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연인 사이
지금의 남자 친구와는 어느덧 4년째를 맞는다. 매번 '2년 반'부터 사랑이 점차 식기 시작했던 나이지만, 다행히 이번 연애는 순조로운 편이다. 요몇년간 삶의 곡선이 순탄하지만 못했던 탓도 있겠다. 2018년도 즈음엔 불면증을 겪었고, 작년에는 갑상선암 수술과 올해 초에 자궁근종 수술까지. 내 몸 하나 챙기기도 여의치 않았달까.
그런 와중에 옆에라도 있어주는 남친이 그냥 고마웠다. 만약 몸도 건강하고 돈도 계속 그럭저럭 벌고 있었다면 또다시 한눈을 팔았을지도 모른다. 나에겐 항상, '설레는 것'이 그토록 중요했다. 흔한 말이지만, 누군가에게 설레지 않으면,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시절 소중한 사람들을 바보처럼 잃어버리기도 했다.
몸이 아프고, 사회에서 불필요해지는 것 같이 느끼는 순간에, 같이 있어준 사람의 존재는 참 소중했다. '내가 잘 보이려 했던 이'들은 내가 몸이 아파서 불필요해지자 바로 등을 보였다. 깜깜한 병실에서 혼자 고통을 견디면서, 이전의 나의 모습 중 '타인에게 충성하려고 했던' 그런 모습들이 참 쓸데없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이들을 안아주기보다 항상, (내가 어떻게 되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남들에게 잘 보이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었다.
연세가 있으시고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을 대신해서 수술을 받을 타지까지 날 따라와 있는 남친이, 그런 사람들보다 더 중요하다면 중요했는데...
물론 지금도 종종, 남친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때도 있다. 그저 익숙하고 편해서 내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버리기도 하고, 괜한 일들에 앙탈을 부리기도 한다. 그래도 앞으로 새로운 직장에 나가서 여러 사람을 마주치더라도 내 삶의 우선순위를 잊지 않고 싶다. 별거 아닌, 스쳐 지나갈 사람들 때문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나의 소중한 이들을 먼저 지키고 싶다.
결혼에 대해서 생각하면... 서른 살이면 결혼해서 애가 둘이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다지 결혼을 서두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누구랑 결혼할지에 대해서는, '아마 이대로 가면 이 사람과 할 거 같다'라고 생각한다. 남친이랑 같이 있으면 그냥 편하다. 서로 특별히 숨겨야 할 부끄러운 것도 없다.
어떤 연인들은 부부 사이가 될 때까지도 방귀나 트림을 트지 않는다고 하던데, 우리에게 그건 이미 옛일이다.
우리는 바보 같고 괴짜스러운 면이 맞아떨어질 때가 많다. 별거 아닌 일로 바보두형제 같이 실실거리고 낄낄거린다.
남친에게 무엇인가 특별한 이벤트를, 선물을 해주고 싶은 그런 날도 있지만, 억지스럽게 그런 일을 벌이지는 않는다. 안 내키는데 굳이 애써서 할 필요를 못 느낀다. 이런 점이 편하다.
항상, 누군가를 사귀거나 할 때 상대방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한 특별한 그 무엇을, 돈을 쓰고 체력을 써가면서 준비했었다. 어쩌면 그런 일들은 상대방보다 나 자신의 욕망을 더 충족시켰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나 스스로가 너무 그러려고 하지 않아서 편하다. 연애를 하면서 머리를 쥐어짜기보다는, 편하게 쉬는 편이다. 애써 노력해서 무언가 거창해 보이는 것, 나의 노력을 알아봐 달라고 하는 것을 준비하지 않는다. 정말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것들이 생겨도 거창한 거라기보다는 사소한 것들이다. 샌드위치를 만들거나, 김밥을 싸거나 하는 일들... 그에게 잘 어울릴만한 옷을 하나 사는 일 같은.
힘들여서 빼빼로를 만들거나 초콜릿을 만들지 않는다. 그랬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체력이 달리는 건가?
서로를 만나면 외적인 면에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사소한 데서 챙겨줄 줄 안다. 이때에 얘가 이게 필요하고 저건 괜찮고... 이런 것들...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4년이라지만 학창 시절의 연애와는 다르다. 학창 시절에는 주 7일을 얼굴 보면서 연애했지만, 직장인이 되어 만난 지금의 남친은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 보는 것이 다다. 그래도 뭔가 그만큼의 애틋한 것은 없더라도, 익숙하고 편하고,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것을 많이 바라지 않는 것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