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천애고아(天涯孤兒)

차마 느끼고 싶지 않았던 감정을 마침내 느끼고야 말았다.

by Richard B

주위에 돌봐줄 핏줄 하나 없는 아이를 천애고아라 부른단다.

가족에 대한 적개심이라던지 증오심이 자리잡은 언젠가부터 나는 부모도 형제도 없는 고아라 우스갯 소릴 했는데 이것이 정말 실제가 되어가고있는 중이다.


슬플 줄 알았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고 편안했다.

나는 정말 못된 '천애고아'인가보다. 부모형제의 가슴에 박힐 대못같은 못된말을 수도 없이 내쏟고싶다.




이틀 전 난데없이 엄마라는 존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다시금 한국을 떠나온지 반 년이나 지나서 온 문자인데 반갑다거나 놀랍다거나 하는 감정보다는 '누가 죽었나?' 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그러한 긴박한 이벤트가 아니고서야 연락이 올 것 같지도 않았고 생전 먼저 연락이라곤 잘 하지 않는 존재들이기에 뜻밖의 연락이 몹시 부자연스러웠을 뿐이다.


저녁 아홉시나 되었나?

핸드폰을 붙잡고 누워서 인터넷을 뒤적이고 있는데 핸드폰 화면 상단에 메시지 알림이 뜬다.

지난 반 년 동안 받아본적 없는 사람으로 부터 온 메시지 알림을 보고 등줄기가 시큰해졌다.


요양원에 들어가있는 외할머니가 임종을 맞이했다거나 가족이라는 사람들 중 누군가 사고를 당했거나 하는 메시지일 것이라 생각을 했고, 그러한 사건들 역시나 크게 궁금하지 않아 문자를 굳이 확인하지는 않았다.


7년 째 사용하고 있는 핸드폰이 얼마나 골칫덩이인지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려다 엄마가 보낸 메시지를 '실수'로 열게되었고 뭐라 잔뜩 보내져온 장문의 메시지를 읽을까 그냥 지워 버릴까 하다가 하는 수 없이 읽어보았다.


'지난 일은 묻어버리자', '밥은 잘 먹고 다니니','회사 생활은 어떻니' 같은 몹시 상투적인 내용들이다. 나는 어떠한 감정의 동요가 없이 문자메시지 창을 닫아 버렸고 친구와 하고있던 문자를 이어갔다.


그리고 나는 분노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녀의 '지난 날을 묻어버리자' 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30년이 넘도록 쌓인, 부모와 가족이라는 대상들을 향한 나의 분노를 없는 것으로 치부하자는 것인지, 그들에게서 받은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없는 것으로 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마음과 정신, 몸의 곳곳에 남겨진 어떠한 상처들, 흉터들을 없는 것으로 하자는 것인지, 나의 마음과 몸에 차마 다 담을 수 없어 폭발을 해야만했던, 백정같이 천박한, 가족과 부모를 향한 나의 난동을 없던일로 하자는 것인지 그 주어와 목적어가 너무나도 불분명했던 것에서 분노를 느꼈다.


30년이 넘도록 들어왔던 모욕적인 언사와 육체적, 정신적 학대, 바닥을 뚫고 깊이 조차 알 수 없는 심연속에 갖힌 나의 낮디 낮은 자존감과 한 껏 꺾여진 자신감, 느껴본 적도 받았다고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는 사랑과 애정이란 그러한 감정들... 뭐 하나 가족에 대한 소중함과 존재의 이유와 가치조차 느낀적이 없는 나에게 이제와서 이런 말들을 한다는 것이 과연 무슨소용이란 말인가.


안다.

그녀 또한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밤 잠 까지 설쳐가며 나에게 이런 문자를 할까 말까, 어떤 말을 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란걸. 그러나 그것이 나의 생각을 변화시키는데 어떠한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외려 나는 그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들로 내가 받았던, 느꼈던 것 보다 더 크고 깊은 상처를 내주고싶었다.


나는 항상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이 소원이었던 사람이고, 가능하다면 그들 앞에서 처참히 무너져내리며 고통에 신음하다 죽는 것이었는데 지나치게 건강한 것이 탈이라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러한 문자 메시지 한 통에 내 생각이 바뀔쏘냐 생각을 하며 핸드폰을 집어던져버렸다.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위해서, 적어도 그들이 한 실수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하지 말자는 최소한의 신념을 지키기위해서.


항상 '가족'이라는 말도안되는 사람들과의 테두리 속에서 겉돌아야했고 관심도 애정도 받은적이 없으며 천둥벌거숭이 신세를 면치 못한 여지껏 30년의 세월이 야속해서라도 그녀의 문자에 답을 해주고싶지 않았다. 보란듯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나는 나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사는 것을 유지하고 싶었다.


