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아쉬탕가 스승을 찾는 여정

by Mimi

발리니즈 아쉬탕가 선생님의 수업에서 처음 헤드스탠드를 했던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머리 아래 세상이 뒤집히고, 온몸의 혈이 아래로 쏟아지는 느낌,

두려움과 짜릿함과 생존의 감각이 동시에 올라왔다.


그리고 나는 그때 알았다.


“아, 이게 내가 찾던 요가구나.”
“아쉬탕가… 제대로 배우고 싶다.”


전통, 땀, 규칙, 꾸준함.

단순한 ‘스트레칭’이 아니라 삶이 뒤집히는

아니 그때의 나는 삶을 뒤집고 싶었던거 같았다.

그동안의 답답한 삶에서..뭔가다른 방향으로


문제는—우붓요가 샬라엔 루틴이 없었다.


우붓에 있는 대부분의 요가 샬라는 드랍인 위주, 여행자용.

원하는 시간에 왔다 갔다 하는 시스템.


하지만 내 몸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원했다.

규칙성과 누적.

그게 있어야 나는 요가의 깊이가 깊어질 수 있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우붓의 샬라를 드랍인으로 돌았다.

수업마다 다른 템포, 다른 선생, 다른 에너지.

재미는 있었지만… 쌓이지 않았다.


요가 천재를 보았다 – 알케미 요가에서


Grab 바이크를 타고 알케미 샬라로 향했다

알케미 요가는 우붓에서 아름다운 샬라 건축물로 유명한 샬라이다.

내 옆자리 한 수련생은 헤드스탠드에서 가부좌를 틀고,

다리를 팔 위에 얹고, 다시 다리를 펴서 차투랑가 단다 사나로 ....

나는 그 연속된 아사나를 해내는 장면을 숨을 멈추고 지켜봤다.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결국 말을 걸었다.


“너 요가를 너무 잘한다! 너무 감동받았어.”
“얼마나 했어?”
“12년.”


…12년.


나는 가볍게 물었다.

“나도 너처럼 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한 2~3년?”


그땐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는 타고난 요가 천재였다.


그녀가 말했다. “스승을 찾아.”


그리고 한 문장.


“아쉬탕가를 하고 싶다면 스승을 찾아야 해.
나도 인도까지 다녀왔어.”


그 말이 나를 움직였다.


그래. 스승을 찾아야 한다.

발리니즈 선생님—그러나 현실적 한계


래디언트 어라이브에서 만난 한국인 수련생도 있었다.

그녀는 2년 했는데, 내 눈엔 이미 고수였다.


“이 발리니즈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됐어요.”


나도 배우고 싶었다. 정말 간절하게.

하지만 그 수업은 개인 레슨 + 샬라 대여 방식.

현실적으로 지속하기 어려웠다.

시간, 비용—모두 안 맞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검색했다.

구글, 블로그, 후기, 외국인 리뷰까지.


그때 눈에 들어온 단어 하나.


Mysore.


매일 같은 시간.

큐잉이 아니라 개인 진도.

선생님이 각자의 몸에 맞춰 잡아주는 핸즈온 조정.

스스로 움직이고 스승이 지켜보는 수련.


이건 딱 내가 찾던 요가였다.


그리고 우붓 시티센터에

사라스 조이스 공인 티처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리뷰는…


“무뚝뚝하지만 잘 잡아준다.”
“초보자에겐 안 친절.”
“여자친구나 가족 에게는 절대 추천 안 한다..Good teacher but bad person!.”

등 악플도 보였지만,

이상하게 그런 말들이 나를 끌었다.

무섭지만 진짜 배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왜 이런 리뷰들이 있는지

다 틀린말은 아니였다는...ㅎ

이로 인해 이샬라에서 나의 감정소모가 상당했었다는....


첫 이메일 – 주관식 시험지 같은 질문

나는 결국 그 공인티처의 샬라에 수련 신청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신청하려면 먼저 이메일에 첨부된 질문 양식에 답변을 작성해 제출해야 했다.


그런데 그 질문지.


진짜… 지금 생각해도 웃기고 어이없다.

당시의 나에겐 외계어처럼 보이는 항목들.


