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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과 진달래가 자라는 산속

감사해요, 00산신님.

by 박냥이

이제 봄인듯하다. 늘 가는 등산로에 각종 꽃이 피고 여기저기에 쑥을 캐는 사람들이 보인다. 주말이면 두세 배로 땅에 달라붙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엄마의 쑥국은 내가 참 좋아하는 음식이다.

집 바로 뒤에 산이 있어 보통 여기서 쑥을 캐거나, 시골집의 밭에서 캐오신다. 나는 늘 쑥국을 먹기만 하고 최근에야 엄마가 캐온 쑥을 다듬기만 했지, 직접 쑥을 캐본 적은 없다. 산에 자주 가시는 엄마는, 쑥을 캐는 도구들을 준비해 가지 않은 날에도, 손으로 쑥을 종종 뜯어오셨다.

최근 들어 무릎이 안 좋은 엄마는, 예전에 나와 함께 가끔 가곤 했던 정상 부근까지 가는 게 힘들어져서 그곳까지는 나 혼자 다니고 있는데, 그곳에도 주말이면 쑥을 캐는 사람들이 보였다.

항상 엄마가 캐서 만든 쑥국을 얻어먹기만 해서, 미안한 맘에 오늘은 늦은 오후의 등산 동안 맨손으로 잠시 쑥을 뜯었다.

쪼그리고 앉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서 다리가 저리면 이리저리 장소를 이동해가며 별로 많지 않은 쑥을 뜯었다. 엄마 말마따나 '쑥은 한자리에 앉아 뜯어야 한다'하지만, 아끼는 옷을 괜히 버리기도 싫고 그냥 쪼그려 앉거나 허리를 숙여서 대충 뜯는 게 최선이었다.

게다가 쑥을 넣을 비닐도 안 가져와서 등산할 때 늘 차고 다니는 힙색에 쑥을 담았다.

엄마는 보통 뿌리 위를 칼로 자르시는데, 나는 손으로 뜯다 보니 영 오졸없이 잎을 뜯어댔다. 그러다 쑥의 뿌리까지 뜯겨져 나올 때는, 산속의 거의 모든 생물에 의인화를 하는 편인 나는, 뽑혀버린 쑥님에게 죄송합니다하며 그를 다시 흙으로 허접하게 덮었다.

얼마 캐지도 않았지만 괜히 욕심부리면 힘들다. 거기다 다리도 아프다. 대강 마무리하고 내려오니 엄마도 쑥을 캐고 계신다. 나의 힙색에 엄마가 캔 쑥까지 넣어서, 먼저 집으로 들어온다.

어제부터 집에서 쉬고 계시는(이전까지 열흘 정도 시골에서 일하다 오심) 아부지한테, '아부지~ 그래 가만히 있을게 아니다'하고 괜히 엄포를 놓는다. 신문지를 펼쳐놓으니 오늘 아침에도 같이 파를 다듬었던 아부지는, '왜 또 머 있냐'라고 하신다. 당연하지 하고 힙색에서 쑥을 쏟아붓는다. 중간에 저녁식사를 하긴 했지만 장장 1시간 동안 아부지는 쑥을 다듬으신다. 나도 최근에 해보았는데 오래 하면 눈이 엄청 피곤하더라..

나중에 귀가하신 엄마의 쑥이 더해진다. 아부지 눈이 피곤해 보여서 나중에 하자고 치워놨더니 다시 또 하신다. 역시 울아부지 끈기가 대단하다.

그사이에 아빠와 나는 저녁식사를 마쳤다. 어제 엄마가 끓인 쑥국과, 김치찌개를 데우는데 쑥국은 찹쌀도 들어가서 진득해서 그런지 끓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 슬슬 저어준다. 드디어 용암이 끓는 듯(?) 마치 만화영화에서 스프가 보글보글 끓듯이 '엄마표 걸쭉하고 진한 쑥국'에 방울방울이 하나씩 일어난다. 요새 나는 쑥국에 흑미밥을 말아먹는다. 가뜩이나 진득한 쑥국인데 흑미까지 넣으면 더 밀도가 높아진다. 마치 잘 끓인 죽을 먹는 느낌.

