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아쉬탕가-나의 한계를 넘어가는 수련

by Mimi

새벽 6시

나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우붓 센터의 공인 티쳐 샬라로 걷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15분 거리 —
이른 새벽, 발리 사람들은 이미 하루를 열고 있었다.

갓 열린 새벽 시장,
알록달록한 공양꽃,
바구니 가득 담긴 열대 과일,
가판대에서 은은하게 피워지는 향 냄새.

그 분주함 속엔 살아 있는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활기를 지나 나무 계단을 밟아 2층 샬라에 도착했다.

다시 돌아온 샬라, 다시 마주한 긴장

첫 트라이얼 클래스를 듣고 사누르로 이동했다가

며칠 고민 끝에 다시 돌아온 곳.

그런데 — 분위기는 여전히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눈인사도, 미소도 없다.
각자의 호흡에 몰입한 채 수련하는 사람들.
누구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나는 가장 뒤쪽 구석에 조심스레 만두카 매트를 폈다.
발리에서 보기 드문 고퀄리티 공용 매트.
묵직했고, 오래 쌓인 수련의 흔적이 켜켜이 남아 있었다.

선생님과의 첫 마주침 — 거리감 속에서

6:30, 선생님들이 들어왔다.
마르고 키가 큰 남자 선생님 — 말수 적고 요가 도인 같았다.
작지만 단단한 여자 선생님 — 근육이 말해주는 그녀의 수련의 시간.

“처음 온 사람, 앞으로.”

나는 웃으며 메일로 안내받은 수업료를 건넸다.
그런데 그는 차갑게 물었다.

“Is this correct?”

그 짧은 문장이 많은 생각을 스쳐 지나가게 했다.

금액을 잘못 준비했나?
내가 영어를 잘못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 미소를 불필요한 친절로 오해했나?
얼굴이 화끈했다.

나는 짧게 말했다.

“You can check.”

그제야 그는 나의 마음을 읽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환영이라기보단 경계, 따뜻함보단 거리감.
지금은 이해하지만 — 그땐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괜찮아. 친구를 만나러 온 게 아니야.
나는 요가를 배우러 왔다. 기대하지 말고 수련만.

그 순간부터 나는 선생님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혹시라도 내가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계속 점검하게 되었다.

마이소르 — 오직 나와의 싸움

아쉬탕가 프라이머리 시리즈.
동작을 익히는 것보다 순서를 기억하는 게 더 어려웠다.

순서를 착각해 건너뛰어 다시 돌아가려고 하면,

여자 선생님은 조용히 다가와 되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발리의 3월은 새벽부터 뜨거웠다

샬라엔 팬도 없다
수련 중 물 마시기 금지.
요가 블록이나 쿠션 같은 보조도구도 없다.

매트와 몸 — 단 두 가지가 전부.
큐잉도 없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 몸에서 이렇게까지 땀이 흐를 수 있다는 걸.**


나는 깊은 우짜이 호흡에 아사나를 맞추려 애썼다.

땀은 온몸을 타고 흘렀고, 요가복은 어느새 흠뻑 젖어 있었다.

그 뜨거움 속에서 나는 묘하게 살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새벽의 공기,

샬라의 열기,

멈추지 않는 땀.


그 모든 것이 이상하게 좋았다.

조용했고, 진했고, 나는 나와 마주했다.


선생님들의 핸즈온은 많지 않았지만

깊었고 정확했다.

말은 없었지만 — 그들의 손끝은 그들의 경험을 그대로 전달했다.

유방암 이후, 다시 움직이는 몸

3년 전 유방암 수술.
오른팔은 조심해야 했고, 무게가 실리면 붓기도 했다.
15kg 이상은 금지.

한동안 만보 걷기 외엔 아무것도 못하던 몸.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수술했던 몸이라는 사실을 잊어갔다.

아직 회복 중인 오른팔의 한계도,
어깨의 통증의 기억도 희미해졌다.

