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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Apr 27. 2022

한쪽 귀는 열어놓기

환기도 될 겸

  20대 초중반부터 현재 서른까지, 이어폰의 형태가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옛날에는 유선 이어폰이라서 음악을 들을 때 항상 '이어폰 선길이 거리'안에 핸드폰이나 MP3를 지니고 있어야 했다.

이러니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는데, 특히 서랍 등을 닫을 때 이어폰 줄이 끼이면 90프로의 확률로 이어폰의 전선이 손상되어버렸다..

헬스장 러닝머신이나 자전거를 탈 때에도 한 손에 핸드폰을 쥐고 운동을 하는 것이, 실수로 선이 당겨질 경우에 핸드폰까지 나뒹구는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다음에는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이 보급되었지만, 땅콩 크기만 한 현재와는 달리, 머리띠처럼 길게 늘어뜨린 모양에 목에 거는 형태였고, 끝부분에서 콩나물 같은 것 쭈욱 당겨 귀에 꽂는 다소 기이한 형의 이어폰을 썼었다. 이것의 등장으로 핸드폰을 떨어뜨려 놓을 수 있었지만, 대개 전자기기를 오래 사용할 경우 발열이 심하면 목 주위 피부까지 더워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블루투스의 성능이 지금보다는 좋지 않았는지 몇 미터 거리에서 연결이 끊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통화 중 각종 소음은 덤이었다.


  현재 나는 갤럭시 버즈 2를 쓰고 있다. 강낭콩 모양이다. 이것의 단점이라면 하수구나 엘리베이터 틈 사이로 떨어뜨릴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 최근에 유머글에서, 낚시 중 버즈를 끼고 있는 걸 간과하고 들리는 벌레소리에 큰 풍뎅이가 앉은 줄 알고 화들짝 놀라며 버즈를 떼어 못에 던져버렸다는 웃기면서도 슬픈 이야기도 보았다.

이렇게 한쪽을 잃어버리는 불상사도 있으니.. 나는 꼭 '강낭콩'을 빼놓을 때는 전용 케이스에 넣어둔다.

남친은 결국 한 짝을 잃어버렸는데 신기하게도 하나만 따로 팔더라.(좌우 구분이 되어있다.)


  버즈도 단점이 있다. 일단 2년 정도 써오고 있는데, 장시간 양쪽 모두 사용할 경우 귀가 꽤 답답하다. 그래서 보통 한쪽만 착용한다. 대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경우에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편이라, 한쪽 귀를 열어두면 어느 정류장 인지도 잘 들리고, 은행이나 병원에서 나를 찾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

  예전에 제주도 여행 때, 7번 올레길을 걷고 싶어 버스기사님께 행선지를 여쭤보고 탑승한 적이 있는데, 버스기사님이 '손님, 여기에 내리면 돼요!!'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시는데도 양쪽 귀를 틀어막고 음악을 듣고 있던 터라 대번에 그 호의에 답하지 못했다.

그런 경험 이후, 혹시나 길거리의 행인(이상한 사람들 말고)이나 대중교통 이용객들이 나에게 말을 걸 경우를 대비해서도 이어폰을 양쪽으로 다 착용하지 않는 것이 유용했다.

  그리고, (점원의 서비스가 제공되는) 의류매장 같은 곳을 이용할 경우에 기존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다 빼고 들어간다. 이는, 어차피 매장에 들어서면 직원이랑 이야기를 해야 하니, 한쪽이라도 꽂고 있는 것 자체가 그들말을 경시한다는 느낌을 줄까 봐 노파심에서이다.

반대로 내가 점원이라면 상대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낸 후, 상대의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을 발견한다면 괜히 허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아는 길을 멀리 이동할 경우나, 그날따라 음악에 더 집중하고 싶을 때는 두쪽을 다 꽂기도 하지만 1-2시간이 지나면 답답해서 한쪽을 빼버린다. 그동안 뺀 녀석을 충전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버스에서 할아버지 아저씨 할머니 아줌마 청년들이나 소년 소녀들이 너무 시끄럽게만 굴지 않는다면, 한쪽으로만 듣는 음악으로도 그런 소음들에 적당히 둔감해질 수 있다.


  뭐, 다 '사람 사는 소리' 아닐까 하고..

너무 주위에 둔감해지고 시끄러운 음악으로만 귀를 꽉 채우다 보면 만일에 있을 사고에 의한 대피력도 떨어질 것 같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차벨을 부탁하시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10번 중 한번 있을까 하는 그런 일에 대비해서도  주위의 소리에 어느 정도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참, 이어폰은 샤워 이후에는 귀를 잘 말리고 써야 한다더라.

한쪽씩 끼면 그동안 이어폰이 없는 나머지 귀는 바람도 통하고 환기도 시킬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버스 창가 좌석에 앉으면 창가 쪽 귀 이어폰을 뺀다. 그러면 버스가 이동함에 따라 창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귀를 훑고 가서 덜 답답하고 에어컨이 안 켜져 있어도 한결 시원해진다.


  세상살이에 너무 예민하지도, 무심하지도 말자, 하고.

가끔씩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 속에서 내가 다 안다고 생각했던 세상에서 몰랐던 새로운 것도 새삼 듣고 느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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