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갈 미워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 보다 더 힘이 든 일이다.
내면 깊숙하게 자리잡은 증오심은 언젠가 특정 인물들을 넘어 불특정 다수에게까지 뻗쳐 나가는 화살이 되었다. 괜시리 들은 한 마디를 괜히 더 곱씹으며 그리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되새김질을 하며 나의 감정과 기분의 안녕을 확인하는가 하면 그로 말미암아 괜히 사람들을 미워하고 혐오한다.
애증이란 감정은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다만 증오만 자리잡았을 뿐이다.
만사가 귀찮다. 사람들에 둘러쌓여 이야기를 건네는 일도, 귓전에 맴도는 날벌레 소리같은 웅웅거리는 그들의 말소리도 퍽이나 귀찮다.
비행을 하며 만나는 수 백명의 손님들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밥 줄, 일과 연관된 사람들이기에 오히려 더욱 웃으며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게 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밖에 사적으로 친한 그리고 친해진 사람들과는 시간이 갈 수 록 미소로 화답을 한다거나 제때 연락에 회신을 하는 것이 더욱 귀찮아 지고 힘에 부쳐진다.
사람과 연을 맺고 관계를 이어가는 것에 대한 필요성에 대한 재고를 시작한 요즘이다.
물론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그 관계망 안에서 상호작용을하고 성장을 하지만 딱 그 관계에서만 지낼 수 는 없을까.
과연 나의 내면에서 무엇이 어떤작용을 했기에 사람에 대한 증오심을 이토록 뿌리깊게 자리잡게했는지.
사람에 대한 증오심이 지나치게 단단히 뿌리를 내려 어지간한 바람에도 흩날리지 않을 뿐더러 조그마한 환대에도 쉽사리 얼어붙은 단단한 증오심은 쉽게 거두어지지 않는다.
'나 이러다가 소시오패스가 되는것은 아닐까?'
얼마전에는 '무미건조하다', '건조한 인생' 따위의 말을 하지 않기로 작심을 했었는데 이것이 또 무너지는 계기들이 있었다.
최근 회사에서 새로사귄 동갑내기, 여자인 친구가있는데 지나칠 정도로 집착을 한다.
아니, 그녀는 그냥 사회생활에서 희귀하고 보기드문 동갑내기 친구라 그저 편안하게 나를 대하고 겉보기에 꽤나 유쾌하고 호탕한 성격의 나를 자주 보면서 힘든 외국살이를 달래려고 하는 것일 뿐인, 그야말로 투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테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집착' 이라는 말로 썩 좋지못한 포장을 해오고있고, 그것을 매우 불편해하고 있으며 때론 그녀의 그러한 행위들에 대해 불쾌함을 느끼기도 한다.
친구들과 아무런 의미없이 수다를 떠는 것이나, 우스갯소릴 하는 메시지와 전화는 누구나 쉽게 달고 살 수 있는 일종의 장치이겠지만 어느 순간 부터 그러한 행위들이 나에게는 대단히 불편한 행동이 되었다. 왜 용무없이, 특별한 이유없이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질 점점 모르겠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 눈치를 주기시작했고 그런 그녀는 눈치를 보기 시작했으며 나는 점차 그녀를 나의 바운더리에서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했다.
조금은 미안하지만 그런 그녀의 '쟁쟁거림'을 미주알 고주알 받아 줄 자신과 여력이 없는 나로서는 생존본능에서 기인하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지난 주에는 같이사는 룸메이트의 어머님이 홍콩에 관광을 오셨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 일정이 조금 뒤틀려 우리집에서 하루밤을 주무시고 가셨다.
우리 집엔 나를 포함해 세 명의 한국인 남자 승무원들이 살고있다.
나보다 두 살어린 이 두 남자는 꽤나 살가운 성격들이며 터분터분하니 정도 많아 같이 지내기에 더 없이 좋은 사람들이다. 유일하게 내가 정 붙이고 사는, 한 지붕 아래에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한 솥밥을 먹는 '식구(食口)'로 여기는 인물들이다.
룸메이트 중 하나가 본인의 어머님께 효도관광을 선물하기위해 태국으로 모시려고 했는데 일정이 꼬여 홍콩으로 모셨고 그렇게 우리집에 오시게되어 인사를 드리고 함께 밥도 먹고 다과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상하고 묘했다.
누군가의 '엄마'를 보는 것이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엄마' 내지는 '어머니'라는 호칭을 내 입 밖으로 꺼낸 것도 오랜만이었는데 사이좋은 모자지간을 보는 것 조차도 오랜만인 것 같았다.
어떻게 저렇게 둘이 도란도란 할 수 있는지가 신기했다.
나도 유치원 무렵에는 그랬던 것 같기도하다.
이 친구의 어머니는 직접 손으로 밥 한끼 해주고 싶으셔 집 앞 마트에가 장을 봐다 손수 고추장 찌개를 끓여주셨고 우리 셋은 게걸스럽게 한 냄비를 뚝딱했다.
그러면서 나는 소위 말하는 '엄마 밥'의 느낌이라던가 그런 것을 느끼기 보단 오랜만에 느끼는 진정한 '한국의 맛'이라고만 생각을 했는데 다른 룸메이트는 뜬금없이 '나도 우리 엄마 보고싶다.' 라는 말을 하며 애살스런 짓을 하는데 전혀 와닿지 않았다.
가족이 보고싶을 수 있구나.
그러다 가만히 화가났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온 인생이기에 가족이라는 존재들이 그립다거나 보고싶지 않은 것일까.
그들은 나를 어떻게 낳아 키웠길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무척이나 메마른 감정을 내비치는 것일까.
그러다 또 가족이란 존재들에 대해, 부모라는 존재들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증오심을 느꼈다.
내가 가족이란 존재들에게 좁 쌀 한 톨만큼의 애정이라도 있었다면, 적어도 생판 남과 가진 애착관계만이라도 형성이 되어있었더라면 불특정 다수에게 까지 쓸모없는 적개심과 증오심을 품으며 살지는 않았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가만히 해보았다.
어느 행동심리학자가 그랬다.
부모나 가족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과 유대감이 반사회적 성격과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고 그런한 이상성향들로 말미암아 비정상적인 인간관계, 애착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이렇게 내가 가지고 맺어온 관계들이 비정상적일지, 내가 하고있는 품고있는 생각들과 행동들이 반사회적인지, 그야말로 소시오패스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닐지 하는 걱정 또한 몰래 품어본다.
뉴스에서 다루어지는 소시오패스라던가 반사회적 성향을가진 이상행동자가 아니길 바라며 나의 행실을 좀 다듬어 보자 생각을 한다.
분노와 미움의 화살을 내 스스로에게 쏘아 나의 내면에 자리잡은 어린 날의 작은 소년인 나, 상처 투성이로 나이만 먹어버린 나에게 생채기를 더 이상 내지 않겠노라 활 시위를 바깥으로 당겨보았는데 또 이러한 걱정과 고민의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렇게 또 누군갈 미워해야할 이유가 생겼다.
왜 한 시도 편치못한 것이 내 인생이어야 하는가.
오늘도 쉽지않은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