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라면 정오가 지나기 전의 오전 시간에 등산이나, 헬스장 같은 곳에 운동하러 갔을 테지만, 오늘은 어제 맡겨놓은 쑥떡을 기다린다고 오전을 다 집에서 보냈다. 오후 12시가 되어도 연락이 없자, 엄마랑 1시까지는 기다려 보자 했고.. 그사이를 참지 못하고 12시 반에 전화를 해서 떡의 완성 여부를 물어보았다. 엄마의 지인분의 가게라서 더욱 숨죽이고 기다리려 했건만.. 아부지의 때 이른 출발 소식 때문이기도 했다. '곧 다되었다'라고 오라신다. 시골에 방콕하고 계시는 아부지를 '떡 찾아온다'하고 꼬신 터라, 모녀는 서둘러서 떡집으로 향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떡 두 되를 싣고 근처의 마트에서 장을 본다. 41주년이라고 이것저것 세일을 해서, 하필 어제 산 바나나는 2,000원이나 세일을 하고, 엄마가 산 간장은 1,000원이나 싸게 판다. 모녀 합산 3,000원의 손해를 본 셈이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을 어쩌랴.. 게다가 하루 사이에 약 두어 개가 뜯겨져 나간 바나나는 떡을 기다리면서 허기진 배를 채워주기도 했다.
마트는 행사기간의 시작인 오늘부터 더욱 붐비는 듯하다. 아부지가 곧 오실시간이라 서둘러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파트 주차장에 먼저 도착한 아빠의 차가 보인다.
집으로 올라오니 씻고 계신다. 그 사이에 우리는 장을 봐온 계란, 참외, 오렌지, 사과, 치즈, 요거트 등을 정리하고 쑥떡 박스를 내가 앞장서서 뜯었다. 쑥떡을 기다리면서 아침식사 이후에는 굶으려고 했건만..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면서 허기가 느껴져 이것저것 주워 먹은 터라,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았지만..
'떡순이'라서.. 앉은자리에서 쑥백설기 두 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사진 찍는 시간도 아까워서 내 몫은 금방 다 먹어버리고 난 뒤에, 엄마가 드시기 이전에 살짝 쑥백설기의 사진을 찍었다.
하하.. 행복한 하루다. 쑥 백설기 두 개로 배가 그득 차서, 오늘 헬스장에 갈 계획을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배가 부르니 또 나른해져 온다.
나도 안면이 있는 엄마 친구 이모에게 드릴 몫을 조금 챙겨놓고, 엄마의 카톡에 들어가서 마치 내가 엄마 인양, 연락을 했다. '집에 있어요?', '파마하러 가는 중이에요', '끝나고 잠시 봐요', '야~(예~)'
엄마는 그동안 냉동실에 넣어둘 쑥절편을 나눠 담고 계셨는데, 나중에 그 작업이 끝나고 내가 주고받은 카톡을 보고 빵 터지셨다.
쑥떡을 만든다고 모녀는 쑥을 캐고, 다듬고 꽤 공을 들였었고, 떡 만드는 값이 거진 5만 원이 들었더랬다.
그래도 행복하다. 시장에 가서 한팩에 3,000원 주고 사 먹던 쑥백설기가, 이제는 집에 그득하니.. 당분간 걱정이 없겠다. 아, 살찔 걱정은 조금 들긴 하다.
친한 J이모에게 가져다 줄 생각도 했었지만, 이모는 다이어트한다고 정신이 없으시고, 아저씨는 떡류를 그닥 좋아하시지 않는다고 (엄마와 나는) 지레 생각하고 있다. 한편으론 이모한텐 안 드린다고 생각하면 조금 아쉽기도 하다. 무엇보다 엄마와 내가 직접 캔 쑥이라 더 뿌듯하다. 사실 따지자면 내가 캔 양은 엄마의 1/5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다듬는 작업도 나는 한참 더뎌서 손이 더 빠른 엄마의 공이 더 컸다.
올해 중순 취직을 다시 할 예정인데, 그렇게 되면 내년 봄에는 쑥 캐고 다듬는 일을 못할 수도 있겠다. 그나마 지금은 일을 쉬고 있는 백수라서 시간이 많다. 어제도 오전 내내 엄마랑 쑥을 다듬었다. 식물(쑥, 쪽파 등등)을 다듬는 일은 장시간 하면 꽤나 체력소모가 큰 일이다. 부엌의 냄비에는 또 쑥국이 가득하니, 여느 봄날의 시골집처럼 우리도 쑥잔치를 한 셈이다. 쑥은 우리가 기대하지도 않은 사이에 봄이 오면 자연스레 찾아와서 이런 행복을 준다. 자연의 섭리가 새삼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비록 캐고 다듬고 하는 것은 일이지만.. 그래도 사 먹는 것보다 한껏 정성이 들어간 느낌이다. 그냥 사 먹기만 하면 쑥백설기의 부스러기도 그냥 날려버리고 말았을 건데, 괜히 내가 다듬었던 기억에 그런 부스러기들도 모아서 아껴서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다.
쑥 다듬기는 귀찮지만.. 32살 차이인 모녀지간에 이런 경험들을 앞으로 함께 할 햇수로 따지자면 그렇게 무한정 '함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 종종 '엄마가 늙어서 미안하다'라는 엄마, '에이, 요즘에는 엄마보다 더 늦게도 많이 낳는 걸 뭐~'이렇게 대꾸하고 말지만..
가장 가까운 순간부터 차곡차곡 엄마랑 알콩달콩한 추억을 많이 쌓고 싶다. 아마 이래서, 어리광 많은 철부지 나의 독립과 결혼이 늦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