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날 산에는 그늘이 지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터무니없는 기대를 내려놓고, 타인에게 관대해지기

by 박냥이

불과 몇 개월 전, 날이 추울 적 여러 겹의 옷을 껴입고 등산을 가는 내 모습을 보는 엄마는 항상, '산에 가서 5분만 걸어봐라, 하나도 안 춥다'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 말을 종종 장난으로 앵무새처럼 따라 해서 엄마가 추운 날씨에 옷매무새를 걱정할 때에도, 철부지처럼 같은 말을 따라 했다.

우리 집 뒷산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집 뒤에 우뚝 서서 우리 가족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 이사온지 2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산은 인간들의 욕심에 여기저기 잘려나가고 훼손되긴 했으나, 일부의 몸으로라도 이런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가슴이 종종 답답한 엄마에겐 숨통 트일 장소, 병원신세를 지고 나서 쉬고 있는 나에게는 코로나를 피해 운동을 하고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고 삶에서 쌓인 각종 독소들을 해독하게 해 주는, 고마운 장소이다.


오늘은 유난히 덥다. 차에서 한동안 틀어보지 않은 에어컨을 켤 수밖에 없어진 날씨다. 이런 때에는 도심의 어떤 곳에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머무르기보다 산에 오는 것이 낫다고 한껏 느끼는 중이다. 더 더워지면 모기를 비롯한 각종 벌레들이 달려들어 산에서 쉬는 것도 쉽지 않아 진다.

지금이 딱 좋다. 아침의 짧은 등산을 마치고, 집에 앉아만 있으려니 영 답답하고 그동안 또 뭘 그리 많이 먹은 터라 뱃속이 빵빵한 채로 다시 산에 엉금엉금 기어올랐다. 생각 없이 면바지를 입고 나와 조금 답답하다. 집에서는 너무 앉아있어서 좀 걸으려고 산에 왔지만, 몇 보 걷다가 다시 평온한 그늘 속 벤치에 앉았으니.. 엉덩이 크기가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 이유를 알겠다.

웬만한 벌레는 그리 겁내지 않아서, 자꾸만 기어오르는 작은 거미 녀석을 떼낸다. 거미를 죽이면 안 좋다는데 이 녀석들은 왜 이리 위험하게 나에게 기어오르는지 모르겠다.

옆에 있는 벤치에는 시츄 한 마리가 주인아주머니와 함께 자리를 잡았다. 얼핏 보니 녀석도 오르막을 올라온 터라 조금 지친 기색에 태평하게 벤치 위에서 숨을 돌린다.


엄마랑 나는 요새 들어 함께 많이 놀러 다니며, 서로가 스스로는 보기 힘든 모습들도 사진을 찍어주는데, 그중에 산돼지 같은 나의 뒷모습에 나름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 '아니, 살이 언제 이리 쪘었나. 뒷모습이 이리 돼지 같을 줄이야..' 언제 본지 모르는 적나라한 뒷모습에 조금 반성하다가도 '빵, 떡' 앞에서는 마구 흔들렸다.

그럼에도 엄마가 찍어주는 나의 모습을 통해, 나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사진모임 외의 활동하지 않는 모임을 삽시간에 정리하고, 이후에 계속해서 끊임없이 더 재밌을만한 모임을 찾는데 시간을 소모했었다.

모임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1) 그저 심심해서 2) 진실된 인간관계를 기대하며

같은 이유들이 있었다.

1보단 2의 이유가 내심 좀 더 큰 거 같다.

한편으로는 이루어내기 힘든 과제이다. 대부분 가벼운 관계로 스쳐 지나가는 경우가 많고, 나이 먹고 친구 사귀기는 여간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러는 와중, 뚱뚱한 나의 몸을 다시 돌이켜보며,

'나 자신이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해 헉헉거리고 힘들어하는데, 스스로를 단련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와 같은 어쩌면 터무니없을 수도 있는 기대에 여기저기 허공을 헤매는 일을 잠시 접어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 스스로에게 이리도 관대한 만큼 타인에게도 적당한 인내심을 가지려 하는 중이다. 옛날부터 가족이나 연인 외의 '남'에게 쓸데없이 과한 친절을 베푸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친절과 관대함을 그들보다는, 가족 특히 엄마의 불평이나 잔소리에 대처할 때나, 종종 잘 삐치는 남친의 투정을 받아주는데 발휘해보려 한다.

그곳에 더욱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진정한 '남'에게는 덜 신경 쓰고 덜 휘둘리려 하는 것이 목표이다.

또 다른 데는, 돈을 내고 서비스를 받는 경우 혹자들이 일삼는 갑질을 하기보다, 느긋하게 그들을 마주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도, 아예 못 본 척 바삐 제 볼일(화장실 볼일 x)을 보러 카운터를 비우는 점원의 태도에 몇 분 기다리다가 물건을 그냥 두고 나와버리긴 했다. 이보단 덜한(?) 경우에서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여튼 제일 먼저, 나 자신부터 단련하자.

부지런히 등산하거나 숲 속을 걸으면서, 나의 정신과 육체를 단단하게 만들자. 다음 주 외래 전까지는 매일 등산을 하는 것이 일차적 목표이고, 시간이 되면 저번에 갔던 통도사 무풍한송로도 다시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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