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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긴한 모닝

마지막 주인은 우리 가족이 맡으마

by 박냥이

경차 모닝 00이. 요새 나의 일정에 거의 함께 하는 녀석이다. 이 녀석은, 우연찮게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남동생이 취직을 하면서 가끔씩 아버지의 suv를 몰고 나갈 일이 생겼고, 그런 날에 아버지의 대타 차량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흔히 쓰는 대형회사의 중고차량 판매 사이트나 어플에는 관심이 없으셨고, 자신이 늘 애용해오던 중고나라에서 중고차를 찾고 계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사기 아니냐'는 말을 남발해가면서 아버지의 행동을 저지하고 방해하려 했었다.

뭐, 그런 노력들은 무색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약 250만원 정도의 모닝이 우리한테 왔다.

아버지는 평소에 자신이 관심 있는 행동이면 속전속결로 끝내셨다. 다른 부분에서는 느질렁대시고..

다만 그 모닝의 행방이 어떻게 될지 정확한 예측은 하지 못하신 게, 지금 그 모닝을 거의 내가 몰고 다니기 때문이다.(한마디로 나에게 뺏기신 것.ㅋㅋ)

2-3년 전만 해도, '경차를 사서 몰고 다니는 것'은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장장 40년간의 직장생활을 해오시며 가족들을 뒷바라지 해오신다고 그럴듯한 차하나 사서 다니지 못하셨고, 봉고와 마티즈 정도를 몰고 다니시는 데 그치셨다. 퇴직을 1-2년 앞둔 시기에 겨우 스포티지 한 대를 사셨을 뿐이다.

그런 나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철없이 아버지가 종종 몰고 다니시던 마티즈가 때로는 부끄러웠고, 내 첫차는 무조건 중형 이상으로 살 것이라 대책 없이 생각했다.

첫차를 막 사려고 마음먹은 그 시기에 일하던 직장의 사장님께서는, (월수입이 몇 천이심에도) 중고 모닝을 몰고 다니시며 경차의 이런저런 장점들에 대해 설명해주셨지만, 그런 말들이 귀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심지어 2017년 정도에 딴 면허는 장롱면허가 된지도 오래, 신차 사는 것보다 중고로 사서 연습해보는 것도 좋다는 조언들도 그저 흘려들었다.


웃프게도.. 그 직장은 코로나가 터지면서 경영부진으로 잘렸고.. 신차에 대한 로망도 물 건너 가버렸다.

그렇게 '뚜벅이'로 버스와 지하철을 전전해가면서 다음 직장 출퇴근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살아왔었다.

그런 와중, '아버지식의 중고 모닝 구입'이 불시에 이루어졌고, 뜬금없는 엄마의 말,

'니 이참에 운전연습이나 해봐라.'(필자는 작년 말부터 일을 쉬고 있다)

2022년 11월, 약 5일간의 운전연수 끝에 모닝은 실소유주인 아버지로부터 나에게로 '납치당했다'!

아버지는 허탈하실 수도 있지만.. 고집스러운 딸내미랑 소란을 일으키긴 싫으신지 조용히 스포티지를 몰고 다니셨고, 동생과 필요할 때마다 사용 시간을 나누셨다. 나는, 독불장군처럼 모닝을 근처의 전용주차장(아파트 주자창이 좁아서 2대 이상시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에 대놓고 괜히 한동안 모닝을 닦고 문지르고.. 방청소도 안 하는 주제에 온갖 주책을 떨었다.

하루는, 안전벨트 커버로 고양이, 강아지 인형 도배를 해놓았더니, 필요해서 오랜만에 모닝을 한번 몰아본 아빠가, '완전 지 방으로 만들어놨데'라고 혀를 내두르셨다. 내심 뿌듯했다. 하하하.


경차를 타고 다니면, 솔직히 무시도 많이 당하고.. 힘든 점도 있지만.. 진짜 솔직히 벤츠, 아우디 이런 거 한대 뽑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간간이 있다. 누가 적정한 차의 가격이 자신의 연봉의 1~2배라고 하던데.. 그러면 나도 벤츠 무슨 클래스 정도는 뽑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허허허..


그래도 뭐, 차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훨씬 낫다. 주위의 조언처럼, '기동성'이 생긴다.

때마침 동네 목욕탕도 경영난에 폐업을 한 마당에, 엄마를 태우고 여기저기 목욕도 다니고..

트렁크는 모녀의 목욕용품으로 거의 반을 가득 채웠다. 유튜브를 보고 공부하던 셀프주유도 이제는 척척 해낸다. 뭔가, 재취직을 하고 그럴듯한 신형차를 사더라도 지금의 모닝이 더 애착이 갈 것 같달까..

'첫 운전'을 시작한 차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 모닝에는 이름도 있다. 반면, 아버지의 덩치 큰 스포티지에는 별다른 이름이 없다.


오일장이나 마트에 갈 때도 참 요긴하다. 그전까지만 해도 동생과 엄마가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짐을 잔뜩 들고, 집까지 오르막길을 오고 가는 고생을 했었는데, '모닝이라도 있으니' 오일장에 다니기가 참 편하다. 네 식구 먹거리를 잔뜩 싣고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고 집까지 잠시만 짐을 나르면 된다.

버스번호별로 다 홈화면 바로가기를 만들어서, 시간을 확인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버스시간에 무신경해도 되니, 그리고 그로써 여유시간이 30분 이상 생길 때도 있으니.. '모닝이라도' 참 고맙다.


우리 모닝은 가격이 싼 만큼 그만큼 주인이 꽤 바뀌었더랬다. 아무쪼록 잘 관리해서 타고 다니면서, 마지막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해주고 싶다. 잘 부탁한다. 우리 00이~~~

아, 우리 모닝이는 일부러 2-3인만 태우려고 하는 편이다. 거의 엄마와 나 2명만 탄다. 차가 오래돼놓으니 조금 염려스럽기도 해서 그렇기도 하다. 다음 주에는 모닝 타고 얼마 전 개장한 부산 롯데월드에 엄마, 나, 남동생이 놀러 가기로 했다.(3명 견딜 수 있지?) 참, 고마운 모닝. 니덕에 롯데월드도 편하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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