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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귀찮아진 나이

가끔씩 떠나고 싶긴 해도..

by 박냥이

생각해보면 20대 시절에도 여행을 크게 즐겼던 것은 아니다. '너 외국여행 한 번 못 시켜준 게 미안하다'시며 부모님이 보내주신 한 달여간의 미국 여행도,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부모님의 지지에(정확히는 엄마의 지지에) 대뜸 비행기표를 끊었지만(이것도 편도로 두 번 끊는 실수를 저지를 뻔했는데, 다행히 해외여행 경험이 있는 동기 언니의 도움을 받아 왕복표를 끊었더랬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가족이랑 떨어지는 두려움이 출발 전까지 꽤 나를 괴롭혔었다. 그나마 국내여행은 그런 불안이 덜했다. 그래도 말이 통하고 언제든 집으로 비행기 외의 수단을 이용해서 돌아갈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있었다.

그렇지만 국내여행도 무난했었지만은 않은 것이, 20대 초에 떠난 내일로 기차여행에서, 같이 여행한 친구와 사소하게 다투기도 했었고, 전주의 낡은 '찜질방 겸 목욕탕'에서 휴대용 세면세트를 도난당하기도 했다.

물론 여행지에서 못 보던 것들도 보고 특색 있는 것들도 먹고 하다 보면 (특히 지나고 보면 더 아련해지는) 추억들을 쌓을 수 있었지만, 매번 여행 끝에 집으로 돌아오면 느끼는, '역시 집이 최고다'란 감정을 느끼려고 여행을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작년 말에는 경기도의 일산에서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하필 세브란스에 계시던 교수님이 일산차병원으로 옮기셔서, 경남지역에 사는 내가 가야 할 거리가 더 멀어졌다. 그래도 '그 교수님'이라서 거리상 일산차병원이라도 망설이지 않았었다. 그나마 서울만큼 김포공항과의 접근성도 꽤 괜찮은 편이라, 병원 외래를 갈 때는 얼마 동안 코로나 덕에 저렴해졌었던 항공편을 이용했었다. 기차를 타는 것과 장단점이 있다. 우선 비행기를 타면 평상시에도 항공기 출발시간 2시간 전에는 도착해있는 게 습관이 되어있어서 그 정도의 시간 동안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려면, 괜히 슬금슬금 지쳐 버리게 된달까.. 게다가 항공편은 거의 좁은 일반 좌석을 이용하다 보니, 타고 내리는데 정체도 심하다. 단순히 운행시간만 따지면, 항공기는 1시간 남짓, 기차는 3시간 정도임에도, 어떨 때 보면 차라리 기차를 타는 것이 체력소모가 적은 느낌이다. 그래도 기차표 가격은 잘 내리지 않으니.. 평소에 경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긴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항공사는 여러 곳이라 다양해서 가격경쟁이 되지만, 기차는 딱 한 곳뿐이니 코로나 시국에도 가격이 변화가 없는듯한 면이 조금 아쉽다.


이번에 아마 수술 후 두 번째 외래로, 4월 말에 일산에 방문해야 하는 일정이 있다. '이왕 올라간 김에~' 서울도 가고 놀러 갔다 올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기는 해도, 솔직히 이번에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암의 전이 여부'도 확인하는 것이라 마음 깊은 곳에 약간 걱정도 있고.. 만약 조금의 전이와 재수술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여행이고 뭐고' 재빨리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편한 게 최고'라는 평소의 생각대로, '설마 전이가 있겠어' 조금 자부하고 있기도 하지만.. 작년 중순에 뜻하지 않은 갑상선암을 발견한 것 등의 일을 보면, 정말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기에..

만약 전이가 없고 OK라면, 당장 계획에도 없던 서울 여행을 '기분에 취해' 시작할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나는 곳은, 석촌호수(사실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들어봐서' 안다), 그리고 롯데월드 서울(아마 최근에 부산 롯데월드를 다녀온 여파인듯하나, 실제로 방문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숙소는 그때 봐서 예약이 가능하다면, 서울시청 인근의 '프레지던트 호텔'에 묵고 싶다.(약간 낡은 감이 있지만, 혼자 묵기는 편하고 아담하다, 게다가 여자 혼자라도 괜찮은 느낌의, '나름 번화가'에 위치해있다) 뭐, 필자의 '덩치'에 웬만한 남자의 덩치는 저리가라일 정도긴 하지만서도.. 너무 어두침침한 곳에 위치한 곳은 아무래도 꺼려진다.


이렇게 여행에 대한 '공상'의 나래를 한껏 펼쳐보다가도, '에이~ 그냥 하룻밤만 자고 곧바로 내려올까'라는 생각이 왕창 깔려있다. 당일치기도 가능하지만, 하필 교수님의 일정이 가득 찬 상황이라, 전날 초음파와 다음날 외래만 가능한 상황. 그나마 간호사 선생님의 배려로 전날 초음파는 오후에, 다음날 외래는 오전에 잡아놓은 상황이다.

