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아직 준비되지 않은 마음으로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과 ‘아직 회복되지 않은 나’

by Mimi

졸업 후, 세상은 나에게 말했다.

“이제 다시 사회로 돌아가야지.”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은 여전히 속삭이고 있었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

논문을 마치고, 졸업장을 받았지만
그건 단지 하나의 과정이 끝났다는 표시였을 뿐,
내 안의 회복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오래된 트라우마

사람들을 만나면 예전의 트라우마가 올라왔다.
나의 피해의식은 그에 대응하며 나를 괴롭혔다.
사람들과 갈등이 생길까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나를 고립시켰다.

패션 업계의 경쟁과 뒷담화, 회사의 정치.
그 안에서 나는 수많은 갈등을 겪었다.
특히 중소 패션 브랜드의 디자이너로 살 때는
매출과 협업, 인간관계가 늘 전쟁 같았다.

한 번은 직원들이 단체 카톡방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사건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 전부터 이어졌던 배신과 오해들이 겹쳐
결국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남았다.

그 후로 나는 사람들을 믿지 못했다.
조금만 상황이 비슷해져도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났고,
나는 예민하고 공격적으로 변했다.

서울에서의 나는 늘 날카롭게 날을 세우며,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용을 쓰며 살았다.
“아마 그 스트레스가 내 병의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내 안 깊숙이 자리했다.

가족 안에서도 외로웠다

이제는 가족 사이에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언니들과 부모님 사이의 갈등,
그리고 내가 가진 서울 아파트를 두고 벌어진 일들.

돈이 없던 시기,
나는 런던에서 돌아와 부모님 댁에 잠시 머물고 있었다.
아파트를 팔려는 과정에서
전세금을 내주기 위해 잠시 부모님께 돈을 빌려야 했다.

언니들은 더 싸게 내놓으라며 나를 압박했다.
“부모님 돈이 잘못될까 봐.”
그들의 말은 명분이 있었지만,
그 속에는 불신과 이기심이 섞여 있었다.

병으로 심신이 약해져 있던 탓이였을까??

그 일은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들은 각자 가족과 집이 있었지만
나는 혼자였다.

‘만약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얼마안되는 재산으로 분쟁이 생기면…
그땐 나는 정말 외롭고 비참하겠구나.’

그때 문득 깨달았다.
“가족도 결국은 나를 지켜주지 못하는구나.”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은
세상에서 부모님뿐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밥을 굶을까, 병이 재발할까 노심초사하며
내가 진정으로 잘 되길 바라는 사람.

그건 친구도, 연인도, 형제, 자매도 아니었다.
그 깨달음은 차갑고 서늘했다.

서울에서 다시 시작하려 했지만

서울에 작은 오피스텔을 얻어 다시 살아보려 했다.
하지만 몸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했고,
이유 없이 기운이 훅 빠질 때가 많았다.

그 도시의 공기, 빽빽한 회색 건물들,
어디서나 들리는 경쟁의 소리.
그 안에서 다시 살다가는
정말 병이 재발할 것 같았다.

일자리를 찾아보았지만,
막상 연락이 오면 두려웠다.
내 몸과 마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스스로 움츠러들었다.

서울의 겨울은 유난히 차가웠고,
나는 점점 더 지쳐갔다.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문득, 발리가 떠올랐다.
예전에 가족들과 함께 여행했던 기억,
그리고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생각.


“언젠가 우붓에서 요가하며 한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


그래, 한 달만이라도 우붓에서 요가하며 지내보자.

서울에서 무기력하게 킬링 타임하느니
따뜻한 나라에서 몸과 마음을 쉬게 하자.

그리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자.

런던의 높은 생활비와 변덕스러운 날씨가 걱정됐지만,

그래도 그곳은 나에게 두 번째 고향 같은 곳이었다.

서울도, 부모님이 계신 고향도
더 이상 나를 품어줄 곳이 아니었다.


우붓으로 향하다

그렇게 나는 발리로 향했다.
우붓에서 요가하며 한 달 살기.
그건 내 버킷리스트였다.

암투병 이후,
내 인생에는 더 이상 ‘장기 계획’이 없었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때그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빨리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자.”


그게 그때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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