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는 순간 비밀이 되어버리는 곳
나도 무너져 내린 적이 있다. 처음에는 1인실에 있었다. 이후 부모님과 의사 선생님의 상의 끝에 다인실로 옮겼고, 주위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볼 수 있었다.
참, 이 시절은 나한테는 '잊고 살아야 할', '누군가에게 말하기 좀 그런', '오직 그 시절에 나와 가까운 이들만 아는' 그런 시간이다.
몇 주정도 잠을 이루지 못했고, 깬 정신으로 밤을 지새웠으니.. 정신이 망가지니 육체는 당연히 망가지는 느낌이랄까.. 처음에는 무작정 안 가려고 했던 정신과에 가족들과 같이 방문했다.
대학병원이라 시설이 잘되어있었고,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되어 있었으므로 그저 푹 쉬기에 나아 보였던 것 같다. 신경 쓰일만한 핸드폰도 쓸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서 비인간적이라거나 혐오스러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한없이 약해빠진 그 시절의 나 같은 사람들뿐이었으니.. 의료진들은 특별하게 별난 환자들을 경계하기도 했지만, 그 사람들이 그 정도로 위협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도 같은 공간에서 지내면서 처음에는 경계를 했지만, 그들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인 것을 조금씩 느꼈던 것 같기에.
그 시절 나는 무엇인가 끄적일만한 공책을 항상 들고 다녔고, 좀 시간이 지나서 얼굴을 트고 말을 하게 된 이들과 대화를 하고 여러 가지를 기록하는데 그 공책을 쓰곤 했다. 나는, 후회스러운 일 때문에 계속 과거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에 매여있었고, 사람이랑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그런 의문들에 대해서만 지껄이기 일쑤였다.
돌아오는 대답은 뭐 비슷비슷했던 것 같다. '과거보다 더 열심히 살면 되죠'.
열심히..라... 나는 꽤 열심히 살았다. 머리로는 아닐지라도 엉덩이로 공부를 장시간 해왔고, 땀 흘리는 노동은 아니지만, 미래의 목표를 위해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전을 하기도 했다.
사람이 너무 일찍 성공하면 탈이 난다는 것이 그런 것일까.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편입과 졸업을 마친 내가 무너질 이유 없이 무너져버린 것은, 그런 목표를 거의 이룰 정점에 이른 순간이었을 때니..
그곳에는, 흔히 사람들이 정신병원이라고 생각하면 떠올릴만한, 기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쩡쩡 울리는 듯한 소리를 질러대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대학병원의 특수성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감당이 어려운'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가는 것일까.. 여튼, 대학병원의 폐쇄병동은 조용했다. 조용해서 시간의 흐름도 느끼기 어려웠고, 이따금씩 얼굴을 비추는 의대와 간호대 실습생들이 약간의 활기를 더해줬을 뿐. 그들에게 우리는 그저, 케이스 대상일 뿐이었다. 나의 추측이 아니라, 특정 간호학과 실습생 중 한 명이, 날더러 '진짜 케이스 대상이지 않아요?'라고 잘생기고 키가 컸던 남자 의대 실습생한테 마치 나는 귀가 없는 듯, 생각할 줄 모르는 대상이라 생각한 듯 대놓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마 인생에서,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이곳의 환자들처럼 아플 일이 없으리라 생각한 듯, 마음의 병이란 것은 잘난 자신에겐 무관한 일이란 듯, 행동하는 그녀를 보면서.. 사실 조금 상처받았다. 그때는.
나는 꽤나 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녀의 얼굴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만약 그녀의 얼굴이 생각나고 의료현장에서 마주칠 일이 생긴다면.. 솔직히 말해선, 혐오스러울 것 같다. 뒤에서 '환자를 그렇게 대놓고 무시해놓고서는..' '돈 벌려고 나와있는 꼴이란..'
그녀에 대한 때 지난 미움의 감정은 다시금 접어놓고.. 그곳에는 나보다도 약하고 오히려 내가 챙겨줘야 할 것 같은 약한 이들이 많았다. 나의 맞은편엔 얼마 전에 남편을 떠나보낸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마지막 퇴원할 때, '00님이 결혼할 때 제가 한복 입고 갈게요, 하하'하고 인자하게 웃으시던 교직에 계셨던 할머니. 남편을 잃은 뒤 밥도 안 드시고 잠도 자지 않아서 자식들의 걱정에 조금 마음을 치료하러 오셨다고 들은 것 같다.
