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아부지는 몇 년 전 은퇴하시고부터 본가에서 차로 1시간 20분 정도 거리의 시골집에 가 계신다. 일주일 중 본가에 오는 날은 많아야 하루 이틀. 가끔 혼자 계시는 것이 걱정되거나, 남동생이 아부지차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날이면 '호출'하기도 하는데, 아주 가끔은 우리가 직접 가기도 한다. 이번 주말이 그랬다.
1시간 이상, 구불구불 산길을 운전해서 가야 하면 긴장이 된다. 홀몸이 아니라 엄마랑 동생까지 태우고 가야 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가는 길에 엄마와 동생이 마트를 들릴 때마다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엊그제 먹은 불닭으로 약간 배탈끼가 있어서 출발 전에 배탈 약한 포도 먹은터였다. 열심히~ 운전해서 가도~ 경차의 마력(?)은 중형차의 그것과는 차이가 나고, 초보운전의 미숙함이 더해져서 과격하기보단 안전하게 몰다 보니, 뒤차 입장에서는 답답했나 보다. 왕복 2차선 도로(아직 도로 호칭을 잘 모르겠다) 양방향 1차선밖에 없었는데, 가운데 노란 중앙선을 넘어서 몇몇 차들이 위험하게 추월을 시도했다. 아니.. 추월할 것이면 전방 시야가 확보된 상황에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곡선구간에서 전방에 나타날 차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렇게 추월을 해댔다.. 여튼, 가족모임에 대해 쓰려고 한 길이니 이런 사소한 불평은 접어두고..
겨우 아부지가 계신 시골에 도착했다. 오전 10시 반에 출발했는데, 오다가 아부지 좋아하시는 도다리 회도 포장해오고, 마트도 두어 번 들린다고 오후 2시 반에야 도착했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시골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부지는 아침 댓바람부터 서두르셨나 보다. 청소라고는 안 하시는 아부지가 걸레를 다섯 번이나 빨고 이불도 세 개나 빨았다고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도착한 가족들한테 푸념을 늘어놓으시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부지는 도다리 회 한 도시락을 장이랑 비벼서 맛있게 드셨다. 괜히 나도 생색을 내면서 아부지한테 이것저것 헛소리도 많이 했는데, 일주일 정도 혼자 있으신 게 적적하셨는지, 평소라면 무시하고 넘어갈 나의 헛소리에도 일일이 다 대답을 해주셨다.
가족들은, 늦은 점심으로 도다리회와 남동생이 끓인 라면을 먹었다. 나는, 잠시 눕는다고 올라선 '낮잠 자는 자리'에서 1시간여 내리 자버렸다. 운전한다고 긴장했던 게 풀린 것 같다. 그렇게 '꿀잠'을 자고 일어나니, 곧 저녁시간이었고, 엄마를 도와서 저녁을 차렸다.
저녁은, 가족들이 오랜만에 시골집에 다 같이 모이면 항상 먹는, '고기~'. 오늘은, 돼지고기다. 항상 솔선수범하는 남동생이 고기를 굽는다. 나도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반찬과 재래기 같은 것들을 갖다 나른다. 오랜만에 밤맛 술을 마셨다. 단 두 잔, 마신 탓에 화장실을 몇 번이나 갔는지 모른다.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회식'하고, 얘기도 나누고, 불후의 명곡도 같이 보고.. 즐거웠다.
내가 어릴 적에는, 아부지가 항상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우리를 찍어주셨는데, 이제는 내가 핸드폰으로 가족들의 모습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찍는다.
'괴짜'기질이 있는 아부지, 나, 동생은 카메라에 잡힐 때마다 기괴한 표정을 지어 대고, 그런 모습을 본 엄마는 (아빠를 보고 동생이)'닮는다'하고 한소리를 하신다.
