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우쳐버린 사랑들

짝사랑의 달무리

by 박냥이

하루 종일 빨빨 돌아다니다 지쳐서 드러누운 상태. 아까 전부터 쓰려고 한 글을 쉬엄쉬엄 써보려고 한다.(역시 누워서 쓰기에는 폰이 제일 편하다~)

아직도 간간이 생각나는, 나를 좋아했던 사람과, 정말 기억 저편에서 지금처럼 필요할 때만 끄집어내는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어쩌면 감정이 살아있던 그 시절에는 전자와 후자의 수식어구가 반대였을 수도 있겠다.

먼저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흔히 콩깍지가 씐다 하듯, 열여덟 살 고등학생 때 키가 꽤 크고 피부가 까무잡잡하던 그 친구를 많이 좋아했다.

일방적으로 그 친구에게 편지와, 간식, 책들을 선물하고는 했고 남녀 분반이 되고 나서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은근히 마주치길 바랐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그 친구의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보게 되었다.

어느 날엔, 고등학교 근처의 치킨집에 전화를 걸어서 왠지 그 친구가 운동하고 있을 거 같은 기숙사 앞 농구코트로 치킨을 배달시킨 적도 있다. 뭐, '고맙다, 잘 먹을게'이런 말을 들어본 기억은 없다.

너무나 당연하게 꾸역꾸역 잘 받아먹던 그 친구는, 나중에는 대놓고 '일주일에 3만 원씩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그 문자와 함께 나의 고교시절 첫사랑은 종결되었다.(어쩌면 '사랑'하면 생각나는 친구가 한두 명 더 있을 만큼 감정적으로 풍부했던 시기여서 이 친구가 '확실하게 첫 번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머지 친구들에 비해 '확실하게 빠졌던' 친구이기는 했다)

그다음은, 교회 오빠.(라고 쓰고 벌써 '한숨')

애초에 교회를 가지 말았어야 했다. 학년별로 나이가 들쑥날쑥했던 학과의 특성상, 그 오빠는 나보다 4살이 많았지만 한 학년 후배였다.

그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온갖 친절함'으로 나는 그가 당연히 내게 호감이 있다 생각했고, 그로 인해 그 시절에 만나고 있던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흔들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굳이 하지 않을, 그런 '부자연스러운 친절함'에 속은 것을 알아챈 뒤에는, 이미 너무 편해져서 그 소중함을 잊어버렸던 남자 친구를 잃은 뒤였다.

'짝사랑의 달무리'는, 고교시절에도 이때에도 자세히 보면 정말 내가 좋아하는 얼굴이 아닌 사람들의 얼굴을 내가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정작 달이 제대로 보였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이 사람에 대해 할 말이 더 있다. 수차례 마음을 전달했어도 미적지근 확실한 거절을 받지 못한 나는, 점차 지쳐갔고 결국 이 짝사랑을 끝내버렸는데,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짝사랑을 시작해버렸다. 이 사실에 대해 그에게도 스스럼없이 얘기했고(그 시절에는 종교 선배기도 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또한 좋아하는 이성이 있었는지 (그동안 숱하게 마음을 표현해 온 나에게는 특별한 언급이 없어서 몰랐다), 그 이성에게 고백을 했다는 소식을 다른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음... 학과가 좁아서 학과 내의 연애사는 알고 싶지 않아도, 종종 들려오긴 했는데, 그가 고백한 그녀가 그를 찼다더라.. 이유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고, 자신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뭐... 나는 그저, 그에게의 짝사랑을 끝내면서 말한, '나의 (다음 짝사랑)에 대한 고백'이 그가 (아마 누구에게라도?) 고백을 하게끔 부추기는데 혹시 공헌을 했나 싶더라. 뭐 아니라도 상관없다. 이제는 연락도 안 하고 나는 다시 불교로 돌아왔다.

그 사람에게서 다음 사람으로 짝사랑의 대상을 바꾼 것은 한편으론 정말 좋은 선택이었는데, 사실 이 사람도 자세히 보니 내 스타일의 외모가 아니긴 했으나(아마도 이전의 그에게 지쳐 누구인들 다 멋있어 보였나?) 무엇보다 '거절'의 의사가 제일 확실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학과 내에서, '착한 사람'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었던 이 사람이 '가면 쓴 친절함의 사나이'보다 더 '진짜'같은 면이 이끌렸을 수도 있다.

짝사랑했던 사람들은 이 정도이고, 이제는 연락처에도 없다. 다 지워버렸기에.


반면 나를 꽤 많이 좋아해 줬으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도 한 명 있다. 그 사람과 사귀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어쩌면 진작에 아닌 인연이었지도 않을까.

그 시절에 나는 두 사람을 두고 고민했다.

친한 오빠한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오빠, 이 사람은 조건은 별로인데 재밌고 더 내 스타일이고,

다른 사람은 조건은 좋고 사람도 좋은데 외모가 별로 내 스타일이 아닌데 누구를 선택해야 해?"

여기서 조건이란, 단순히 돈벌이보다는 그 사람의 자라 온 환경 같은 내용이었다.

오빠의 대답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야, 그럼 니는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조건이면 안 사랑하고 어떤 조건이면 사랑하고 그래?"

정말 기억이 잘 안 나서 머리를 짜내어 대충 썼는데, 그때 오빠가 했던 진짜 대답은 내 질문의 모순을 꼬집는 말이었다.

결국 내가 더 재밌고 내 스타일인, 며칠 더 일찍 만난 그 사람을 선택함으로써 이 사람과는 멀어졌다.

만약 1의 사람을 안 만났더라면 이 사람과도 인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와 더 비슷해서 항상 먼저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사소한 것을 챙겨주고, 헤어질 때면 간식거리를 쥐어 보내던 그와는, 그렇게 멀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 그가 공개적으로 연인을 찾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에 남아있던 추억 속의 그를 완전히 보냈다.

그의 입장에서는 아마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 것이기에,

부디 앞으로는 즐겁고 행복하길.

아마 그에게도, 짝사랑하던 시절의 나처럼 달무리가 씌었어서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못 봤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