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반성 시간
나는 생리기간, 특히 이틀 차에 잠을 설치는 편이다. 꼭 새벽 2-3시경 잠을 한번 억지로 깨어서 혹시 이불을 버리지 않았나 걱정에 화장실을 들린다. '이불을 버리면 그만, 이미 수건도 여러 장 덧대놓았는데' 하고 태평하게 잠을 청하지는 못한다. 중간에 일어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생리기간 중 몸이 많이 피곤한 이틀 사흘 차에는, 밤에 늑장 부리지 않고 되도록 일찍 잠들고 새벽에 깨는 것이 다음날 덜 피곤하더라.
집 밖에서 마주치는 온갖 사람들에게 아직까지도 과하게 친절하려 하지만, 정작 제일 함께 하는 시간이 많고, 제일 소중한 사람인 엄마한테 말이 헛 나오는 경우가 있다. 좀 친절하자. 바깥에서 애쓰는 것의 몇 분의 1이라도 해도 충분할 것이다. 엄마가 앞으로 나랑 함께 하셔도 반 100년도 채 되지 못할지 언대, 정신 차리자.
그래도, 병원 치레를 하고 나니 생리기간 중 통증이나 여러 면에서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생리기간 중 새벽에 잠을 깨면, 진통제와 위장약을 찾아 먹어야 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지금도 물론 통증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약이 없어도 견딜만하고 스스로 통증이 있을 때 가만히 웅크리고 있기보다 내 몸 이곳저곳을 주물러보고 스트레칭을 하면서 호전되길 바라는 쪽이다.
'에이, 지금? 귀찮은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미쳤다고 생각하고 한번 해보자'하고 방금은, 일어나서 몸의 이곳저곳을 늘이고 당기는 스트레칭을 조금 했다. 한결 개운하다.
여태 자고 일어난 아침 시간대에 가장 통증이 심했던 경험으로,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이 나중에 잠에서 깨고 움직일 때 그만큼의 통증을 수반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아침에 한 번에 몰아치는 통증을 덜어낼 수 있다.
스트레칭을 하면서 아파트 창문을 내다보니, 맞은편 동의 불이 거의 다 꺼져 있는 시간이다. 지금은 오전 4시.
옛날부터 느끼지만, 우리 아파트 사람들은 참, 다들 잠은 바른생활 어린이처럼 잘 자는 것 같다.
문득, 엄마에 대한 반성의 시간과 함께 감사의 마음도 몰아친다. 이렇게 몸을 뉘일 수 있고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이 어딘가. 별생각 없이 지내오던 나의 방이 지금 따라 아늑하게 느껴진다. 비록 내가 보탬이 되진 못했지만 부모님이 그동안 갖은 노고를 겪으시며 장만한 우리의 보금자리이다. 당연한 듯 살아오고 있지만, 감수성이 예민해진 새벽이라 그런지 이런 감사함도 새삼 느끼게 된다.
새벽에 일어나면 그만큼 일찍부터 배가 고파지는 것이 단점이다. 그래도 오전 7시에 갑상선 호르몬제를 먹기 전까지는 다른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거의 바뀌지 않는 보통의 일상이다.
새벽에 불을 끄고 홀로 누워있으면 옛날의, 떠올리기 싫어서 마음 깊은 곳에 두었던 일이나 힘들었던 순간들이 다시금 떠오르기도 한다. 오늘은, 병원 입원 시 같은 병실에서 마주쳤던 여러 얼굴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지금 잘 살고 있으려나. 다시 병원에서 만나지 말자고 했었지. 나도, 분발해야겠다 다짐한다.
그동안 살면서 듣고 보았던 꺼림칙한 일들에 대해서는, 생각의 흐름이 시작하기도 전에 스스로가 먼저 차단해버리더라. 그런 한없는 심연 속에서는 미약한 생리통이 더 심해질 수도 있겠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최소 '하루 만보'는 걷자 하고 다짐한다. 어제는 8 천보를 걸었다. 약간 부족하다.