• Which Ashtanga series are you currently practicing?
• What is your last posture? (Final asana reached)
• Years of Mysore practice:
• Goals for your practice:


나는 그때 아쉬탕가에 “시리즈”라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프라이머리?

인터미디엇?

시리즈가 뭐야?

요가에 진도가 있어?’


머리가 하얘졌다.

나는 그냥 요가가 좋았던 초보일 뿐.

하지만 그 양식은 마치 나를 아쉬탕가 10년 수련생으로 가정한 질문이었고

나는 거의 수능 주관식 답안지 찍듯이 답을 작성했다.


최종 진도(last posture) 항목엔 결국 이렇게 적었다.


Final posture : I want to do Headstand.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답장은 선생님 입장에서 해석 불가한 메시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정말 순수하게 진심으로 그 답을 썼다.

그저 ‘헤드스탠드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


답변을 보내자 돌아온 건


“초보자는 최소 1주일 수련이 필요합니다.”


딱 정보만 있는 문장.

친절도 아니고, 거절도 아니고, 감정 없는 지침.


나는 하루 먼저 체험해보고 등록하고 싶다고 다시 메일을 보냈고,

그는 허락했다.


그렇게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만

너무 배우고 싶었던 마음 하나로

그 샬라의 문 앞에 서게 되었다


첫 방문 – 붉은 새벽, 빽빽한 매트


나무 계단을 올라가자

붉은 새벽 하늘과 땀 냄새, 따뜻한 습기.


매트는 다닥다닥.

옆 사람이 들이쉬는 숨결이 내 팔에도 닿을 만큼.


모두가 각자의 아사나에 잠겨 있었다.

등줄기 따라 흐르는 땀, 깊은 우짜이 호흡.

그곳 수련생들의 열기와 진지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완전 초보였고

중국인 여성 한 명과 단둘이 초보자 그룹이었다.


여자 선생님의 큐잉을 따라

서서히 스탠딩 시퀀스를 하고

사바사나에서 누웠다.


몸이 풀려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자

그녀가 다가와 단호하게 멈추라고 했다.


“사바사나 이후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땐 몰랐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사바사나는 마지막—
이어서 아사나를 하면 안된다는 걸.....


설명 없이 제지 당하니 압박으로 느껴졌다.

난 그냥 몸을 풀고 싶었을 뿐인데.


고민 – 여기 다녀야 할까?


공인 티쳐도 무뚝뚝했다.

말이 없었고, 표정도 없었다.

나는 거의 환영받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여기를 다녀야 하나?”


나는 일정대로 일단 우붓을 떠나 사누르로 갔다.


사누르 – 잠시 멈추는 곳


사누르는 조용했다.

파도, 바람, 자전거 타는 노년의 서양인들.

은퇴자의 도시.


그리고 팔찌를 팔러 나온 작은 소녀.

다섯 살쯤?

이미 세상에 익숙한 눈빛.


나는 그 아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내가 건강하고 여유 있으면,
저 아이… 입양할 능력이 있다면...돕고 싶다.”


발리는 이상하게

마음을 말랑하게 했다.


일주일 동안 섬 투어, 스노클링, 드랍인 요가—

우연한 한국인 여행객과의 섬투어

혼자였지만 풍성했다.


결국, 돌아간 곳은 우붓


비자를 연장했고

이제 정말 결정을 내려야 했다.


발리니즈 선생님은 개인레슨.

현실적으로 불가능.


결국 선택지는 하나.


✨ 사라스 조이스 공인 티처의 마이소르 샬라.


그곳은

루틴이 있었고

매일의 깊어짐이 있었고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왠지 그 샬라는 내가 다니는걸 반가워 하지 않는 듯 했다.

선생님들 눈치를 보게되는

정말 가야 하나??

돈이 들더라도 그냥 발리니즈 아쉬탕가 선생님 한테 수업을 요청해볼까??

며칠동안 고민하고 맘이 심란했었다.

한동안 고심하고 망설이다 결국

나는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한 달 수련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환영한다고 답했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그 모든 망설임과 방황이 나를 그 문 앞으로 데려왔다.


그렇게, 2024년 3월.

나는 다시 우붓으로 돌아갔다.

조금은 두렵고, 조금은 설렜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아쉬탕가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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