.
비혼주의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너무나도 경계해서일까, 연애라는 것을 다시금 해보고 싶다가도 그것을 주저하게 된다. 오로지 외로움 때문에 연애라는 것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가도 또 한 번 뒤돌아보게 되고 서른이 넘은 나이에 비혼이라는 꼬리표까지 달았으니 누굴 만나는 것이 퍽이나 부담스럽기도 하다.
뭐랄까, 상대방의 시간이라던가 감정을 헛수고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 이외에도 괜한 연애로 나의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방어적인 생각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겠지?
그렇게 누군갈 만나는 것에 대해 자의적으로 거리를 두다 보니 당장 눈앞에 꽤나 괜찮은 사람이 나타났을 때 더욱 진취적으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고 낯설어졌다.
호주, 싱가포르 그리고 홍콩.
다년간 외국살이를 해오고 한국에 지낼 때에도 먹고사는 문제에 치이고 짓눌려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을 지내본 적이 없어 내가 발 붙여 살고 있는 터전을 숨 돌리며 둘러 본일이 잘 없는데 요즘에 들어 향수라는 감정을 짙게 느끼고 있다.
얼마 전 싱가포르에 비행을 갔을 때에는 고향을 방문하는 느낌이 들었으며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딱히 그곳에서 기염을 토할만한 행복한 기억이라던가 아득한 그리움이 있는 나라는 아니었는데도 그러했다.
베이징 비행을 갔을 때에는 서울과 같은 위도에 있는 나라인 탓에 쌀쌀한 11월의 공기를 마주할 수 있었는데 한국이 너무나도 그리워,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코끝 시린 그곳의 가을과 겨울날씨가 그리워 모두 다 접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잠시 했더랬다.
물론, 한국에서의 인생 또한 삶을 돌아보게 할 만큼 그립다거나 유의미하게 행복하지 않았었지만 말이다.
빌라촌 귀퉁이에 얼기설기 얽혀있는 전신주의 전기선이라던가 그 밑에 자리한 붕어빵 와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 24시간 취객들로 북적이는 먹자골목, 쿰쿰한 청국장. 내가 현재 그리워하는 한국의 전부이다. 조금 더 보태자면 가끔씩 만나 술 한잔 마시는 친구들, 저렴한 술 담배 가격에 흥청망청 취해버릴 수 있는 유흥환경.
뒤에 남기고 온 연인이 있는 것도, 멀쩡하게 살아있는 가족들이 그리운 것도 아닌데 그 땅이 그리운 것은 단지 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일까.
비혼주의임에도 결혼이라던가 허름하나마 울타리를 이루어 누군가와 함께 사는 상상을 종종하곤하는 요즘이다.
살면서 내가 생각하는 범주내에서 정상적으로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부부들의 모습을 단 한쌍도 보지 못했기에 결혼이라는 것에 대한 로망이라거나 인식, 필요성을 전혀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서른 하고도 몇 해를 넘긴 인생이다. 태어나서 가장 처음 마주하는 부부의 모습이 부모라는 존재였기에, 그런 눈물과 멍으로 얼룩진 모습이 내가 가장 마주해야했던 부부의 모습이었기에 결코 결혼이라는 단어와 그 모습은 내 인생의 사전에서 지워진지 오래다.
그 외에도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과 젊은 부부들에게 강요하는, 우리가 강요당하는 필요이상의 헌신과 희생이 너무나도 골치아프기에 그런 불행한 모습으로 내 인생의 잔여시간을 때우고싶지 않았기에 과감히 포기해버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나의 외로움을 달래야할까.
결혼을 하거나 연애를 해도 외로운것이 인생이라고 하던데.
그래, 진한 연애를 했던 몇 해 전에도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간혹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었고 무한하고 깜깜한 검정칠한 우주공간 속에서 덩그러니 목적지 없는 우주유영을 하는 나의 모습을 종종 보기도 해왔으니 어쩌면 인간이란 존재는 외롭기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이번 주 내내, 그리고 이 달의 마지막 주는 죄다 휴무이다.
한국에 다녀올까 생각을 하면서 이내 결정은 못한 채 고민만 하고있다.
몇 달 만에 한국엘 들어가도 본가엔 얼씬도 않을 작정이다. 애초부터 부모형제 조카들까지 줄줄이 가족이란 존재들이 두 눈 퍼렇게 살아있으나 환영이라는 것을 받아본적 없는 나이기에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고향에 찾아들어갈 엄두도 내지않는다.
그렇다면 친구들을 만나 거나하게 술 판 벌여 술을 마셔볼까 생각도하다가 또 이내 마음을 접어본다.
그냥 어디 저렴한 숙소하나구해 생각나던 청국장 한 그릇에 소 주 한병 마시고 유유자적 한 며칠 시간을 보내다 올까 생각을 해본다.
짙어지는건 향수가 아니라 그저 외로움이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