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유방암이 열어준,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챕터

by Mimi

발리에서의 한 달 살기는 말 그대로 현실 도피 여행이었다.
서울의 긴 겨울을 피해 요가도 해보고, 느긋하게 쉬며
잠시 숨을 고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여행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 중심에는 아쉬탕가 요가가 있었고,
그 요가는 내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주었다.


너무 짧았던 한 달, 그래서 시작된 연장과 연장

한 달 계획으로 떠난 발리 여행은
아쉬탕가 요가에 빠져들면서 자연스럽게 한 달을 더 연장하는 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한 달은 요가를 배우기엔 너무 짧았다.

프라이머리 시리즈의 순서조차 외우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버렸고,
몸도 마음도, 나는 아직 발리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또다시 비자 연장을 위해 싱가포르를 다녀왔다.
리턴 티켓도 한 번, 두 번, 세 번째까지 미뤄졌다.

“이렇게 즉흥적일 수 있나?”
스스로도 의아했지만,
아마 INTP의 P 기질이 자연스럽게 이끌어낸 선택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비자 연장을 위해 당일치기로 싱가포르를 다녀온 날에도
피곤한 몸을 끌고 다시 우붓 샬라로 향해 수련을 이어갔다.

허리를 비틀고, 안 되는 몸을 비하하고, 체념했다가—
그러다 어느 날, 마리차사나 C가 되었다.
허리 뒤에서 양 손끝이 닿고, 다섯 호흡을 버틸 수 있었다.
그 순간, 몸이 먼저 나에게 말했다.

“너는 할 수 있어.”


넘어지는 것을 넘어선 순간

시르사아사나(헤드스탠드)는 늘 샬라에서 쾅하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조용한 공간에서 그 소리는 유난히 크게 울렸고,
모든 시선이 내게 향하는 것 같아 창피했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와

이불을 깔고, 베개를 놓고, 끝없이 연습했다.

그렇게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을 즈음,
나는 혼자서 거꾸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머리서기로 스물다섯 번의 호흡을 유지하며 버틸 수 있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아사나들을 하나씩 완성해 갈 때마다
내 안에서는 아주 작은 불꽃이 켜졌다.

그러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용을 쓰는 거지?”

머리는 멈추라 말하는데도,
몸에 각인된 ‘해내야 한다’는 오래된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사업을 할 때도,
대학원에서 논문을 쓸 때도,
나는 늘 ‘내 몸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게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방식은 나를 병들게 했다.

바꿔야 했다.
바뀌어야만 했다.
더는 예전의 방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나를 하나씩 해내는 과정은
유방암 투병 이후 흐려졌던 삶의 용기를
천천히 되살려주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 삶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이유가 생겼다.


아사나를 넘어서, 요가의 본질로

아쉬탕가 요가를 시작한 지 5개월.
아사나뿐 아니라 요가의 철학과 전통,
조금 더 깊은 세계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쉬탕가 샬라는

안 되는 자세에 대한 짧은 설명과 핸즈온이 전부였다.

그래서 조언을 구하고자 용기 내어 메일을 보냈지만,
돌아온 것은 링크 하나.
“이 글 읽어보세요.”

기대했던 따뜻한 가르침 대신
차가운 벽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Light on Yoga, Yoga Sutra, Yoga Anatomy.
책을 주문하고,
틈틈이 구글과 유튜브를 찾아보며
나만의 속도로 요가의 세계를 더듬어갔다.

그 과정은 외롭고 더뎠지만,
배움에 굶주려 있던 시간들이었다.


마리차사나 D, 새로운 임파서블 미션

그러던 어느 금요일 led 클래스.
공인 티처는 갑자기 내게 말했다.

“D를 해봐요.”

마리차 사나 D는 훨씬 더 깊은 트위스트가 필요한 동작이다.
한쪽 다리를 로투스로 올리고,
반대쪽 무릎을 세운 뒤
그 다리를 반대 팔로 감아
허리 뒤에서 두 손을 맞잡아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 그 마지막 작은 거리는
쉽게 닿아주지 않았다.

“아… 또 다른 임파서블 미션이구나.”

C도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결국 해냈다.
그러니 D도 언젠가는—

하지만 느낌이 왔다.
3개월이 아니라 6개월,
혹은 1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예감.
그렇다면 나는 이 샬라를 쉽게 떠날 수 없겠구나.