그곳(일산)에서 1박도 사실, 조금 부담이다. 일단, 서울에 비해 숙박시설의 가격이 대략 6만 원선에서 '요지부동'이고, 시설도 대부분 같은 건물에 노래방이나 클럽 같은 곳을 끼고 있는 듯한 곳이 많아서.. 수술기간 동안 보호자가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묵는 동안 확실한 '호불호'가 생길 정도였다. '불호'라 함은, 대부분 극심한 담배냄새를 포함하는 경우이다. 게다가 숙박시설의 어느 곳에서도 조금의 인정이나 친절함은 찾아볼 수 없었고, '들어설 때부터' 뭔가 냉기를 품기는 분위기 자체가 부산의 여느 곳이랑은 조금 다른듯한, 괜한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한마디로, 일산의 어느 숙소라도 가야 하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장장 열흘 동안 그곳의 병원에서 머물면서, '눈에 익은 곳'이 몇몇 된다는 것과, 그래도 나름 번화가 느낌이라 '있을 것은 다 있다'는 것이다. 스타벅스, 패스트푸드 매장, 이삭토스트, 올리브영 등등..

그래도 이번에는 철저하게 혼자라는 것.. 은 '외래를 가는 것'이 마치 '고독을 씹으러 가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나마 이번에 결과가 괜찮다면 외래를 가는 것이 1년 주기로 늘어날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인제 여행, 특히 '혼자 여행하는 것'은 웬만해선 하지 않을 듯하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떠나더라도 가는 곳은 이전에 와봤던 익숙한 곳일 것 같고..(예를 들면, 제주도 서귀포의 백패커스홈(게스트하우스)이라든지..) 만약 올해 중순에 재취직을 한다면, 겨울에 엄마랑 떠나고픈 일본 온천 여행은, 뭐니 뭐니 해도 '엄마랑 함께'니까..

이제 서른이라, 20대 시절에 어려워했던 '혼밥'은 어느 정도 무심하게 해내는 편이지만, 그래도 여행지에서 혼자는 좀 꺼려진다. 굳이 그런 (낯선 곳에서 혼자 있는) 상황 자체를 만들고 싶지 않다. 낯선 이에게 쉽게 마음을 열고 친해지지도 못한다. 쓸데없이 의심의 나래를 펼치고,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관계 자체를 아예 이어나가지 않는 편이니.. 성격 탓도 있다. 예를 들면, 옛날에 갔던 보스턴에서 게스트하우스의 어떤 외국인 할머니랑 잠깐의 (절반 정도만 이해할 수 있던) 대화를 나누고 나서 그녀로부터 박하사탕 같은 게 가득 든 검은 비닐을 받았지만 곧바로 몰래 쓰레기통에 버렸다든지, 워싱턴에선가 어느 한국인 여자애와 길을 가다가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만, 그녀와 또 외국인 한 명과의 저녁식사자리에는 거부의사를 내비친 것이라든지..

혼자 떠난다면 일정을 내 마음대로 조율할 수 있다는 점 빼고는, 그다지 장점이 없는 것 같다. 이전에 한번, 제주도에 혼자 갔었다가.. 아마 외로워서, 괜히 평소라면 연락하지도 않을 그리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연락을 시도하면서, 온종일 카톡에 매여있었던 경우도 있다. 그리고, 만약 남동생과 함께이지 않았다면 상당히 난처했을 경우도 겪었다. 숙소 방문의 노크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같이 술먹요'라고 낯선 이가 서있었던 것. 나의 뒤에 덩치 큰 남동생이 떡하니 버티고 서있어서 그 사람이 그렇게 가고 나서도 쓸데없이 무섭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만약 혼자였다면.. 더 찜찜한 기분 같은 것이 오래갔을 것이다. 유튜브를 보면 많은 여자분들이 혼자서 여행하시곤 하는데.. 나는 그렇게는 못할 것 같다. 아무래도 몸무게는 나보다 적게 나가더라도, 키가 크고 그래도 '남자'인 동생이나, 남친, 아빠 같은 사람들이 함께여야 더 안심이 된다. 아니면 나 스스로 호신술이나 격투기라도 배워서 떠나야 조금 덜 불안하지 싶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 이런 날에는 역시, 이불을 휘감고 '방콕'을 하는 것이 최고다. 방앗간에 맡겨놓은 쑥떡을 먹을 생각에 새벽부터 싱글벙글이다. 아니, 정확히는 어제 쑥 갖다 주러 가기 전부터.. 히히. 떡은, 따듯할 때 먹어야 제일 맛있다.-떡보 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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