그래서 무모하게도
나는 강도 높은 아쉬탕가에 몸을 던졌다.
내가 잊은 것들을
내 몸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술의 후유증으로 다시 나를 데려왔다.
멈춰 있던 몸의 신호들.
그제야 알았다.
나는 잊었지만 몸은 잊지 않고 있었다.

첫 달 — 바닥에 떨어지던 몸

차투랑가(푸시업과 같은 아사나).
팔을 굽히면 몸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버티는 데만 몇 달.
어깨, 팔, 손목은 매일 항의했다.
안 쓰던 근육이 깨어나는 소리였다.

새로운 아사나는
새로운 통증을 만들었다.

아쉬탕가 스탠딩 시퀀스 — 깊은 전굴.
햄스트링, 엉덩이, 허벅지까지
근육통은 자리를 옮겨가며 나의 수련을 방해했다.

그러나 통증보다
수련을 멈추는 게 더 무서웠다.

온탕, 마사지, 파스, 스트레칭.
그리고 다음 날 또 샬라.

3개월쯤 지나,
몸은 아주 천천히 열렸다.


요가로 생긴 통증은 요가로 풀린다.
그 말의 의미가 드디어 몸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문데이를 알다 —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월~목 마이소르
금 Primary Led
토·문데이 휴식

문데이? 왜 쉬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물어볼 용기도 없었다.

차갑고, 다가가기 어려운 선생님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찾았다.

Full Moon / New Moon
달이 차고 기울면 밀물과 썰물이 생기듯,
우리 몸 역시 78%가 물로 이루어져

달의 에너지에 반응한다.

풀문엔 에너지가 넘치고,
뉴문엔 바닥난다.
그래서 부상을 막기 위해 쉰다.

과학보다 먼저
아쉬탕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몸과 자연과 지구는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논리보다 경험으로 전해지던 지혜.

그 철학이 나를 더 깊이 이 세계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 마리차사나 C

첫 Led Class.
나는 마리차사나C 여기에서 멈춰야 했다.

앉아 다리를 세우고 몸을 비튼 트위스트.
왼팔을 무릎 밖으로 넘겨 뒤에서 손을 맞잡는 바인딩.

손끝 하나.
그 작은 거리가 벽처럼 느껴졌다.

선생님이 강하게 핸즈온을 해도
손은 닿지 않았다.


“Why don’t you stop here?”


그날 이후 3~4개월,
나는 그 동작 하나에 매달렸다.

짜증, 실망, 비교, 자책.
“왜 나는 안 될까?”
팔이 짧아서? 나이가 많아서?
다른 사람에겐 너무 쉬워 보이는데.

그러던 어느 날,
비기너를 가르치는 여자 선생님에게 나는 말했다.


“It's impossible…”


내 몸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그녀는 단단하게 말했다.


“Yes. You can.”


그때부터였다.
내가 마리차사나 C를 하면
어느새 다가와
내 팔을 잡아 뒤로 바인딩을 시도해주었다.

멈출 수 없었다.

밤에도 연습했다.

요가 아나토미, 수트라, Light on Yoga를 읽으며

내 몸과 아사나의 원리를 파고들었다.


강한 트위스트는

복부에 강한 자극을 주어 뱃살을 슬림하게 만들었고,

고질적이던 변비는 눈에 띄게 개선되었으며,

허리 라인까지 서서히 정돈해주었다.


몸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혼자 연습하던 집에서
팔이 닿았다.
바인딩이 걸렸다.

그 짧고 선명한 순간,
나는 웃었고 울컥했고 신기했다.
불가능해 보이던 아사나를
내가 해냈다.

유방암 이후 처음으로
내 몸이 나를 다시 믿어준 순간.

✨ 아쉬탕가는

몸을 움직이는 요가가 아니라,
내 삶의 한계를 넘어가는 과정이었다.

작은 한 동작이었지만
내 삶의 방향은 달라졌다.

나도 노력하면 할 수 있구나.
내 몸은 나를 배신하지 않구나.

그 깨달음이
다시 걷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길에 선다.


당신의 마리차사나 C는 무엇인가요?
오늘, 당신은 어떤 한계를 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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