아부지는 코도 고시고(물론 나나 엄마나 동생이나 피곤하면 종종 코를 곤다) 넷이 한꺼번에 자기엔 방이 비좁기도 해서, 큰방 말고 작은방에도 온돌을 지핀다. 나는 낮잠을 자서 티브이에 '살림남'이 끝날 때까지 안 잤지만, 동생과 어무니, 아부지는 다 곯아떨어지셨다. 시골에는 밤이 빨리 찾아온다. 본가에 있으면, 거실에서 식사를 하고 티브이를 다 같이 보는 일정이 끝나도 가족들은 저마다 방에 들어가서 제각각의 취침시간에 잠을 자지만, 시골에는 해가 지고 몇 시간이 지나고 불을 끄면 다 같이 자는 시간이다. 오랫동안 잠을 못 이루고 핸드폰을 부여잡고 있을 필요도 없다. 가족들이 옆에서 다 같이 자고 있으면 나도 따라서 자게 된다. 아주 오래전, 엄마방에서 다 같이 이불을 펼쳐놓고 자던 기억이 슬며시 나기도 한다.
새벽 2시 반, 남동생이 화장실을 간다고 일어난다. 살짝 화장실 가는 것을 참고 있던 나도 따라나선다. 사실, 시골집의 화장실은 구식이다. 아직 수세식 시설을 못 갖췄고, 가는 길도 조명을 꺼놓으면 어두컴컴해서 핸드폰의 손전등을 켜고 가야 해서.. 새벽에 화장실을 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보통 잠자리에 들기 전에 다 해결하는 편이지만, 오랜만에 마신 술 때문인 것 같다.
다음 날, 아부지와 어무니는 제일 먼저 하루를 시작하셨고, 그다음으로 내가, 아주 한참 뒤에 동생이 일어났다. 엄마가 밭일을 하는 사이, 어제 '엄마가 만든 쑥국'을 데우고 '엄마가 미리 불려놓은 콩'을 넣어 밥을 안쳤다. 곧 아부지와 어무니가 식사를 하시러 오신다. 어무니의 손이 더해져 아침상이 완성된다. 옆집 할머니가 주신 콩으로 만든 콩장이 참 부드럽고 맛있다. 산나물과 파김치, 머위나물(?)도 꿀꺽꿀꺽 넘어간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디저트까지 해치운 우리. 남동생은 아직까지 자고 있다. 나는 대강 설거지를 해놓고 엄마와 쑥을 캐러 나선다. 날씨가 더워 1시간도 못 캐고 내려와서 찬물을 뒤집어썼다.
어느새 일어난 남동생도 옆에서 밭을 갈고 있다.
먼저 내려와 쑥을 다듬고 있으니, 옆에서는 아부지가 내가 씻고 있을 때부터 앉아서 어제 딴 파를 다듬고 계신다.
엄마가 불과 1시간도 안 걸려 딴 쑥의 양. 결국 다 손질하지 못하고 본가에 가져왔다. 쑥떡을 만들어 먹을 예정이다.
한참 뒤에 어무니가 오시고 가족들의 간단한 점심 식사가 시작된다. 메뉴는 엄마의 '각종 나물+김치전'. 프라이팬으로 세 판 구워 나오니 네 식구의 배가 가득 찼다.
밥을 먹고 나서도 쑥과 파를 손질하다가 '도저히 (식물을 만지는 데) 스스로 한계에 도달해버렸다.'
잠시 누워 휴식을 청하니, 곧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손을 흔들어주시는 아부지에게, '이번 주엔 집에 오세요!'하고 세 식구가 먼저 본가로 향한다.(사실 어디가 본가 인지도 애매하다..)
1시간여의 운전도 내가 담당했다. 사실 '운전이라도 해야' 집에서 역할이 있는 편이다. 나에 비해 엄마와 남동생은 꽤나 부지런하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메뉴는, 동생표 홍합탕.
돌아오는 길, 마트에 들러 홍합을 샀더랬다. 글을 쓰고 있으니, 홍합탕이 완성되었다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부지는 아마, 낼모레 오실 듯한데, 솔직히 오실 '때'가 되었다. 안 오면 이제는, '잡으러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