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혼자가 제일 편한 걸까..
오랫동안 가입만 해놓고 안 나가던 등산모임에, 평일 등산 일정이 잡혔다. '이제는 나가야지'하고 고민하다 참석을 눌렀다. 혼자서 동네 뒷산만 다니니 약간 권태로운 기분이 들기도 했기에, 뭔가 전환점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림 그리기 모임, 독서모임은 많이 해보기도 했고, 코로나라서 밀폐된 공간에서의 만남은 부담스러워졌다. 그냥, 사람도 좀 만나고 싶어 이참에 운동모임에나 들자 했었고, 몇 개월 전 등산모임에 가입을 한 것. 필자는 6개월 정도 백수로 지내고 있어서 일부러 '평일에도' 등산을 하는 모임을 찾아서 들었지만, 대부분 모임원들이 직장인이었기에 주말에만 주로 일정이 열렸다. 주말에는 직장인 남자 친구와 일주일에 딱 한두 번 보는 날이라서 등산모임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평일 등산모임이 열린 것. 아직 정확한 장소와 일정은 미정이긴 하지만, 모임장의 참석 투표 이후 바로 두 번째로 참석 투표를 했고, 오늘까지 인원이 5명이다. 이름만 보면 다들 남자인 거 같아서 괜히 어색하고 불편할까 봐 걱정을 했는데, 마지막 5번째로 투표한 이는 여자였다. 등산모임 가입 후 자기소개를 써야 하는데, 이곳은 자신의 사진도 같이 올려야 한다. 이점이 다소 부담스러웠는지 여자들은 그저 뒷모습 사진을 올리거나 멀리서 찍은 사진을 올리고는 했고, 나도 마스크로 거의 얼굴의 대부분을 가린 사진을 올렸었다. 문득 5번째의 여성분은 어떤 분일까 궁금했고 그녀의 자기소개를 본 후, 이번 모임에도 역시나 불참할 수밖에 없을까 하고 잠시 고민했다. 다름 아니라 그녀의 사진에 군살 없는 몸매가 그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괜히 옆에 서서 비교당하고 싶지 않은 섣부른 걱정이 들었다.
'뭐, 어때. 인생에서 그저 스쳐 지나갈 사람들인데 그렇게 잘 보일 필요도, 그들의 시선이나 생각에 신경 쓸 필요도 없잖아, 게다가 이번에는 꼭 참여해야지 모임 규칙에도 맞기도 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저 산을 타러 가는 것이다'하고 수없이 되뇐다. '사람을 보러 가는 것보다, 산을 타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물며 애인을 만들러 가는 것도 아니다'. 하며..
원래 55, 66 사이즈를 입다가 여성의류는 이제 아예 배제하고 나00, 아000의 2XL를 자연스럽게 의문 품지 않고 사 입다 보니, 평소에는 무감각하게 지내다가도, 이렇게 가끔씩 생기는 일들로 스스로 주눅이 들어버리기도 한다.
괜히 나서서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또 원체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니(마치 강아지처럼..) 나도 모르게 모임을 한두 개씩을 들고 있다. 거기서 만난 이들에게 꼭 잘 보일 필요도 없는데도 괜히 밉보일까 봐(?) 지레 겁을 먹는달까..
MBTI로 따지면 INFP-T. 뭔가 안 봐도 될 남의 눈치를 되게~ 본다. 남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일에 대해 1부터 10까지 생각하기도 한다. 어제 안 사실인데, INFP-A랑은 달리 안 해도 될 자책도 그렇게 많이 하는 유형이라고 한다. MBTI에 대해 빠지면 한도 끝도 없는 면도(계속 캡처해서 카톡을 해대니..), ENTJ인 남친이 'MBTI인간유형론'에 질색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튼 MBTI나 혈액형 성격론 같은 내가 파고들만한 분야에 관한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원체 성격도 소심하다 보니, 안 해도 될 배려나 생각까지 하고.. 사람들이랑 굳이 안 부딪히고 온실 속 화초처럼 집에만 있는 것이 나를 진정 생각해주는 이들의 걱정을 한결 덜어주는 방향이긴 하겠지만..
속으로는 고양이같이 무심하게 사는 것을 꿈꾸지만, 겉으로는 사람이 좋은 강아지 같은 면도 있다 보니..
