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보니 따지게 되더라

아마도 연애도?, 가끔은 손해도 볼 수 있지

by 박냥이

(쓰다 보니 제목과 무관한 서론이 깁니다. 하하)

비가 푸슬푸슬 내리는 중, 산행을 시작했다. 최소한 내일 외래까지는, 이틀에 한 번은 꼭 산행을 하자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했다. 땀인지 습기가 응집되었는지 얼굴에서는 물이 흘러내린다. 콧등에도 송골송골 땀인지 물인지 잔뜩 맺혔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산은, 맑은 날보다 한층 더 신선하고 밀도 높은 공기를 내뿜는다. 맑은 날보다 사람도 없어 더 좋다. 에서 나올 적에 비가 거의 그쳐 가는 줄 알았는데 산속에서 푸드드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리는 양에 비해 크게 뻗어있는 나무들 덕에 내가 맞는 비의 양은 현저하게 적다. 차분히 가라앉은 비 오는 흐린 날에 조금 생기를 더해보고자 등산 초입부터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꽂고 있다.

거의 목표지점에 다다랐지만 비가 생각보다 많이 오고 그곳까지는 '나무우산'이 거의 없는터라, 다시 발길을 돌려 아마 향나무인듯한 나무 밑에 서서 비를 피하며 글을 드문드문 써 내려가고 있다.

이제 제목에 속한 이야기를 써보자.


아침부터 오랜만의 옷 쇼핑에 매여 거의 두세 시간을 인터넷에서 옷 구경을 하면서 보냈다. 나는, 오프라인에서 옷을 입어보고 사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일단 체형이 다부질뿐더러 살도 많아 인터넷 쇼핑몰의 모델이 입은 옷매무새가 안 나온다.

일전에 어디에서, 옷의 뒷모습 사진이 없다면 그 옷은 뒤쪽이 허술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어서, 뒷모습이 없는 옷 사진을 보다, 스크롤을 내려 상대적으로 부실해 보이는 한 장의 뒷모습 사진을 보고 '아 역시 아니다, 괜히 함부로 사서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 사이트 저 사이트 둘러보다 마지막으로는 특정 사이트가 아닌, 네이버 쇼핑으로 이것저것 둘러보다 나 같은 꿀꿀이들도 입을만한 치마를 파는 곳을 발견했다.

다른 곳들은, 빅사이즈를 판다고 써두기만 하고, 정작 쇼핑몰 사진 상의 모델들은 죄다 44 사이즈분들이니 아이러니였고, 역시 '나에게는 무리'일듯한 그런 옷차림들에 사이트에 들어간 지 몇 분도 안 지나서 나오게 되었다. 특정 사이트는 일부러 화질을 낮춘 gif 파일 사진을 잔뜩 띄워놓기도 했는데, 그런 것도 선명하게 올라온 사진들보다 시각적인 선호도가 떨어졌다.

그나마 이후에 찾은 사이트에서는 넉넉하게 88 이상의 사이즈를 찾을 수는 있었으나, 역시 사이즈가 커지면 그만큼 옷의 멋이 떨어지는듯했고, 모델의 핏보다는 리뷰상 사진의 '일반인 핏'에 더 중점을 두는 편이라 옷 몇 가지가 벌써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장바구니에 마지막으로 담은 세벌 중, 고민이 되는 두벌, 아니 세벌 모두를 두고 지쳐가는 쇼핑의 과정을 별 소득 없이 끝냈다. 옛날이라면 그냥 쇼핑한 시간이 아까워서 뭐라도 샀을 건데, 이제는 몇 달 백수 신세에 잔고도 넉넉지 않아 가성비도 요리조리 따지게 된다.

과연 '이것을 이 돈 주고 살만큼 가치가 있을까' 하고.

옷을 자주 사 입는 편은 아니지만, 20대 시절부터 온라인으로 옷을 사면 특히 생각과 다른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험들 덕에 '이런 모양, 이 정도 크기는 애매하겠다'하고 섣부르게 무턱대고 구입을 하지 않게 되었다.


문득 연애사업도 이와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0대 시절의 여자보다 30대->40대 갈수록 여자들이건 남자들이건 이성에 대해 이것저것 따지는 것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는 흔히 들을 수 있다.

벌써 20대 시절부터 까다로운 안목을 가진 것은 주변 지인이나 가족들의 영향을 받아서일지도 모른다.

엄마나 아빠의 영향도 크리라.

나이가 들수록 '머릿속 손익계산서'를 끊임없이 검토한다.

