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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목욕

부제-롯데월드, 쑥 다듬기

by 박냥이

역시 목욕이다. 날이 갈수록 목욕 스킬이 늘어서 이제는 엄마만큼 2~3시간이고 시간을 많이 의식하지 않고 목욕을 하는 법을 터득했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평소보다 천천히 하고 '때 미는 것'을 보다 더 천천히 시작하는 것. 원래라면 처음 탕에 들어갔다 나온 지 10분도 되지 않아 때밀기를 시작해버리는 데, 오늘은 탕에 30-40분 정도 머물다가 천천히 때 미는 일을 시작했다. 사실, 때 미는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만 생각하진 않아서(어차피 각질은 보호용이고, 불필요한 각질은 저절로 탈락한다고 한다) 때 미는 부분은 좀 게을리해보자 싶었다. 나의 때를 좀 덜 밀더라도 엄마가 주로 부탁하시는 등을 미는 일에 힘을 더 쓰는 것도 한 방법이었고, 때를 밀고 난 피부에서는 왠지 수분이 더 날아가는 느낌이라, 오히려 안 밀고 있는 것이 음료를 마시는 것과 함께, 목욕탕 내에서 오래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주말 동안 아부지가 계신 시골에 다녀와서, 어제는 동생의 연차로 부산 롯데월드에 갔었다. 이제 서른 살이 되어서 '그런 곳'에 다니려고 하니, 가뜩이나 격한 놀이기구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마당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아서.. 꽤 기다려서 놀이기구를 타고, 온 김에 뽕을 뽑으려는 남동생 덕에 장장 12,000보를 걸었다. 사실 오기 전부터 특정 놀이기구를 타는 일보다, '츄러스'를 사 먹으려고 벼르고 있던 터라 오후 4시경에 츄러스도 사 먹고, 퍼레이드나 공연 같은 눈요깃거리도 구경했다.

나의 걱정을 뒤로하고, 동생한테 이끌려 가장 과격한 놀이기구를 타고 온 엄마는 이후 컨디션이 저조해서 나랑 같이 시덥잖은 놀이기구 위주로 타셨고, 급히 점심을 드신 후 퍼레이드를 본다고 부지런히 움직이셨다. 우리 남매는, 어쩌면 엄마한텐 피곤한 일이겠지만.. 이렇게 엄마 취향이 그닥 아닌 곳에도 굳이 엄마를 데리고 다닌다.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어떤 할머니도 손녀와 딸에 이끌려 같이 오셨는데, 엄마랑 벤치에 앉아서 '딸이 6월에 또 예약해놨는데, 자기는 그때 안 올 거다'라는 푸념을 주고받으셨다고 한다.

나보다 32살이 많으신 엄마도 탔건만.. 솔직히 돈얼마를 준대도 못타겠다.

그래도 엄마는, 나보다 용감하게 제일 무서운 놀이기구도 타시고, 퍼레이드도 누구보다 열심히 촬영하셨단다.

이후 그나마 덜 과격해 보이는 놀이기구를 엄마 빼고 동생과 둘이 탔는데..

'죽을뻔했다..'

놀이기구 타는데 눈물이 찔금 났다.. 소리 지르면 덜 무서울까 봐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는데 소용없었다.

그나마 금세 끝나서 다행이었다.. 두 번은 못 탈것 같다.

(무음) 다시는 못탈듯.. 돼지라서 튕겨나갈 것 같은 하중을 받았다.. 'p=mv'아시죠..

마지막으로 나오는 길에 운 좋게, 놓칠뻔한 공연도 보고..

아부지 몰래 비밀리에(?) 동생의 연차를 마무리 짓고 셋 모두 몸살아닌 몸살이 났다.

거기다 동생은 오늘 다시 출근, 모녀는 시골에서 캐온 쑥을 다듬는다고 롯데월드에서 탈 난 몸이 다시 한번 탈이 났다.

