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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년 만에 나 홀로 목욕

엄마의 빈자리

by 박냥이

모녀지간의 일정이 어긋났다. 하는 수없이.. 나는 꼭 오늘 목욕을 하고 싶었기에.. 다른 약속이 있는 엄마를 뒤로 하고 정말 오랜만에 '혼자서', 엄마랑 같이 다니던 목욕탕으로 출발했다. 나 혼자 목욕을 한지는 아마 몇 년이 지났을 것이다. 그것도 타지에서 살 때 몇 번한 게 다였다. 역시 목욕은 엄마랑 해야 제맛인데..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커서 혼자 왔더니 뭔가 쓸쓸하다.. 늘 계산과 수건 챙기는 일은 엄마가 했었는데, 혼자 하니 카운터 아줌마의 말씀이 아니었으면 수건도 안 들고 들어갈 뻔했다. 매번 안경을 벗고 탕에 들어가니 올 때마다 익은 얼굴도 없을뿐더러, 혹시라도 텃세를 당할까 괜한 노파심에 어깨가 움츠러든다. 텃세 걱정은 기우였으나, 여탕에서 언제 또 기분 나쁜 텃세가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엊그제 엄마와 같이 와서 어느 정도 때를 민터라 오늘은 물속 운동과 반신욕 위주로 할 예정이다. 물속 운동이란,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낮아 탕을 한두 명 쓸 기회가 많은 이 목욕탕에서, 탕에 몸을 담그고 몸을 낮춰 물이 안 튈정도로 물속에서만 다리를 휘젓는 나만의 운동법이다.(오늘 보니 다른 아주머니도 이 운동을 하시더라) 헬스장의 그것과는 칼로리 소모나 근력 형성량 자체에서 차이는 있을지라도, 헬스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건만 헬스장에서 기구를 이용한 반복적인 운동들이 그저 진부하게 여겨지는 것과는 달리, 다양한 물의 움직임과 함께하는 '목욕탕표 운동'과정은 여느 운동이 그렇듯 반복적인 과정이 포함됨에도, 더 동적이고 지루함이 덜한 느낌이다. 건너편 미지근한 탕에서 물을 출렁이고 넘치게 하며 수시로 몸을 방방 뛰는 '모르는 아줌마'와 서로 타이밍을 맞춰 나도 다리를 젓는 운동을 했다. 이렇게 별거 아닌, 부력의 도움을 받는 잠시의 운동 뒤에 그 여파로 몸에 열이 오르면, 벽 샤워기로 가서 시원한 물을 덮어쓰고, 잊을만하면 제일 따듯한 탕에 다리만 담그는 '반반'신욕도 해가면서 일정 루틴을 반복한다. 미온탕 가운데는 계속해서 물거품이 끓어오르니, 그로 인한 물보라 속에서 부대끼며 반복적인 과정들의 심심함이 덜어지는 느낌이다.


엄마와 함께 올 때마다 종종 마주친, '같은 모자 이모'가 오늘도 보여 내심 반갑다. 인사를 나눠본 적은 없으나 나와 같은, '형광빛 망사 고무줄 모자'를 덮어 씐 유일한 사람이라 눈이 나빠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목욕탕 내에서 몇 없는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다. 아마 이 이모랑 나를 착각하셨는지, 어떤 할머니가 나의 등 뒤에 대고 반가운 인사를 하신다. '오늘 늦게 왔네~'하시면서. 어색하게 돌아보며 꾸벅 인사하니 할머니도 살짝 당황한 기색이다. 허허. 그래도 엄마랑 함께 하지 못해 조금 낯설고 외로웠던 맘이 약간 풀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의 빈자리에, 평소보다 시계를 더 자주 보고.. 괜히 가까이 오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엄마랑 함께 있으면 나는 거의 탕 내, 엄마는 거의 찜질방 안에서 따로 떨어져 있지만, 가끔 앉은 자리나 미온탕에서 마주치고 하니.. 아무래도 혼자 오는 것보다 덜 허전하달까.. 그리고 나는 내심 '엄마빽'이 있으니 (대부분 엄마랑 비슷한 나이대의) 남 눈치를 덜 보게 된다. 혼자인 오늘은, 탕에서 맞은편에 앉은 이가 나를 쳐다보지 않더라도 괜히 눈을 감아버린다. 그냥 '나에게 말 걸지 마세요'라는 의미라 할까..

역시 엄마랑 와야 한다니까.

시간이 좀 지나니 안보이던 삼총사, 사총사 아줌마들이 이 탕에서 저 탕으로 옮겨 다니면서 친분을 과시하는 느낌이다. 함께인 그들을 보니, 엄마가 없는 오늘이 한층 더 고독해지는 느낌이다. 나도 또래의 목욕 메이트라도 만들어봐야 하나..


목욕탕 내 때밀이 이모들은 일반 고객들과 차이점이 있는데, 속옷을 입고 있거나 욕실화를 신고 있는 특징이 있다. 바깥 매점 카운터 이모도 가끔 씻으러 들어오시는 것 같은데, 음료를 사 먹는다고 몇 번 얘기한 적이 있음에도 안경을 끼고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보니 '그 사람'이 '이 사람'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목욕탕에 앉아서 '이걸 글에 써야지'해도 기록해놓지 않으면 자주 까먹어버린다. 목욕탕에서는 뭐, 기록을 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이번에 까먹으면 다음에 다시 생각나면 적는다.


오늘은, 기다려야 할 엄마도 없는데 괜히 허전한 마음에 옷을 다 입고 앉아서 (원래 나보다 목욕을 오래 하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적는) 브런치 글을 쓰고 있다. 어서 집에 가서 엄마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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