20대 시절에는 세상 물정 모르고 베풀고 타인을 따라 했던 것들에 대해 자신만의 고집과 추구하는 방식이 생기고, 돈의 씀씀이도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닌 이상 매정하게 줄이게 된다. 네가 이걸 사면 내가 또 저걸 꼭 사야 한다. 돈을 쓰는 데도 차례가 있고 순서가 생긴다. 돈 때문에 울고 웃을 일도 이전보다 많아진다.

나 또한, 바보같이 한없이 베풀기만 했던 지난날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친한 언니는 20대 젊은 시절에 꽤 나이차가 나는 직장인 남친에게 손수 만든 케잌을 선물했지만, 냉대를 받았다 했다. 그는, 형편이 넉넉잖은 대학생이었던 언니에게 그런 것보다 값나가는 선물을 바랐던 것이다. 그 언니는 타지에서 혼자 스스로 돈을 벌어서 열심히 학업을 이어나갔고, 중간에 낙방의 고배도 마셨지만 지금은 번듯한 치과의사이다. 당장 다음 달에 변호사인 남친과 결혼을 하니,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 만난다 생각한다. '직업'적 측면에서가 아니라, '성격'과 '기질'적인 측면에서. 언니나 형부나 다들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진 자'가 되었어도 '잘난 척'하지 않는 사람들.


나는 대학생활 중 주로 7-8살 차이가 나는 언니들과 잘 어울렸는데, 그녀들 중에도 남자를 볼 때 이것저것 따지는 이들이 많았다. 동기중 한 명은 그 시절 23-4살이던 나와 2살밖에 많지 않았지만, 남자를 쉽게(?) 사귀지 않았다. 그녀에게 두어 번 소개팅을 주선해준 적도 있지만 결과는 늘 좋지 않았다. 그녀는 외모랑 능력 등 자잘한 것들을 많이 따졌다. 정작 그녀의 맘에 들면 그가 그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그로부터 10년도 안 지난 사이, 나도 서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 시절 마주했던 언니들만큼 눈이 높진 않다고 생각한다. 티브이를 보면 흔히 나오는 이야기인, '부모의 반대에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결혼했어요'라는 이야기의 주인공들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조건보다는, 설명하기는 힘든 '사랑'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

나 자신은 뭔가 상대의 외모에 있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생각하지만(그래도 따지자면 평균 이상을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정이 가는 얼굴이어야 한다)

사실은 조금 신경 쓰는 것 같기도 하고..

능력적인 면에서도, 아는 언니 말마따나 나보다 능력 있는 상대를 만나야 더 존중하게 된다는 말에 흔들리다가도..(친한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뭐, 내가 능력이 있으니.. 굳이..'하고,

'내 능력 이상의 누군가'를 찾아 한없이 헤매지 않는다.

그런 상대를 만나더라도 얻는 만큼 잃을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잘 나가는 시댁'의 며느리가 되더라도 속을 들여다보면 '심하면 노예'와 다를 바 없는 대접을 받는 경우도 있지 않나..


나도 연애를 많이 해본 것은 아니고, 겨우 4번밖에 해보지 못했다. 햇수로 치면 어림잡아 8.5년이랄까.

그래도 비교적 출중한 외모도 아닌 내가 이만큼이라도 연애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순간에 너무 재거나 망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사친 여사친 같은 애매한 관계를 지속한 경우는 거의 없다. 내게 언제나 '가장 친한 친구'는 그 시절에 사귀고 있던 이성친구였다. 미온적으로 이성을 대해본 일이 거의 없다. 그럴 바엔 동성친구를 사귀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다.

'제일 친한 친구 = 이성친구'의 부작용은, 마음을 나눌만한 동성친구는 지금까지 손에 꼽을 만큼 적다는 것.

여튼, 원래 적으려던 내용은, '어느 정도 손해도 감수할 줄 알아야' 연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얘는 어디가 마음에 안 들고, 쟤는 뭐가 또 싫고 하다 보면..

'몇 년 모쏠'은 금방이다.

손해라고 썼지만, 어느 정도 포기하고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아는 자세를 뜻한다.

뭐, 그렇게 욕심을 한껏 부려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모두 다, 수명이 유한한 인간이고 인간인 이상 완벽할 수는 없다.

조금 부족한 나와 네가 만나서 서로 보완해주고 기대고 의지하는 게 연애와, 이어지는 부부의 삶이 아닐까.

지금 연애 중이라서, 각종 모임들에 대해서는 무심한 편이지만, 이성을 사귀고 싶은 솔로라면 '그 모임을 나가면 돈이 얼마가 들지'부터 걱정하며 망설이진 않을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금전적 여유가 있을 때의 경우에.

어쨌거나 투자가 있어야 결과도 있는 법.

너무 손해/포기/상처 없는 무엇을 바라면 (기대하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때로는 집에 머무는 일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