말 걸기 어려웠던 샬라, 그러나 분명 존재했던 진심

뜨겁게 흐르는 땀,
흠뻑 젖은 타이트한 요가복,
깊은 호흡과 에너지가 오가는 공간이다 보니
선생님들은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학생들과 거리감을 유지하려 무척 애쓰는 분위기였다.

그 흐름 속에서 나 역시
오해 살 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계속 검열하며 지냈다.

흐트러진 머리를 묶을 때도
‘혹시 이게 플러팅으로 보이면 어쩌지?’
쓸데없는 걱정을 해야 했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혼자 버티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감정 에너지를 소모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가르침은 진심이었다.
그 점만큼은 분명했다.

마지막 날,
선생님은 마치 다시 만날 일은 없다는 듯
등을 돌린 채 “여기까지”라고 말하는 듯한 뒷모습만 남겼다.

나는 조용히 감사 인사를 이메일로 보냈고,
그는 내 발전을 보는 것이 좋았다는
짧고 간단한 답장을 보내왔다.

5개월 동안 매일 아침 땀을 흘렸던 곳.
내 삶의 방향이 크게 바뀐 곳.
그곳을 떠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더 아팠다.


우붓을 떠나며 남은 것들

그리고 우붓 역시
쉽게 떠날 수 없는 곳이었다.

단골 빨래방,
마사지 테라피스트 아쉬,
비건 레스토랑 ‘사유리’,
홈스테이의 꼬망,
길에서 손을 흔들어주던 샤롱 아주머니까지.

발리에서의 일상은
어느새 나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이곳에 정착할 수만 있다면
정말로 살고 싶은 곳이었다.

풀문이 밝게 뜬 감성 충만한 어느 날,
그렇게 우붓을 떠났다.


짱구에서 만난 새로운 샬라, 그리고 몸의 진실

짱구의 샬라는 정글에 둘러싸인 열린 공간이었다.

수업 전 모두 함께 아쉬탕가 오프닝 만트라를 외웠다.

"완데이 구루나..."
처음엔 낯설고 약간 주술적이라 느껴졌지만
아쉬탕가에서는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며칠 뒤, 여자 공인 티처가 말했다.
“왼쪽 트위스트가 왜 이렇게 안 돼요?
혹시 수술이나 부상이 있었어요?”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오른쪽 가슴과 겨드랑이 수술 이력을 말했다.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수술한 쪽 조직이 아직 타이트할 수 있어요.
조금씩 풀어주세요.”

그제야 깨달았다.
왜 오른쪽 어깨가 늘 아팠는지,
왜 왼쪽 트위스트가 그렇게 어려웠는지.

아쉬탕가를 하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진실이었다.
내 몸의 구조, 한계, 그리고 수술이 남긴 흔적.


비건으로 이어진 삶의 새로운 기준

요가를 하며 식단도 자연스럽게 비건으로 바뀌었다.
몸이 가벼워지고
수련도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아쉬탕가의 첫 번째 계율, 아힘사(비폭력).
살생을 하지 않는 삶의 태도는
요가 수련과 자연스럽게 닿아 있었다.

유방암 이후 읽었던 문숙의 책 속 문장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신선함’이라 부르는 생선의 파닥 거림은
사실 죽어가는 존재의 고통의 몸부림이라는 것.

그리고 그 고통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우리에게로 스며든다는 것.

그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고,
비건으로의 전환은 어떤 면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그리고 유방암이 남긴 선물

그야말로 먹고, 요가하고, 마사지를 받으며 흘러가는 나날이었다.
내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을 수 있다니—
유방암이 아니었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삶의 방식이었다.

가끔은 불안도 찾아왔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일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지만 유방암은
전혀 다른 진실을 알려주었다.

삶은 생각보다 훨씬 짧고,
얼마나 남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 사실은 오히려
삶을 당겨서 사는 용기를 주었다.

하고 싶은 것을 지금 하는 용기.
잠시 멈춰 서도 괜찮다는 허락.

발리에서 보낸 6개월은
그런 의미에서
유방암이 내게 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다음 여정은, 인도

그렇게 발리에서의 6개월을 뒤로하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다음 목적지가 정해져 있었다.

요가의 본고장, 인도.

발리가 나를 요가로 이끌어준 곳이라면,
인도는 나를 더 깊고 넓은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그 여정을 기약하며,
나는 발리의 마지막 일출을 조용히 마음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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