무엇을 위해, 누굴 위해.




얼마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어떠한 글을 마주한적이 있었다.

어릴 적 부터 아버지로 부터 학대를 당한 어떠한 아들이 본인 아버지의 죽음 후 상을 치르고 쓴 글이었던 것 같다.


'다음 생에는 나의 아들로 태어나주오, 그 땐 내가 사랑이 무엇인지, 관심이 무엇인지, 부자지간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겠소' 따위의 내용이었다.


콧웃음을 쳤다.

다음 생을 절대 바라지 않는다. 여태껏 사는 내내 고통의 연속이었다.

남몰래 우울증 약과 신경을 안정시키는 약을 삼키며 혼자 어둠을 걸어야했던 20대, 하는 일 마다 풀리지 않아 죽음을 생각해야했던 20대와 30살, 동네마다 유명한 사주쟁이, 점쟁이들을 찾아가 잘 풀리게 해주십사 했는데 가는 곳곳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했었던 그 순간들.


부모라는 존재들의 철 없던 시절의 애정행각에 지워져나간 영아의 낙태령의 괴롭힘이다, 아버지란 작자가 젊은날에 객쩍게 부리던 혈기로 건든 동네 성황당에서 뻗쳐 나왔다는 어떠한 알 수 없는 기운, 조상 대대로 운이라곤 팔자에도 없다는 그러한 배경, 뭐 하나 날 받쳐주고 바람하나 막아주며 비빌 수 있는 언덕이라곤 흙 한 줌도 없이 살며 이 모진 인생을 살고있는데 다음 생이라니.


평생을 날 괴롭게 하는 사람을 내세에서 내 자식으로 조우해야한다니.

그 어떤 호러영화보다도 끔찍하고 무서운 발상이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라는 존재는 또 한 통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정말 읽고 싶지도, 받고싶지도 않은 그녀의 문자다.


미리보기 창으로 읽어보니 아버지란 작자의 진급 소식이다.

딴에는 기쁜 소식이랍시고 나누면 배가 된다는 생각으로, 내가 이런 소식이라도 듣고 아버지란 사람에게 축하메시지라도 보내며 사이라도 좋게 붙여보려고 용을 쓰고 애를 쓰는 것 같은데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발상인 것 같다.


미안하지만 이것이 오늘, 지금 그들에 대한 나의 온전한 마음이다.





부모와 형제가 없는 삶을 산다고 생각을 하니 오히려 더욱 마음이 편안해졌다.

항상 외로웠고 쓸쓸한 인생이었다.


동생 부부의 집 근처에 살 때에도 어떠한 특별한 기념일을 앞두고 혹시라도 조카들과 그녀의 부부와 함께 '가족이니까'라는 시덥잖은 발상으로 함께 시간을 보낼까하는 의중을 물어보았을 때 돌아왔던 동생이란 년의 차디 찬 답장이 여전히 가슴시리게 남아있다.


'니가 왜?'


동날 동시에 태어난 쌍둥이라 더욱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는데 그 순간 난 그런 병신스러운 생각을 접어버렸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 앞에서 내가 눈치를 보며 낮게 기길 원했다.


일곱살이나 어려 정말 내 새끼처럼 줄줄 빨며 키우다싶이 했던 막내는 잘 지내느냔 나의 안부 문자에 일주일이 넘어서야 겨우 답장이 온다.


'걍 그래'


그러고는 자기 누나와 매형과는 아주 다정한 문자와 전화를 주고받는다.

사업으로 어느정도 기반을 잡고 결혼 해 번듯한 집을 해놓고 사는 그들의 모습만 사람으로 보였을 뿐이었나보다.


딸년집에 반찬 바리바리 싸오면서 지척에 사는 나에겐 콩 한 톨도 주지 않았던 엄마라는 사람의 모습, 말하기에 입 아픈 아버지라는 사람의 평생의 모습.


그렇게 자발적 천애고아가 된 나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쓸모짝에 없는 메시지로 날 괴롭게하는지 모르겠다.


훗날, 부모가 유명을 달리한다면 동생이라는 것들이 나에게 연락을 해줄지나 의문이다.

다른 친구들의 SNS에서 우리 가족이라는 존재들이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장례가 다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집안의 대소사에 참여할 생각 조차도 크게 없다.

나는 천애고아이니까.



무언갈 갖지 않은 미니멀리스트(Minimalist)의 심플한 삶은 굉장히 안락하고 편안하다.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 같은 신세로 사는 나에겐 안성맞춤이고, 항상 불안증과 우울감을 끌어안고 사는 나에겐 걱정거리가 광주리째로 덜어진 것 같아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른다.


그러니 그들이 이렇게 난데없는 연락으로 홀가분한 나의 일상을 침해하지 않아주길 바라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또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차단을 할까 하는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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