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마지막 밤
짠한 로그아웃 그러나 새로운 재부팅
집은 결국 완벽하게 하지 못한 채, 떠나는 날 오전까지도 집 정리를 하면서 언제 호텔 가냐는 가족들의 걱정 아닌 걱정을 받고 나서야 우리는 캐리어를 들고 거의 2시가 넘어서야 집을 나섰다.
내가 상상했던 아일랜드 떠나기 하루 전 그날은 짐은 이미 다 깔끔하게 싸놓은 상태에서 정리된 집을 마지막으로 체크한 뒤 아주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공항 호텔에 1-2시쯤 도착해서 여유 있는 체크인을 해놓고 평일에 사람도 없을 호텔시설을 내 것인 양 호사스럽게 누리는 것이었다. 미리 사람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며 한국에서의 마지막을 쿨하게 마무리하며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도 해보고, 호텔 주변을 산책하며 저녁엔 호텔 헬스장에서 운동도 하며.. 물론 밤에는 와인 한잔 기울이며 한국에서의 마무리와 아일랜드에서의 시작을 응원하며 치얼스 정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우리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와인은 무슨.. 수영은 무슨... 호텔 가기 직전까지 정리에 정리를 거듭하고 집을 나가기 직전까지 빠진 건 없는지 중얼중얼거리며 체크에 체크를 하며 정신없이 보내야만 했다. 이젠 호텔로 가야지라고 생각했을 때쯤 23kg짜리 캐리어 3개와 이미 무게를 가늠할 수 없어 오버 차지를 내버리겠다고 생각한 30kg이 넘는 캐리어 4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생전 처음 1인 2개씩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 가야 하는 상황 거기에 아일랜드를 향한 꿈을 담듯이 같이 담아 버린 수많은 짐들로 이미 우리의 캐리어는 터지기 직전의 자태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짐을 줄이고 줄인다고 했지만 1년간 가서 생활해야 한다는 불안함과 기대감이 만든 짐들은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갔다. 넣고 빼기를 반복하고 겨울 패딩 같은 건 아예 넣지도 못했는데 이미 혼자서 들기도 벅찰 만큼의 무게가 들어가 버려 더 널 수도 없었던 캐리어들.. 그동안 나를 감싸 앉고 있었던 아일랜드를 간다는 즐거움과 기대가 사라져 가는 느낌이었다. 미니멀 라이프로 아일랜드에서 살자 살자 다짐해 보지만, 백수로 한 푼 벌지 못하고 아일랜드에서 살아낸다고 생각하니 자꾸 캐리 어안에 나는 뭔가를 넣고 있고 남편은 옆에서 무겁다며 빼기를 반복하며 담긴 캐리어 4개.. 이걸 어찌 들고 갈 수나 있을지 시작부터 순탄치 않을 것임을 직감하는 순간이다.
각자 한 개씩 들고 여행을 다니던 일반 여행은 캐리어를 들고나가는 순간부터 설렘이 상승이었건만 오늘은 시작부터 쉽지가 않다
"남편~ 우리 이거 잘 끌고 갈 수 있을까? 와.. 이거 들리지도 않는다 우리 뭘 넣은 거지?"
무게를 감당 못해 빼고 또 뺀 그래서 차마 캐리어에 실지도 못한 참지 캔들이 나도 아일랜드에 가고 싶다며 쳐다보고 있는 이 판국에 우리의 캐리어엔 뭐가 들었길래 이토록 무거운 건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툴툴 거리는 바닥이 죄다 아스팔트였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며 캐리어를 끌며 나의 전투력은 계속 상승 중이다. 꾸역꾸역 서로를 돌아보며 잘 오는지 체크해주며 그렇게 멀어 보이던 그 길을 지나 저녁 6시가 다돼서야 우리는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 오면 엄청 설레고 떨리고 웃음이 절로 세어 나올 줄 알았건만 나와 남편은 이미 녹초가 되어 룸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남편 우리 여기까지 어떻게 온걸까? 아일랜드 가는 거 맞지? 우리 무슨 막노동 하고 온 사람들 같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일 잘 일어나서 공항 갈 수 있겠지? ㅎㅎㅎ"
"그러게 정말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온 것 같다. 우리 낼 못 일어나면 그냥 집에 다시 가야 되는 건가? "
침대에 누워서 남편과 나는 우리의 신세를 한탄하며 낄낄거려보며 잃어버린 아일랜드로의 설렘을 주섬 주섬 주서 모으며 다시 떠날 기운을 모아 보았다. 모아진 기운을 담아 우선 호텔 사우나에 가서 오늘 하루 고생한 지친 몸을 깨끗이 씻어낸 뒤 우아한 와인은 아니지만 시원한 맥주를 꺼내 들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잔을 기울였다.
"캬~너무 시원하다. 맥주 라도 마실수 있어서 다행이다 "
"이게 어디야 더 늦게 왔음 아마.. 우리 호텔도 못 왔을 거야! 고생한 만큼 우리 아일랜드에선 더 많이 웃고 즐겁게 보내보자! 더 사랑해보자 우리 인생 그리고 우리^^"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맥주 한잔에 웃을 수 있는 참 소박하지만 그런 삶이 좋아 같이 잘 살고 있나 보다.
시원한 맥주로 우리는 지친 몸을 달래 보며 잠시 가출했던 우리 둘의 긍정 마인들을 다시 찾아왔다.
참 버라이어티 했던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해보며 앞으로 어떤 일이 우리에게 펼쳐질지 미소를 머금고 잠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