내 옆에는, 엄청 가냘픈 소녀가 있었다. 소녀라고 하긴 좀 애매한, 나랑은 얼마 나이차가 나지 않는 여학생이었는데, 공황장애가 있다고 했다. 겉으로는 명랑해 보이고 주위의 환자들과도 실습생들과도 잘 어울렸는데, 어느 날 그녀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우리의 병실에서 간호사가 있는 곳까진 꽤 거리가 있었다. 간호사들이 올 때까지 내가 그녀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안정시키려고 했다. 쉽진 않았다.
한참 후 의료진들의 도움을 받아 침대에서 안정을 찾은 그녀는, 한층 차분해져 있었지만, 그런 증상들이 자신을 덮칠 때는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렇게 약한 그녀였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니 나보다 용감해져 있었고, 나보다 더 의젓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아저씨는, 공장에서 다쳐서 원인모를 통증에 시달리는 질병을 얻었고, 그로 인해 다량의 약을 삼켜서 자살을 시도했던 분이셨다. 그렇다고 그의 성격이 모나거나 별난 것은 아니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성격이 별나서 자살을 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 오히려 약해 빠져서 자살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외출시간은 제한되어 있었고, 우리가 또는 가족이 원해서 입원해있는 기간 동안 저녁에 나가는 일도 없었기에, 그 시절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밤공기가 그렇게 좋은 것임을, 그 아저씨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제대로 다 열리지도 않고 크기도 작은 그 창문 사이로 밤바람이 불어왔고, 시원한 밤냄새가 코로 밀려왔었다.
매일, 침대에 누우면 그리 들고 싶지 않은 잠에 억지로 들어야 했고, 어느 대학병원을 가든 으레 보이곤 하는 그 흔한 천장의 무늬가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엄마는 그 공책을 나도 모르게 버렸다. 나가면 연락하자고 했던 많은 이들에 대한 정보와 일부의 연락처도 있었지만. 엄마는 내가 그곳을 나서면서 그곳에서 쉬었던 일을 잊고 새로운 시작을 하길 바랐던 건지도 몰랐다. 그곳을 나가니 카톡에는 몇 백통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다시 시작이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과는 다르게,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 아닌, 약해 빠져서 자신의 몸하나 간수하기 힘든 사람이 많았다. 글쎄,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꼭 질병으로만 봐야 할까?
열심히 강한 마음을 먹고사는 나에게는 무관한 것 같아 보여도,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감기 같은 것이다.
내 주위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꽤 있지만, 그들의 속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에게도 누구에게 말 못 할 아픔이 많다. 월에 몇 천을 벌어도 사실은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어서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숨이 턱 막히는 사람들도 있고. 이런 것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찾아온다. 성별도 상관없다.
20대 땐 괜찮았지만 갑자기 60대가 되어서 그럴 수도 있다. 반대로 10대에 찾아올 수도 있다.
나에겐 한창 잘 나가서 누구도 부러워할 것 없던 20대 때, 굳이 질병명으로 말하자면 불면증이 찾아왔다.
그 시절 날 잘 지키며 갔으면 그런 아픔을 겪을 일도 없었겠지만, 그 시절 나는 사람 한 명 두 명에 너무 흔들렸다. 나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 뭐, 살면서 그럴 때도 있는 것 같다. 사람이 한없이 강철같이 살 수 있을까.
그 시절, 저녁시간에 다 같이 모여서 우리는 저마다 다짐을 했었다.
A는, 이제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자고, B은, 자신을 더욱 아끼자고..
그들의 얘기를 하나하나 들으면서 그동안 무심하게 별 기대 없이 지내곤 했던, 어쩌면 이들보다 내가 더 잘났다 생각했었던 나의 눈에 어느샌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도 사실 강했다. 적어도 그 시절의 나보다는 그들이 한참 강했다.
부디, 그들도 마음 한 편에 말 못 할 그 시절의 비밀을 간직하고 살겠지만, 그때보다 더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