오늘은, 생리량이 많을 것을 예상해서 모든 일정을 비워두었다. 다음 직장에서도 이런 생리휴가를 비공식적으로 스스로 가질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직장을 구할 생각이다.
있다가 알 수 있을, 날씨가 맑길 바라면서 해가 뜨면 빨래도 해놓고 브런치에 글도 좀 쓰고 나서 다시, 산에 오를 생각이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키면서, 이번 주 염색이나 불량한 음식들을 먹어서 내 몸안에 생긴 독소 같은 것이 해독되길 바랄 것이다. 염색을 하기 전에 집에서 셀프 염색을 했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미용실의 도움을 받아 한층 밝게 염색했는데, 오히려 이전의 색이 더 어울린다고 내심 생각하던 중 엄마한테도 같은 얘기를 들었다. 거기다 집에서 했던 경우에는 별 냄새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엄마가 인상을 찌푸리실 만큼 역한 냄새가 진동을 했던 것..
무의식 중에 몸이 상한다고 느끼면서도 염색을 강행한 터라 한편으로 허탈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앞으로 한동안 염색을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미용실 원장님은, '흰머리 나면 염색하고 싶어도 못해요, 할 수 있을 때 많이 하세요'라고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녀나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었지만, 연예인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염색을 자주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하물며 '5년'의 기간을 완치로 보는, 암환자 신세에, 방심할 수는 없다.
'암환자'라 쓰니 이상하다. 풍문이 많은 갑상선암 환자이다. 거의 수술 한 번으로 완치로 보는 경우도 있으니, 아직 나를 암환자라 칭해도 되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마냥 마음 편하게 살 수만은 없는 것이, 다음 주에 전이 여부의 검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염색의 타이밍'은 좋지 않았다. 갑상선암 분야 관련 최고 노장 교수님께, 염색한 머리를 어째 숨겨야 할까 하고 가족과 연인한테 잠시 걱정을 토로했다. '모자를 쓰면 예의 없어 보이진 않을까', '두건이라도 써야 할까'하고. 하하. 결국 그대로 들어가서 교수님께 한마디를 들을 각오도 해야겠다. 한없이 인자하신 교수님은 그냥 넘어가실 수도 있겠다. 괜히 혼자서 섣부른 걱정이 한가득이다.
오전 6시까지 약 1시간 40분 정도 남았다. 아마 그 시간쯤엔 엄마도 일어나시지 않을까.
'이놈의 자슥'(남동생)은 오랜만의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집구석에 들어오지 않았다'.
'확마, 주패삐까'. 한편으로는 조금 걱정이다. 나와는 달리, 술을 이만큼 많이 마셔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술이 센 것 도 아니고 '맛이 가버릴 때'가 종종 있어서 특히 외박을 하는 중에는 더 염려스럽다.
뭐, 그렇다고 내일모레 서른인 남동생이 불과 두 살 터울인 나나, 한참 어른인 엄마의 말을 제대로 들을 리는 없다.
그래도 동생 방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 덕에, 오늘 새벽녘의 바깥 야경을 잠시 구경할 수 있었다. 내 방에서 나있는 반대방향은 산이라서 창문 밖이 그저 깜깜할 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와서, '엄마한테 잘하자'. 오늘은 한 번 더 의사를 여쭤보고 어제부터 다리가 찌뿌둥하시다니 목욕탕에 태워드려야겠다. 참, 어제 엄마가 몸이 별로 안 좋아 보이시는데, 음식물쓰레기를 또 내가 버리지 않은 것도 반성할 것. 이것저것 '도울 수 있을 때 돕자'. 엄마가 건강하실 때, 조금이라도 젊으실 때, 좀 챙겨드리자. 적어도 난 여기저기 아프지는 않잖아. 그러니 불평은 접어두고, 더 아프고 약한 엄마를 도와야지. 집안일은 엄마만의 일이 아닌 가족 공동의 일이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을 당연시 여기지 말고 항상 소중하게 생각하자.
정신차리자구. 몸도 더 자주 주물러드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