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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후진 숙박 시설에 대한 낮은 내성

한인민박의 덤탱이, 젊은 시절 국토대장정

by 박냥이

필자는 웬만한 숙소에서는 잠을 잘 수 있다.

아니, 솔직히 숙소를 고르는 데 있어서는 조금 까다로운 면도 있다.

특히 리뷰-특히 안 좋은 리뷰-에 많이 흔들리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담배냄새'에 관한 리뷰에는 민감하다.

리뷰 10개가 좋아도 담배냄새 관련 안 좋은 리뷰 1개가 있다면 그 숙소는 선택지에서 제외된다. 오히려 담배냄새보다 하수구 냄새가 덜한 감점 요인이다.

그리고 조명이 어두침침하지 않고 밝은 숙소를 선호한다.

어두침침한 곳에 틀여 박혀있다 보면 상당히 답답하다.

의외로 밝은 곳도 많지만, 좋은 리뷰들에 이끌려 가게 된 곳이 하필 조명이 어두운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어지간히 새어 나오는 담배냄새가 없는 이상, 적어도 그 숙소에서 선잠 정도는 잘 수 있다.


2016년도경 미국 여행을 갔었다. 같은 한국인끼리 더 사기를 많이 친다고 여행카페를 통해 익히 들은 터긴 했지만, 설마 나에게 그런 일이 있을 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시절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객들이 미국(뉴욕) 여행 시에 한인민박을 이용했었고, 나도 카페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2인실을 예약해 놓은 터였다. 생면부지의 또래와 같이 방부터 잡은 것을 보면, 그 시절만 해도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이 그리 크진 않았었나 보다. 그렇게 체크인까지 마치고 그 친구보다 며칠 먼저 와서 지내던 중, 문고리에 열쇠가 끼인 채로 열쇠가 부러지는 사달이 났다.

입실한 지 하루 이틀 만에 무턱대고 몇만 원을 뜯길 처지였는데.. 방을 같이 쓰는 그 친구가 미국에서 살았던 내공이 있어서, 아직 얼굴도 안 본 사이에 도움을 받아 그나마 6만 원 정도를 배상했지만, 내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고..

한인민박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그곳은 고시원급 방이 몇몇 있었고 공동 샤워실 겸 화장실은 단지 하나뿐이어서, 얼굴도 모르고 일정도 모르는 이들과 불편하게 돌아가며 눈치껏 샤워를 했었다. 샤워실은 여느 가정집의 화장실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뉴욕 물가가 비싸더라도.. 인당 숙박비가 10만 원 남짓이었으니.. 그 돈으로 부산 송정에서는 좋은 숙소에서 1박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의 방도 마치 병원 환자 침대 같은 것과 밑에서 꺼낼 수 있는 보조침대로만 이루어져 아래 침대를 접어놓지 않으면 발 디딜 공간도 없는 처지였고, 에어컨인지 온풍기인지 모를 기괴한 기계로 냉방을 했다. 그리고 그나마 개폐가 가능했는지 잘 기억나지도 않는 길쭉한 창문은 뉴욕의 번듯한 빌딩들을 비추고 있었으니.. 만약 그쪽에서 우리의 몰골을 보았다면 딱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기에 조금 더 미국에 있을 예정이던 그 친구를 위해, 다음으로 묵을 한인민박을 같이 찾아봐주었는데.. 오히려 먼젓번 곳보다 더 형편없었다.

결국 오지랖 넓던 나는, 비행기 일정을 늦춰서 그 친구와 같이 귀국했다. 비행기 일정 변경에 추가 요금이 없어서 가능했지 않나 싶다.


그렇게 가격 대비 후진 숙소에서도 한바탕, 아마 거의 한 달여 부대끼고 살다 보니.. 웬만큼 시설을 갖춘 숙소는 무난하게 여겨진다. 몇십만 원 하는 해운대 진짜 호텔들에 가보진 않았지만, 단돈 몇만 원이라도 모텔인지 호텔인지 불분명한 모호텔급 숙소들도 미국의 그곳에 비하면 지상낙원이다. 게다가 성격이 털털하고 대충 사는 면도 있다 보니..

누구의 머리카락 이런 것이 뒹굴어도 그것을 발견하거나 컴플레인 거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저 담배냄새만 안 나면 그만이다. 거기다 조명까지 밝으면 금상첨화.

침구가 어디 거고, 넷플릭스가 되고 안되고는 두 번째다.


몇 년 전 겪은 그런 후진 한인민박에서의 경험이, 이렇게 애매모호한 나만의 숙소 선택 기준을 만들어준 것 같기도 하다.

참, 심지어 숙소 없이 단체로 학교 강당에서 자고, 임시 천막에서 씻고 했었던 국토대장정의 경험들도 한몫했지 싶다. 하루에 30여 킬로를, 16박 17일간 걷고 어느 날엔 샤워시설이 설치가 불가능해서 물티슈로 땀을 닦고 잔적도 있으니..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젊은 날의 객기였다고 할까..

국토대장정에 드라이기가 웬 말인가, 그냥 머리가 젖은 채로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 만큼 푹~ 잤었다.

선크림을 범벅하고 다녔지만 클렌징 오일 같은 것으로 이중세안을 제대로 했었는지 기억이 없다.

100명쯤 단체생활을 했었기에, 샤워시간도 제한적이어서 샴푸가 곧 바디워시였고 클렌징폼이었다.

덜 마른빨래는, 다음날 뜨거운 아스팔트 길을 걸을 동안 배낭에 걸어놓고 다니면서 말리기도 했다.

물론 남녀가 함께 다녔으므로 속옷은 열외여서.. 제대로 말리지 못한 브래지어는 냄새를 풀풀 풍겼다.

그래도 다들 땀범벅에 쉰내 범벅이라 '우리끼린' 괜찮았다.


뭐, 그래도 값비싼 호텔에 묵을 능력이 된다면 언제 한번 가보고 싶긴 하다. 모호텔말고 호텔. 1박에 대략 50만 정도 했었나.. 그런 돈잔치를 하고 언제쯤 살아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긴 하나.. 뭐, 꼭 얼마짜리의 어디라서보단 '누구랑' 함께인지가 더 중요하기도 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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