고요하게 혼자 잘 지내다가도, 사람을 한동안 안 만나곤 못 배겨!라고 하는 면이 종종 얼굴을 들이민다.
그렇다고 모임에 나가도 그만큼의 진솔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일회성인 만남들이고, 이제 만나면 또 언제 볼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누군가, 인생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시간낭비인 일을 말할 때, 나의 이런 사람을 만나는 부질없는 일도 포함되는 느낌이랄까..
솔직히 어렸을 적 초등~고등학생의 갖은 만남들에 비해, 이제 서른으로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다소 피곤한 과정이기도 하다. 다들 지켜야 할 위신이나 체면 같은 것들을 가지고 약간의 가면을 쓰고 만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에서 그저 돈 많이 버는 직업으로 인식되는, 나의 직업에 대해서는 말을 흐린다. '우와, 돈 많이 버시겠네요'라거나, '공부 잘하셨겠네요'이런 말들을 듣기가 불편하다.(이것도 INFP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겠지..)
모임 얘기는 이쯤 하고, 몇 년 새 불어난 몸 때문에 주눅 드는 일들은 종종 있다. 꼭 주눅 드는 듯한 감정을 동반하진 않더라도, 지하철에 남은 상대적으로 비좁아 보이는 자리를 그냥 모르는 체 지나갈 때도 그렇고..
들어가 보지도 않을 여성 매장의 의류에 무심코 시선이 갈 때, 그런 나를 바라보는 점원의 시선이 느껴질 때도 그렇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이런 '상황'들에 노출이 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피하는 편이다.
백화점에서 2층 3층 이런 여성의류 코너는 그냥 에스컬레이터만 거쳐간다든지..
솔직히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온라인 쇼핑이 편한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마냥 내 몸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두 차례 수술을 거치면서 일을 쉬고 있는 중, 매일 등산을 하려고 노력한다. 등산을 하면서 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흠뻑 취해서 쉴 새 없이 뛰는 심장소리도 듣고, 관자놀이 옆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느끼기도 한다. 혼자 하는 등산에서 가끔 마주치는 타인들 외에 의식해야 할 남은 없으니, 등산모임을 나서는 것과는 그런 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결론적으로 이번 주 평일 등산은 날씨만 따라주면 나갈 생각이다. 아마 우천 시에 모임 자체가 자동으로 취소가 될듯하다. 뭐, '예쁜 몸매의 여자에 마주하는 방법'을 잠시 생각해보면, 그저 내가 남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기도 하다. 그녀와 사랑싸움을 벌일 것도 아니며, 같이 공동의 목표(아마 정상 지점 도달)를 추구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한데.. 이런 '남자 되기'라 할까.. 이 방법은 나에겐 꽤 익숙한 방법이다.
내가 되는 남자의 스타일은, 무심하고 여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서 당연히 완전한 남자의 모습은 아니지만, 동시에 여자들의 알력싸움 같은 것과 이쁜 척, 남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들을 나로부터 배제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나에게 망토를 두르고 가면, 한결 마음이 편하다. '00언니~ 이거 어디서 샀어요?', '립스틱 색깔 너무 예뻐요~' 이런 말은 사실, 해본 적이 없다. 이런 망토를 차고 살아와서 그런가 보다.
학창 시절에 편입으로 인해, 나보다 2~7살 많은 언니들과 같이 학과 생활을 해왔지만, 항상 이런 망토를 차고 있었고, 언니들도 그런 것이 나의 스타일임을 알았다. 굳이 손뼉을 짝짝 치면서 반가워하거나 '우리 다시만나요오'하지 않아도, 우리의 다음 약속은 자연스레 잡혔다. 뭐, 그렇다고 여성스러운 일들에 대한 도움(예를 들면, 아이라인을 칠한다거나 하는 방법)을 간혹 받기는 했으나..
그저 동성이든 이성이든 누구와도 도토리 키재기를 할 마음을 품지 않고, 무심하게 등산에 임하러 가는 것.
그 누구에게도 잘 보일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이런 것이 선천적으로 타고나서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차도남/차도녀가 될 수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원체 사람을 좋아하는 뚱뚱멍멍이 성향이라.. 이렇게 의식적으로 자제하고 누그러뜨려야 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고, 사람 사이에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 올해 서른이지만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