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의 다른 이름은 집착이다

번뇌를 벗어던지기 위한 서른 셋의 첫 걸음마, 두 번째 걸음 내 딛어보기

by Richard B

불가에서는 마음이 평온치 못하며 어지러운 상태를 흔히 번뇌라고 한다.

이는 집착과 미움, 시기, 질투 등에서 시작하여 온전치 못한 불편한 마음상태를 갖도록하는데 나의 번뇌는 과연 어느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고자하며 번뇌퇴산을위해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한 요즘이다.


창졸간에 친구 셋을 연달아 잃으며 죽음앞에 느껴지는 허망함이라던가 어떠한 애석함이 그 한 몫을 했지만 어느 순간 빛 한 점 없는 것 같은, 어두운 알껍데기 속에 갖혀사는 것이 너무나 실증이 났다.



문득 구질구질한 나의 모습이 싫어졌다.

무언가 알 수 없이 때 낀듯한 나의 모습, 애써 밝은척을 한다거나 스스로를 광대로 앞장세우며 억지로 웃음짓는 그런 모습들에 대해 난데없이 신물을 느꼈다.


그러나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내 모습을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인냥 그 다른 모습을 한 채로, 맞지 않는 남의 옷을 입은 모습으로 살 수 는 없는 노릇인데 그럼에도 수심깊은 나의 내면에 한 줄기 빛이라도 쬐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요즘이다.


얼마전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가 내가 살던, 나의 터전이었던 땅에 발을 딛으며 많은 일을 겪고 돌보며 알 수 없는 생각들에 잠식되어 있었더랬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음에도 뭐 하나 남아있지 않은듯한 그런 씁쓸하고 공허한 마음이 컸으며 그런 나의 현재의 모습이 꽤나 안쓰러워 보였으며 여전히 그 허공에 발 길질 하듯 사는 나의 모습에 애처로움을 느끼며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스스로에게 좀 더 보태주어야 안되겠나 하는 깊은 생각을 했다.


거의 연락을 끊고 살다시피 하는 엄마가, 난데없이 연락을했다.

내가 한국에 들어온것을 모를텐데 어떻게 내 한국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문자메시지 한통과 부재중 통화 두 통을 남겼다. 그 문자는 여전히 읽지 않았고 홍콩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그 전화에 회신을 해주지 않았다.


위급한 상황이 펼쳐졌더라면 역시나 연을 끊고 살다싶이하는 동생들 중 누군가 연락을 남겼을 테지만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큰일은 아닌 것 같단 판단을 내렸다.


엄마라는 존재는 내가 한국에 살고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텐데 왜 굳이 내 한국 전화번호로 전화를했을까? 그 생각을 기점으로 가족에 대한 수 많은, 끝 없는 생각을 이어했다.


그러다 언제나처럼, 매 번 그래왔듯 욕지기가 날 것만 같은 과거사를 끝 없이 후벼파게되었고 반자동적으로 악몽과도 같은 기억들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다 몸서리를 쳤다.


과연 나는 이 멍에와같은 어둡고 축축한 기억에 얼마나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어야하는 것일까.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 만큼이나 어렵다고한다.

차라리 사랑을 하는 감정은 내가 가진 것 무엇하나 내주지 못해 안달이 난 감정으로 무한적으로 주기만하면서라도 나의 만족을 찾는 희생적인 과정인데 미움은 상대에게 주었던 살 한 톨만큼의 감정까지도 거두어오면서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있는 미움이란 감정을 한 없이 내주어야하는 골치아픈 과정임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나의 어리석음은 나를 항상 괴롭게한다.


글쎄, 누군가의 죽음마져 갈망할 만큼 사람을 미워해본적은 없으나 나를 괴롭게하는 일들을 끊임없이 뒤적이며 아픈 나의 감정들을 항상 어루만져야하는 나의 어지러운, 환난같은 마음을 돌보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고있는 요즘인데 그것이 참 쉽지않다.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은 것 같다.


언제나 이러한 심연같은 어두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가슴아린 아픈 기억에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길, 단단한 고치속에 자리잡고있는 나라는 어리석은 번데기는 언제나 이 껍질을 깨고 따뜻한 볕에서 두 날개를 펼 수 있을까.


봄이오면, 따뜻한 볕이 내리쬐는 봄이오면 그런 추운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질까.

누군가에 대한 미움을 거두고 사랑이라는, 내주기만할 뿐인 그 감정은 새 생명을 잉태하는 과정만큼이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짓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 여정이 너무나도 가시밭길같다.


창졸간에 죽어버린 친구들이 현재는 편안한지 그 안녕이 궁금하다.

두 손에 잡은 것 하나없고 제대로 무엇하나 쌓아놓은 것 없는 빈털털이 나의 인생, 언제 끝나도 아쉬울 것 하나 없는 허상 투성이인 이 인생이 그들의 끝과 맞바뀌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섬짓한 생각도 해본다.


죽음과 삶의 한 끗 차이인 삶이라면 무거운 마음 좀 털어내고 자유롭게 살 수도 있을텐데 왜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죽기보다도 어려운것인지 스스로에게 또 반문하는 오늘이다.


이런 작업들의 결과물은 언젠가 내 발에 스스로 채운 족쇄라던가 평생을 뒤짚어 쓰고있는 오물같은 멍에를 벗겨줄만큼 찬란하길.


keyword
월, 목, 일 연재
이전 18화11월의 초상과 함박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