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완행열차 안에서

동화같은 배경을 뒤로한채 속으로 숨죽여 눈물지어야 했던 한 겨울의 스위스

by Richard B

만년설 뒤덮힌 알프스 산자락의 그림같은 모습과 옥구슬을 자루째 쏟아놓은듯 한 영롱한 호수, 찬란하게 쏟아지는 겨울 볕을 무대로 속으로 삭여야했던 나의 설움과 슬픔이 곧 다가올 봄엔 눈 녹듯 사라질 수 있길.

만고동토(萬古凍土)처럼 자리잡아 내 목을 휘감고 있는 끄나풀이 내년 봄 바람엔 저 멀리 흩날리길.



얼마 전 스위스 취리히로 비행을 다녀오며 그 유명하다는 스위스 기차여행을 다녀왔다.

무미건조한 감정을 달고사는 요즘 이 건조함을 덜어낼 어떠한 자극이 극심히 필요했고 장엄하게 펼쳐진 대자연이 해결책이 될수있다는 생각에 없는 형편에 쪼개고 쪼개어 스위스 취리히에서 인터라켄으로 향하는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작년까지는 이렇지 않았는데 올해들어 하루하루 권태로움과 알 수 없는 무력감에 지배당해 많은 것들을 억지로 쥐어짜듯 해야만하는 일상이 너무도 벅차 이런 권태로움을 덜어낼 수 있는 어떠한 장치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는 어느정도 도움은 되었지만 그 이면엔 또 풀어낼 이야기 보따리가 숨어있다.


취리히에서 출발한 기차가 루체른 즈음에 다달았을까, 익숙한 한국어 음성이 쏟아진다.

귀에 꼽았던 이어폰의 음악을 살포시 줄이고 이들이 무엇을 속삭이나 가만히 들어보았다.


그들의 대화를 듣자하니 경상도 지방의 모녀가 스위스로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친구같기도 자매같기도 한 그 둘의 모습이 퍽 정겨워보였다. 사람이 많지않은 열차칸에 편안히 앉아 간식거리를 까먹으며 미주알 고주알 주고받는 그 대화주제가 너무나 사소해 웃음이 날 지경이었고 퍼질러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나 우리네 모습같아 반가웠으며 그들이 주워먹고있는 열차칸의 간식이 너무나 토속적이라 내가 스위스에 와있는지 청량리발 정동진착 새마을호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이내 이어폰에 흘러나오는 음악을 꺼버리고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본다.

올해 김장이 어땠고 고춧가루값이 어땠으며 누구네 딸이 시집을 가는데 그 시댁이 어떻니 저떻니 본인들집의 대소사부터 동네에 펼쳐지는 사건사고를 하나부터 열까지 늘어놓는 그 모습이 매우 정겨웠다.


아니, 그들의 대화 주제보다는 그 모습이 너무나 반가웠을것이다.

오랫동안 해보지 않았던, 아니면 거의 해본일이 없는 그 모습이 너무나 반가워 나는 언제 저래보았는지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이윽고 동화속에서나 나올법한 풍경이 펼쳐지고 온갖 주제에 대해 신랄하게 떠들던 그 모녀는 연신 핸드폰 카메라를 쳐들고는 사진과 동영상을 번갈아 찍어대기 시작했고 엄마는 딸에게 딸은 엄마에게 죽기전에 본인들이 소망하던 스위스 여행을 건강할 때 하게되어 행복하다, 고맙단 얘길 서로 어깨에 각자의 머리를 포갠채 사랑을 속삭였다.


마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젊은 남녀의 육체적 교합을 마주하기라도 한 듯한 얼굴 화끈거림에 그 장면을 못본척하며 다른칸으로 옮겨 탔다 내가 가야할 목적지에 도착도 하기 전 룽게른이라는 역에 내려버렸다.


그냥 내려야할 것 같았고 마침 눈에 들어온 그 동네의 모습이 꽤나 근사해보여 그 곳에 내려 투박하나마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그 마을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운명에 이끌린 사람처럼.



