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 다이어리

효와 불효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나를위해 불효를 택했다.

by Richard B

언젠가부터 생각하고 기도했다.

내가 죽는 날을 정할 수 있다면 꼭 부모보다, 다른 형제들 보다 먼저 죽을 수 있길.


평생을 끌어안고 살아온 이 불쾌한 감정의 응어리들을 어딘가에 툭 던져놓고 아무런 세상만사 고민 걱정 없이 그냥 말 없이 한 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저 세상으로 갈 수 있길.


나의 탄생이 내 자유의지에서 벌어진 해프닝이 아니라면 내 생명의 끝은 나의 자유의지대로 행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유의지대로, 날 받아 가는 저승길 발 걸음은 얼마나 가벼울까.

가벼운 발걸음으로 소풍길을 떠나고 싶었던 여덟 살 어린 나의 촐랑맞은 발걸음이 그때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술을 한 잔 했더랬다.

엄마에게 받은 문자 메시지 두 통이 나에게 극심한 두통을 유발을 했고 그로 말미암아 하루종일 알 수 없는 분노감에 휩쌓여 혼자 씩씩거리며 분을 삭힐 수 없었다.


그녀 딴에는 몇 날 며칠을 고심하다 보낸 문자였겠으나 그것이 한동안 잠잠했던 나의 분노에 또 다시 불을 붙일 도화선이 되리라는 상상 역시도 못했겠지. 그래서 더 미웠다. 아니 증오했다.

가족이라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감정상태나 상황을 살펴보지 않고 본인들 제멋대로의 행동으로 화를 자초하는 것에 도가 튼 사람들인 것 같다.


홍콩 집의 집안일을 끝낸 한갓진 토요일 오후, 룸메가 한국에 다녀오면서 바리바리 싸온 그의 어머니의 음식으로 저녁을 함께 먹으며 소주를 몇 병 해치웠다. 남의 엄마 음식을 먹으면서 내 엄마의 음식이 전혀 그립지 않았다. 나의 엄마 음식을 언제나 먹어봤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으며 별로 궁금치도 않은 맛인가보다. 그래서 화가 났다.


가끔 본가에 가도 화목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었으며, 가족이라는 사람들은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라는 걸 일 평생 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시간 때 마다 하루 종일 같은 소릴 떠들어대는 티비 뉴스 소리만 집 구석에 울려 퍼졌을 뿐이었다.


그러다 한 번씩 밥상머리 싸움이 시작되고 아버지라는 사람의 때에 맞지않는 욕설이나 고성, 짜증섞인 말이 밥상위로 날아다녔으며 나머지 식구들은 이에 입맛을 떨두고 밥을 먹다 말거나 그냥 입으로 욱여넣기 바빴다. 그러곤 각자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소란이 멈추길 기다렸다.


아버지라는 사람의 욕설과 짜증, 고성방가는 대체로 혼자만의 생쑈인 경우가 많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엄마라는 사람이 쉽게말해, 그가 욕을 하도록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으로 기억한다.


그러니 집에서 먹는 밥이 하루라도 맛이있게 느껴진 적도 없었고 평생을 가족들이란 사람들과 한 공간, 한 밥상에서 밥을 먹는 것 자체가 가장 거북스러운 순간이었으며 맛도 모른채 숨죽여 밥 만 먹어야 했던 지난 삼 십 여년이다.


그래서 또 화가났다.

남의 엄마가 정성으로 바리바리 싸준 음식을 나누어먹으며, 나의 '밥상 이야기'는 한 편의 잔혹동화로만 구성이 되어있다는 것에 화가 났고 이런 잔혹동화를 가질 수 밖에 없는 내 인생에 대해 화가 났다.


그러다 룸메가 문득 '내일 형 생일이네' 라는 말에 내면의 화를 다스리는게 쉽지 않아 줄 담배를 태우기 시작을 했다. 그냥 다른 사람 앞에서 한 숨을 내비추는 것이 부끄러워 담배를 태워댔다.

그렇게 십 수개의 담배개피들과 나의 애간장이 같이 타들어갔다.




약 삼 십여년 전 어느 해의 12월의 마지막 날,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벌어졌다.

나의 탄생이다. 쉽게말해 생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날이다.


이런 내면이 불안정하고 항상 분노와 불안, 우울에 휩쌓인 이러한 인생이 너무 싫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무렵부터 생일 날에는 꼭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냥 이렇게 늙어 죽을때 까지 힘들게 살아야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아서였을까.

