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아쉬탕가와의 첫 만남, 몸이 다시 깨어난 순간

by Mimi

2024년 2월, 다시 발리로 향하다


2024년 2월, 다시 발리로 향하는 짐을 쌌다.

좁고 답답한 서울 오피스텔을 정리해 짐 보관소에 맡기고,

그렇게 또다시 서울을 — 아니, 한국을 떠났다.


2월의 발리는 이미 한여름처럼 뜨거웠다.

예약해둔 우붓의 홈스테이로 향해

컴컴하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 도착한 숙소는

그날 밤, 낯설고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창문을 여는 순간 모든 감정이 바뀌었다.

우붓의 초록빛 정글이 눈앞에 펼쳐졌고,

바닥에는 하얗게 떨어진 캄보자(Jepun) 꽃,

길 위엔 신들에게 바치는 짜낭사리,

여유로운 발리 사람들,

귀를 때리는 오토바이 소리,

그리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요가인들…


우붓의 첫인상은 분명했다.

그야말로 ‘요가 인더스트리.’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살아내기’


우붓 3주, 사누르 1주.

숙소만 잡아두고 아무 계획도 없이 도착했다.


낯선 환경에서 나는 다시

**“살아내기 모드”**로 들어가 있었다.


매일 아침 구글 서치를 했다.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를 가야 할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새로운 환경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런던 유학 시절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번엔 경쟁도, 평가도 없었다.

그냥 숨 쉬고 존재하는 것 자체가 내 공부였다.


“그래, 우붓 요가 샬라 도장 깨기를 해보자!”


요가의 세계 — 그리고 ‘진짜 시작’


하타, 인요가, 빈야사, 인사이드 플로우,

쿤달리니, 프라나야마, 만트라, 기공…


우붓은 그야말로 요가의 도시였다.

한국에서의 요가가 ‘스트레칭’에 가까웠다면

여기서는 삶 전체를 다루는 철학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아쉬탕가


숙소 근처 ‘래디언트 얼라이브’에서

아쉬탕가 요가 수업을 발견했다.


예전에 누군가 말했다.

“아쉬탕가는 진짜 요가야. 전통적이고, 어렵고… 깊어.”


그 말이 떠올랐고,

얼마나 어려울까—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그래서 바로 등록했다.


첫 수업 — 공간, 분위기, 그리고 선생님


정글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대나무 샬라,

진한색 마루바닥, 한쪽 벽의 부처님 좌상,

잔잔히 흐르는 힌두 음악,

은은히 퍼지는 인센스 향…


그 모든 것이 묘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날 수업을 이끌던 사람은

말수가 적고 약간 무뚝뚝한 발리니즈 아쉬탕가 선생님이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고,

부분부분 흰머리가 섞여 있었지만

그의 몸에는 오랜 수련의 흔적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

가늘고 단단한 근육, 흐트러짐 없는 자세,

정확하고 간결한 움직임.

그의 몸만 봐도

몇 년, 아니 몇십 년의 수련이 쌓여 있다는 게 느껴졌다.

존경심이 저절로 들었다.


“왜 팬을 끄지…?”


수업이 시작되자

선생님이 천장에 달린 팬을 껐다.


더웠다.

말도 안 되게 더웠다.


잠시 짜증이 올라와 내가 팬을 다시 켜자

선생님은 조용히 다가와 다시 끄셨다.


한참 지나서야 이해했다.

몸이 열려야 움직임이 깊어지고,

아쉬탕가는 땀으로 정화된다는 것을.


몸이 다시 말을 걸다


더운 공기 속에서

선생님의 큐잉에 따라


“에캄, 인헬…”


호흡과 함께 아사나가 이어졌다.


수업이 깊어질수록 땀이 흘렀다.

등을 타고 흐르고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


나는 원래 땀이 거의 나지 않는 체질이었다.

그런데 그날,

내 몸은 오래 막혀 있던 무언가를

한꺼번에 열어젖히듯

땀을 쏟아냈다.


마치 내 몸이

오랜 시간 잠들어 있다가

다시 깨어나

“살아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첫 거꾸로 서기 — 헤드스탠드


수업이 끝나갈 무렵,

선생님이 말했다.


“헤드스탠드, 시도해보세요.”


겁이 났다.

“못 해요.”


말수가 적고 무뚝뚝하던 발리니즈 선생님이

뜻밖의 농담을 던졌다.


“I don’t bite you.”


그 한마디는

“겁내지 말라”는 말보다 더 부드럽게 다가왔다.

이상하게 그 순간,

따뜻한 바람이 스치는 듯한 감정이 지나갔고,

안심과 아주 얇은 설렘이

겹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암 이후의 나는

‘다칠까 봐’, ‘아플까 봐’

도전 앞에서 쉽게 움츠러드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 말보다 내 가능성을 먼저 보는 사람 같았다.


조급함도, 강요도 없이

그저 조용히 내 앞에 서서

내가 자세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두 발 모아보세요.”


그가 발끝을 가볍게 받쳐주자

순간—

내 몸이 거꾸로 섰다.


세상이 뒤집혔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 몸이… 이 자세를 할 수 있네?”


그 자세에서,

그 순간—


나는 오래 잊고 있던 감각을 느꼈다.


도전하고 싶은 마음.

살고 싶은 마음.

그리고 내 몸을 다시 믿어보고 싶은 마음.


겁이 나면서도

그 두려움 사이로 작은 불씨가 피어올랐다.


“이거…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

“내가 찾고 있던 요가가 바로 이거야.”


그렇게 나는

아쉬탕가 요가를 처음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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