쑥을 캐보고 손질도 해보니, 다른 국은 남겨도 쑥국은 절대 남기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 아부지가 쑥국을 남기는 걸보고, '내가 어떻게 손질했는데 남기면 안 된다~'라고 했더니, 엄마가 웃으면서 '어휴, 니는 다른 국은 그래 남기면서 뭐라캐샀노'라고 하셔서 인지한 사실이다. 그런데 아부지가 오늘 쑥을 한참 동안 다듬고 계시니, 인제 또 잔소리할 핑곗거리가 없어졌다.


너무 쑥 얘기만 써서, 잠시 진달래 얘기로 가보면.. 이틀 사흘에 한 번씩은 꼭 오르는 동네 뒷산에 몇 주 전부터 진달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진달래는 꽃부터 나고 잎이 다음에 난다던가.. 철쭉이랑 헷갈려서 검색해보니 서로 꽃과 잎이 나는 순서가 반대인듯했다. 여튼, 진달래는 하루하루 다르게 피고 졌다. 부산 대저의 유채꽃밭만큼 가득하게 꽃이 심어져 있지는 않지만, 군데군데 보이는 분홍색 꽃 무더기가 참 보기 좋다.

등산을 하면서 진달래 사진을 여러 장 찍어 가족들과 이모들에게 보낸다. 엄마한테 말했더니, '꽃잎 좀 따오지'하신다. '아니, 다른 사람들도 구경하게 놔두지, 먹을 거 많은데 그것까지 먹으려고?'라고 능청스럽게 넘겼지만... 어느 날 엄마손에 진달래 꽃잎 한 봉지가 들려온다. 그걸로 오늘 술을 담았다.

'진달래 전 해 먹으면 안 되나? 엄마 술 마시는 거 별론데..' 해봐도 이미 술은 두병 담아졌다.

엄마 같은 사람이 한둘은 아닌갑다. 오늘 하산하는 길에 엄마가 딴 봉지보다 두배로 많이 무엇을 비닐에 넣고 가는 사람을 보았다. 진달래나무 인근을 어슬렁 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그쪽도 진달래를 따가는 듯했다.

에휴.. 뭐, 오늘 보니 진달래나무 몇몇에는 꽃잎이 져서 땅에 떨어진 것도 있더라만.. 그래도 산행객들 구경하게 좀 놔두면 안 되나.. 뭐, 내가 이렇게 생각해봐야 이미 엄마는 진달래술이 얼른 맛이 들기를 기다리고 계실지도 모른다.


쑥을 캐면서, 문득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만약 돈이고 뭐고 가난해서 뭐하나 사 먹을 돈마저 없다면, 이렇게 쑥이라도 캐먹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또 공상을 해봤다. 그러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 산에 다니다 보니, 외로운지.. 무덤가를 지날 때도 그 속의 영혼(?)이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에, 괜히 '잘 계셨나요, 어젠 비가 많이 왔는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자연은, 우리 집 뒷산만 해도 공장이 들어선다고 여기저기 산을 깎아내고 있는데.. 이렇게 인간들은 자연에게 그렇게 해준 것이 없는 것 같은데도 준 것도 없는 우리에게 쑥이나 진달래 같은 먹거리를 내어준다.

우리 집 뒷산에는, 산신을 모시는 조그만 사당이 하나 있다. 그래서 전래동화에서 들어본 그런 산신이 진짜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쑥을 캐면서 문득 감사했다. 비록 남이 버린 쓰레기까지 주워올 만큼 내가 부지런하진 않지만.. 다들 산을 아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먹고 난 과자의 포장지나 페트병이 자연에 그대로 버려지면 자신이 죽을 때까지도 분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은가 싶기도 하다.

있을 때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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