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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에서 얻은 생기

만보를 걷고, 후유증이 생기다

by 박냥이

부산의 장전동에 위치한 부산대학교. 비록 2년만 다니고 자퇴를 했지만, 부모님은 40년 가까이 몸담으셨던 곳. 부산대학교에 가면 아련한 추억들이 넘실넘실 피어오른다. 대학교 곳곳에 부모님과, 그 시절 연인들과 함께 했던 추억이 마치 비디오테이프처럼 그곳에 가면 저절로 재생된다. 사회관 앞 잔디밭 벤치에서는 생애 첫 고백을 받았었고.. 대학 입학을 앞둔 날에 웅비관 앞을 내려오면서 아직 입학하지도 않았지만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두세 번의 리모델링을 거친 2 도서관(지금의 이름은 잘 모르겠다)은 학과 시험, 편입 시험, 편입 후 타대에 갔을 때도 부산대가 좋아서 와서 공부하곤 했었던 곳이다. 지금은, 오래전 부모님과 함께 하던 공간은 리모델링으로 거의 사라진 지 오래이지만.. 마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나에겐 미화되어 있는 시간이다.


북문으로 나오면 있는, 약 10년 전에도 있었던 식당들과 조금 보수공사가 되어 이전보다는 살기 좋아진 것 같은 내가 살던 고시원(적어도 창문의 크기가 4, 5배는 커진 듯 보였다), 그아래 여전히 있는 편의점과, 이미 사라지고 다른 곳으로 바뀐 여러 식당들..

그리고 장전역으로 쭉, 얕은 내리막을 걸어 내려오다 보면 익숙한 식당, 마트들이 곳곳에 보인다.

유치원 때 인근의 도시로 이사를 왔지만, 그전까지는 계속 부산대학교 인근에서 살았더랬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가족들의 역사와 함께한 곳이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부산대학교의 분위기는, '부산대역'부터 시작한다. '3번출구'서부터 대학교까지 즐비하게 늘어선 건물들과 전신주, 꽤 붐비는 사람들이 대학가의 활기를 더한다. 그 시절에 온통 헤집고 다녔기에 대부분의 골목골목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다. 가게들은 아직도 있는 곳도 있고, 이미 사라지고 없는 곳도 많다. 그보다는 덜 붐비고 활기가 떨어지는 인근의 대학으로 편입했다 보니, 그 대학교에 가서도 매일같이 부산대학교가 그리웠다. 다행히 나와 같이 부산대학교를 다녔던 동기 언니가 한 명 있었고 그 언니가 부산대생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게 되어, 언니의 자가용을 타고 부산대까지 오는 일이 빈번했다. 우리는 시험기간에도 답답한 그곳을 벗어나서 부산대 도서관에 와서 부산대생인 남친들의 도움을 받으며 공부했다. 둘 다 사랑꾼이었으니..

시험기간이든 뭐든 식사시간에는 불편한 동기들보다는 남친이 훨씬 편했다.

교내 식당에서 먹을 때도 많았지만, 가끔씩은 시험기간이더라도 저 밑에(부산대학교는 경사가 거의 산이라고 보면 된다. 제일 높은 위치의 건물이 학교의 제일 꼭대기에 위치한다. 대부분의 학과 건물도 정문에서 꽤 오르막길을 걸어와야 갈 수 있다.) 정문 밖의 맛있는 식당에서 먹고 와도 (물론 학식도 맛있지만) 눈치를 봐야 할 동기가 없으니 부산대까지 와서 공부하는 것이 참 편했다. '같은 공부'를 하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성적에서 경쟁자이기도 한 동기들과 같은 장소에서 공부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갑갑했다(그렇다고 언니와 나의 성적이 그렇게 우수한 것은 아니었으나..).


네 번의 연애 중 두 번을 부산대에서 했으니... 그에 대한 추억도 많은 편이다. 게다가 상대가 둘 다 자취생이었기에 근처의 맛집이나 환경들에 대해서 더 빠삭하게 알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맛집들도 많지만..

그리고 잠시 인근의 교회를 다닌 적도 있다. 교회 사람들과 어울려서 여기저기 식당이나 카페를 처음 가보기도 했다.

예전엔 '오투시네마'로 불렸던, 아마 지금 '롯데시네마 오투점'일 것 같은(한때 메가박스이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관은 내가 처음으로 영화(아마도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마법사의 돌)를 봤던 곳이다. 같이 들어갔던 부모님은 열심히 주무셨지만, 동생과 나는 눈을 번뜩 뜨고 보았다. 올해 28살, 30살인 남동생과 나에게 그 시절에서 아직까지 남아있는 기억 한 편이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연인과 친구와 밤샘 영화를 보기도 했다. 아마 대부분의 마블 시리즈를 여기서 보았던 것 같다(대학가 중간에 위치한 CGV도 종종 갔다).

온천천, 특히 밤의 온천천은 내겐 (비록 꾸중물의 냄새가 있더라도) 꽤 낭만적인 장소인데, 연인과 처음 손을 잡은 곳이기 때문이다. 썸을 타는 남녀들이 온천천의 밤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손을 잡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냄새에 민감하지만 않다면..).

그리고 인근의 맥줏집은, 직장인이 되어서도 그 분위기에 취해 퇴근 후 버스를 타고 30여분을 달려 찾아오곤 했던 곳이다. 창가 자리에 앉아 혼맥을 했는데, 생맥주가 맛있는 그 집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퇴근 후의 여유를 즐겼더랬다. 이곳은 술집 특유의 시끄러운 분위기는 없고, 노래가 흘러나왔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아마 그 시절에는 썸남이랑 연락을 하고 있었는데, 혼자 식당에 앉아있는 것을 조금은 어색해해서, 그 썸남과 카톡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안주로 나오는 미니 프레첼이 참 맛있었는데..

어제 확인해본 결과 다행히 그 맥줏집은 여전히 운영을 하는듯했다. 기회가 되면 다시 가볼 예정이다. 그래도 아무래도 생맥주(+외국 병맥주)다 보니 가격대가 좀 있어서, 아마 재취업 이후로 미뤄야겠다. 백수에게는 사치다.


어제는, 보통 순환버스로 올라가는 부산대 정상에 걸어서 올랐고, 툴툴거리는 (경북대생-이곳은 산은 아니고, 언덕만 종종 나온다고 한다) 남자 친구를 이끌고 경암체육관 인근의 벚꽃이 흐드러진 장소까지 걸었다. 그리고 사회관, 도서관을 찍고 내려와 북문을 나가서 (요새 한창 인기인) '포켓몬빵'을 사보려고, 내려오는 길에 있는 GS25, CU편의점 약 5군데를 들렸으나 역시 없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장장 만보를 걸었더랬다. 오후 10시가 채 되기 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곯아떨어졌고 아침에 일어나니 몸 여기저기가 간지러웠다. 익숙한 부위에 익숙한 두드러기.. 대상포진이 의심되는 위치.. 피곤하거나 하면 자주 그랬다. 연고를 바르고 푹 쉬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제 나도 늙었나 보다.. 겨우 그 정도 돌아다녔다고 이렇게 후유증이 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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