무엇이 문제였을까.

다정한 모녀의 미주알 고주알 재잘거리는 이야기를 훔쳐듣다 다정하고 애정넘치는 그 모녀의 모습을 왜 낯이 화끈거리는 느낌을 받으며 피해버렸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겐 익숙치 않은 모습이라 그런걸까 아니라면 내 마음 속 깊숙히 나도 나의 가족들과 저런 짓거리 할 줄 아는데 하는 시기심에 그랬던 것일까.


그렇게 계획에 없는 동네에 내려 만년설이 뒤덮힌 이름 모를 알프스 산자락의 끝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다 옥구슬을 자루째 쏟아놓은 것 같은, 바닥을 알 수 없는 룽게른 호수의 밑바닥이 어디까지 내리뻗쳐져 있을까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가슴 한 켠엔 그런 다정하고 애정이 넘치는 가족의 모습에 대한 갈망이 자리잡혀있나보다.

늘상 함께 움직이면 싸우고 욕하기 바쁜, 누구하나 토라져 씩씩거리며 침묵속에서 서로 눈치보며 이동하기 바빴던 우리 가족들의 모습들과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에서 찾고 싶고 갖고 싶은 그 모습에 대한 갈망이 다른의미로 내 숨을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내가 죽기전에, 아니 나의 부모라는 존재들이 죽기 전에 그런 모습을 가식으로라도 한번 쯤 연출해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이내 몸서리를친다.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아.'


이번 비행에는 연차 지긋한, 나와 근 열 살정도의 터울이 있는 한국인 선배가 부사무장으로 함께 비행을 했는데 그녀는 스테이가 긴 이번 취리히 비행에 부모님을 모시고왔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참 대단함을 느꼈다.

세상에 꽤나 많은 사람들이 다정한 가족, 집 코 앞 식당이 아닌 어느 먼 곳으로 여행을 함께할 만큼의 친밀도를 가졌구나 하는 생각에 감탄을 멈출 수 없었다.


감히 그 짓을 해 볼 엄두조차 나지않는다.

본인 성에 내키지 않으면 성질대로 욱하고 상대가 누구던 욕지거릴 날리고 상대에게 보란듯이 가족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는 아버지란 사람이랑 동행해 어딘갈 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런 상황속에서 눈칠보며 엉뚱한 행동들로 불난집에 석유를 들이붓는듯한 액션을 취하는, 때로는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해 죽을 것만같은 엄마란 사람이랑 함께 어딜 가는 상상을 더 이상 하질 않는다.


나란 사람의 존재에 대해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 동생이란 존재들과 어울려 어딜 함께한다는 생각은 어느 순간부터 포기를 해왔기에 머릿속에 희뿌연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의 끝을 가만히 상상해보았다.


애증의 표상이 되어버린 나의 부모가 나이가 더 들어, 노쇠해져 유명을 달리한다면 이런 그림같은 배경의 장소로 가족여행을 할 수 조차 없을 것이며 내가 보았던 그 다정한 모녀의 모습은 그저그런 남의 모습, 이루어질 수 없는, 이루어지지 않을 나의 상상속의 일로만 평생을 남겠지.


지금도 나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쌀 한 톨의 반 만큼 보다 더 적은 의미로 생각하는 나의 동생이란 인물들과의 관계는, 부모의 죽음 이후엔 그들의 삶이 이 땅에 무(無)로 자리잡은 것 만큼이나 존재하지 않겠지.


괜히 억울하고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르지 않는 눈물이 눈에 가만히 고였다.


오랜만에 눈물이라는 것을 생성했던 것 같다.

근래들어 무미건조하다는 감정과 말을 입이 마르고 닳도록 하고 살았는데 이딴식으로 건조함을 달래야한다는것이 기가막혀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너털웃음 한 번 내뱉어 내고 터덜거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또 잠을 이루기 어려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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