결국 해결책은 목욕탕. 쑥을 후다다닥 다듬어놓고 '오후에 방앗간에 갖다 주자'한 뒤, 엄미랑 작정한 듯 목욕탕으로 왔다.

44도씨의 물에 다리만 담그니 땀이 줄줄 흐른다. 모녀는 불과 사흘 사이에 서로 살이 한 꺼풀 쪄서 왔다. 각자의 자리에서 목욕을 즐기다가 시시때때로 오고 가는 목욕탕 내의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한다. 가끔 몸이 불편한 할머니들을 보면, 탕에 몸을 담그는 것이 마치 '살아온 세월'을 담그는 것 같다. 저마다 살아온 삶에 따라 굳어진 몸의 형태가 다 다르다. 피부색도 어떤 이는 노란빛이 나고 어떤 이는 붉은색 또는 하얀색이다.

때를 밀다가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언젠가 나이가 들어서 늙을 나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영화 타이타닉에는 인상 깊은 장면이 많은데,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 중의 하나가, 로즈(케이트 윈즐렛)의 나이 든 모습을 연기한 배우의 '눈'이 과거의 젊은 시절의 로즈의 '눈'과 겹쳐지는 장면이다.

그처럼 눈동자 외의 모습에 주름이 지고 흰머리로 모습이 변하는 그런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는 공상을 잠시 하다 만다.


곧 엄마가 걸어온다. 나는 엄마의 등을 밀어준다. 이번엔 쓸데없이 세게 밀었더니 또 궁시렁거리신다, '살살 밀어라고'..(우리 궁시렁쟁이)

원래 평일에 오면 우리 말고 모녀끼리 온 경우는 잘 안 보이는데, 오늘은 또 한쌍의 모녀지간이 보인다. 괜히 반갑다. 엄마한테 말하니, '니같은 딸들은 다 이 시간에 일하러 가지~'라고 하신다.

허허. 그러려니 말거니 6월까지는 쉴 겁니다~


목욕탕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는, '언니야~'다.

낯선이들은 저마다의 익숙한 손윗사람에게 언니야~하면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평소보다 목욕탕에 일찍 왔더니, '오전반'사람들이 아직 안 빠져서 목욕탕이 시끌벅적하다.

'아휴~ 시끄러버래이' 엄마가 투덜댄다.

'엄마, 목욕탕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있어야 한다' 엄마를 타이르듯 말해보지만, 그러면서도 은근히 그런 소란한 소리들이 성가시다.

한두 시간 지나서 '언니야 아지매'가 갔는지 다시 조용해진다.

우리가 언제 들어왔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꽤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웬일로 오늘은 오래 하네~' 엄마가 의아해하면서 말한다.

'이제 못한다 아니가'

'일주일인데 뭐~'

시작도 안 했지만 어서 끝났으면 좋겠는, 생리기간이 곧이다.

그동안 엄마는 혼자 목욕탕에 다니실 것이다. 조금 아쉽다.

평소보다 1시간 정도 길게 하고 나오면서,

'엄마, 같이 나가면 어차피 엄마가 내 기다리야 한다. 30분 있다 나온나'했건만..(머리 말리고 옷 입고 하는 시간: 나>>엄마)

엄마는 30분을 이미 초과해서 목욕을 즐기는 중이시다.

뭐, 익숙한 일이라서 여느 때처럼 엄마를 기다리면서 글을 쓰고 있다.

다음 일정은, '오전에 다듬은 쑥을 방앗간에 갖다 주기'.

나는 쑥절편보다 쑥 백설기를 좋아한다. 그래도 냉동실에 두고두고 먹기엔 쑥절편이 낫다는 엄마의 의견에 따를 생각이다.

P.S. '쑥.. 떡'만드는 값이 두되 58,000원이 나왔다. 후덜덜..

한 되는 쑥 인절미, 한 되는 쑥 백설기로.

모녀는 오늘 '-58,000원 일당'의 일을 한 것이다..

방앗간에 다녀오신 엄마는 '쑥떡 안 해먹고 말지~' 한숨을 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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