나를 낳아준 존재, 가족이라는 핏줄 보다 남에게 더 축하를 많이 받는 날.


나를 낳아준 존재와 가족이라는 존재들에게 제대로된 축하를 받아 본 일이 없어 남들에게도 축하를 받는 것이 여전히 어색한 30대, 그 엿 같은 년 중 하루가 또 돌아왔다.


아무튼 그렇게 얼얼하게 마신 술과 줄 담배로도 내 가슴 속에 이글거리며 끓고 있는 분노는 좀 처럼 사그라들지 않았고 메시지함에 쌓인 엄마라는 사람의 문자를 읽어버리고 말았다. 이윽고 나는 그녀의 가슴에 의도적으로 대못을 박기 위한 악담에 가까운 말들을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내려갔다.


그래야했다.


나는 나대로 잘 살겠다고, 남들만큼이라도 살아보겠다고 죽을듯이 발 버둥을 치고 있는데 그럴 때 마다 이렇게 멀쩡한 척 하고 살고있는 내 몸과 마음을 이딴식으로 흐뜨려놓는 그녀가 너무 미웠다.


나는 행복을 모르지만 평안이라는 감정들을 조금씩 배워가는 요즘, 그래 이렇게 살다가 적당한 때가 되었다 싶을 때 종교를 하나 정해 빨리 죽게해달라 있을지 모르는 신에게 매일 같이 기도하자 생각하며 살고있을 때, 아무튼 평화라는 감정을 조금 씩 배워가는 이 때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들로 나를 어지럽히는 그녀가 너무나도 미웠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가는 불효자라도 되는 듯 그녀에게 답장을 하기 시작했고 다시는 보지 않을것임을, 나는 부모도 형제도 없다 생각하고 살고 있고 이렇게 그저그런 삶을 살다 알아서 정리하고 적당한 날에 가려고 하니 그냥 당신들은 당신들 뜻대로 잘 사시라 답장을 해버렸다.


물론, 나도 사람의 탈을 쓴 사람이라 그런 모진말들을 내쏟아 내면서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으나 이렇게라도 해야했다.


가뭄에 콩 나듯 뜬금없는 타이밍에 받은 그녀의 모든 연락들에 항상 나는 분노했고 그녀가 나에게 연락을 할 때에면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모질고 힘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으며 그 때문에 그 하루, 그 한주는 정말 정신적 폐인으로 살아야했다.


요즘하는 말로 '발작버튼'이 나에겐 가족인 셈인 것이다.


예전엔 생각했다.

남자를 잘못만난 그녀의, 엄마의 인생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그녀의 부모를 원망했을테고 그녀의 선택, 남편 그리고 시댁을 원망했을테다. 육십 평생을.

그러나 그녀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어느 새 그 원망을 그대로 느끼며 평생을 살고있다. 어쩌면 아버지라는 사람이 가진 본인 인생의 원망과 엄마라는 사람의 그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두 배쯤 되는 원망과 분노가 내 가슴속에 머물러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가족이란 존재들을 보면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화 부터 났으며 숨을 쉴 수 없을 만큼의 분노가 밀려올라왔다.


어느 새 늙어버린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아플 줄 알았다. 조금은 그랬다. 처음에는.

그러나 어느새 그들이 나보다 먼저 유명을 달리할까봐 걱정이었고 여전히 나는 그들보다 먼저 죽길 원하고 바라고있다.


2024년, 서른 세 번째 해를 넘기며 또 분노와 우울감, 불안감으로 뒤엉킨 연말을 보내고있다.

그들 때문에, 가족이라는 사람들 때문에.


이 곳 시간으로 자정이 넘었으니 또 엿 같은 하루가 시작이 되었다.

생일이다.


하루 종일 핸드폰을 꺼놓을 작정이다.

여전히 생일 축하메시지를 받는 것에 이질감을 느낀다.


태어난것에 대해, 피 섞인 존재들에게 축하를 받아본 역사가 내 기억엔 없는데 그 외적인 존재들에게 축하를 받는다는 것이 여전히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불효자 짓거리를 작심하고 했다.

해를 넘기는 지금, 나는 있을지 모르는 신에게 또 한 번 빌어본다.

제발 그들보다 먼저 나의 숨을 거두어 가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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