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알았다.
38년의 내 인생을 가만가만 되돌려 보면
결혼 전의 '나'와 결혼 후의 '나'를 떠올려 보게 됩니다.
결혼 전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서 신발도 채 벗기도 전인데 들려오는 우리 엄마 목소리
"저녁 먹으러 얼른 나와"
들고 있던 가방은 침대 위에 툭 던지고
손만 씻고 나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깎아주신 과일까지 먹고 나면
"잘 먹었습니다. "
라는 말과 함께 이내 내 방으로 들어갑니다.
음악을 듣거나 못다 한 업무 정리를 하거나
침대에 벌렁 누워 남자 친구와 하하호호 통화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들려오는 '달그락달그락' 소리
그땐 그 소리가 그저 부엌에서 들리는 일상의 소리인 줄 알았습니다.
방에서 뒹굴 뒹굴 하고 있으면
'우리 딸 왔어? ' 하며 늦은 퇴근길에 내 방문을 배꼼 여시는 아빠
그렇게 '오셨어요'라는 말과 함께
어김없이 식탁 위에서는 또 한 번의 만찬이 차려지고 다시금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납니다.
아침에 출근할 때면 여기저기서 엄마를 부릅니다.
'엄마 내 스타킹' , ' 여보 치약이 어딨지?' , '엄마 와이셔츠 안 빨었어 아 짜증 나?'
그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늦어서 허둥지둥 나가는 딸에게 현관까지 쫒아 나와서
아침이라도 먹고 가라며 건넨 과일 주스마저도 늦었다고 짜증 섞인 목소리만 남기고
문을 쾅 닫고 나와 버린 적도 많았습니다.
그때는
엄마는 늘 그렇게 해 주는 줄 알았습니다.
결혼을 하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늘 우리 집 화장실 장에 빼곡히 들어있던 치약, 칫솔, 샴푸 비누....
우리 집에는 늘 있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엄마만 부르면 다 갖다 주었던 그것들은
우리 엄마가 늘 가족들을 위해서 미리미리 챙겨 놨다는 것을 결혼해서 알았습니다.
결혼해서 시작하는 새로운 우리 공간 텅 빈 그 공간은
누군가가 채우지 않으면 계속 비어져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었습니다.
우리 엄마가 늘
불편해지기 전에 가족을 위해 늘 채워놓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오늘은 뭐해 먹지 하며 푸념 섞인 말을 하던 엄마의 한숨이 그땐 그게 무슨 고민 인지도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퇴근길에 오늘은 또 뭘 해 먹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나를 보며,
엄마가 그동안 차린 그 밥상이 가족을 향한 무한한 사랑이었음을..
근데 우리는 그것을 너무 당연한 듯 생각하며 살아왔음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얼마 전 나도 출근하느라 바쁜데도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오랜만에 주먹밥을 해서 그거 먹이겠다고
현관까지 나가서 늦었다고 가는 남편 입에 넣어주려고 그 주먹밥을 들고 따라가는데
주먹밥은 입에 넣지도 않고 나 늦었어하며 쌩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적잖이 화도 나면서 괜히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먹으려고 했냐? 너 먹인다고 했지?
그러면서 결혼 전 엄마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듯 그래도 괜찮은 줄 알고 했던.. 이기적인 행동에
괜히 울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부모님이 주셨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단단했으며 그리고 무한한 사랑이었는지를 요
그리고 그 사랑 덕에 저는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들어 새로운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음을요
일요일 저녁
저는 오늘도 냉장고에 쌓아있는 날짜 지난 음식들을 빼내며, 여름에 입을 옷을 넣고 겨울옷을 꺼내며,
김치 냉장고에 김치를 꺼내 일반 냉장고에 넣으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힘들다고 투정부려 봅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좋은 엄마 우리 엄마
그러면 우리 엄마는 ' 힘든데 그런 거 하지 말라고, 나중에 엄마가 도와 주께' 이럽니다.
엄마의 사랑
또 한 번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