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냥이 Apr 27. 2022

인사동을 오니 여행기분이 나는 병원 방문기

내친김에 경복궁 야간투어도!?

  내가 언제부터 이리 조심스러워졌지.. 뉴욕과 중국 여행 시에도 혼자 씩씩하게 잘 다녀놓고선.. 서울 지하철과 인사동 거리에서 살짝 주눅이 들고, 괜한 걱정들이 든다.

하긴.. 뉴욕에서도 방을 같이 쓰던 동생이 없이 혼자 거리를 걸을 때에는 통화를 하는 척하기도 하고 귀가시간은 항상 오후 9시 이전이었고, 중국에서는 중국인처럼 보이려고 중국어 서적도 들고 다니고.. 크크 나름 애썼었다.

  지금도, '길을 몰라 헤매는 모습'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지하철을 타고 내릴 동안 숙소로 가는 길을 재차 확인했다. 그래도 골목길이라 조금 헤매긴 했다.


  서울에서는 눈뜨고 코베인다는 게 옛날 말일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고향에서보다 뭔가 조심스러워진다. 지방에서 맛깔나게 해대던 사투리도 슬며시 볼륨이 낮아진다.

몇 년 전 아마 종로에서, '도를 아십니까'를 마주친 적이 있다.

지하도를 올라오던 내게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인상이 아주 좋으세요'하고 접근해왔는데 나는 애써 냉기를 뿜어내려고 노력하며 그들을 피해 갔다.

  확실히 패기 넘치던 20대 초중반에는 이태원의 찜질방이나 용산역의 드래곤머시기 찜질방도 다니면서 찜질방에서만 묵으며 몇 박 며칠간 서울을 여했었니.. 말 다했다. 지금은 나이가 고작 몇 살 더 먹었다고 그런 데서 잠을 쉽사리 청하기 힘들어졌다.

더불어 낯선 타인에 대한 의심과 경계도 그 사이에 몇 배로 불어났다.


  서울에서 괜찮은 추억도 좀 있다. 지금 묵고 있는 인사동 근처 서촌에서 묵었던 서촌게스트하우스에서 주인 내외분과 좋은 시간을 보냈던 것, 걸어서 오르기 힘든 마포의 한강게스트하우스에서 나 홀로 여행을 하고 콘푸레이트에 식빵 등으로 아침을 먹던 기억. 그곳의 다인실에서 실수로 핸드폰 배터리를 2층 침대에서 1층 베드에 떨어뜨렸는데 다음날 즐거운 여행을 바란다는 글과 함께 올려져 있던 일이라든지..


  여행길에서 겁만 먹고 망설인다면 결국 방콕(숙소콕) 밖에 못하는 것이다. 가뜩이나 잔뜩 걸어 잠근 마음의 빗장을 어느 정도 헐겁게 할 필요가 있으리라..

  잠시 쉬다가 길을 나서 인사동 거리 구경도 하고(이왕 온 김에~ 부지런히 움직여 보자 하고), 혼자라도 꿋꿋하게 식당에서 저녁도 먹고, 경복궁 야간투어를 너무 어둡기 전 오후 7시에 바로 후다닥 하고 오려고 한다.

  일단은, 한숨 돌리다가~


  오후 5시 30분경 다시 출발. 네이버 지도를 통해 근처의 쌀국숫집을 갈 계획을 짜 놓았다. 혼밥은 아직도 맘 편하지 않다. 마흔이 되면 아무렇지 않으려나.. 내가 남자라면 나이에 크게 구애받지 않을 것 같다는 혼자만의 생각..

여튼 목적지로 가서 2층까지 씩씩하게 오르고, 차돌양지쌀국수를 시켰다. 쌀국수는 자주 먹는 음식은 아니고 여행지에서나 외식메뉴로 가끔 고른다.

식당 이름이 '하노이의 아침'이다.

미리 사진으로 혼밥을 하기에 그리 불편해 보이지 않는 시설까지 확인하고 터.

예상과 같이 좌석 수가 많고 공간이 넓어서 눈치 보지 않고 널널하게 혼밥을 하는 중.

  생각보다 양이 많아 금방 차오른 배에 멍을 때려가면서 천천히 먹는 중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마냥 두려워하고 망설이기만 하면, 용기 내어 도전했을 때보다 삶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오는 길에 보였던 한지 가게도 내다보는 주인장의 시선이 느껴져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몸 사리듯 쓰윽 스쳐지나 왔다.

이래 가지고 꿈에서라도 '다큐3일'의 피디가 되는 것이 가능할까 싶다.

다큐의 제일 큰 특징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벽을 깨고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거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날 약간 데면데면했던 이들도 둘째 셋째 날이 되면 닫혔던 마음을 열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한다.

처음이 힘든 거지, 말을 계속 주고받다 보면 벽이 무너지고 상대의 표정이나 이야기에도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나에게도 여전히 '그 처음의 얼음깨기'가 힘들어서 게스트하우스에 와서도 누구와 마주치는 것을 꺼리고 독방 티브이 속 이야기를 듣거나, 익숙한 가족이나 남친(현재는 핸드폰으로 연락 가능한 사람들)과만 교류한다.


  요즘같이 사람이 제일 무섭고 각박한 세상에서, 몸을 움츠리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도 물론 당연한 것이고 필요한 자세이지만, 고슴도치처럼 너무 날만 잔뜩 세운채 겁에 질린 상태로 매사에 임하지는 않아야겠다.

뭐 대단한 사람이 있으려고.

다 먹고 싸는 것 중 하나라도 고장 나면 그저 탈이 나는 일개 인간일 뿐인데..

  이런 온갖 공상에 느질렁거리면서 식사를 하고선, 괜히 주눅 들었던 몇 시간 전의 시골쥐 모습을 뒤로하고, 경복궁에 갈 예정.

마침 야간개장을 하는 중이라 한다.(오후 7시~)

나도 따지고 보면 반육십 부산아지매인데.

까짓꺼 눈치 보고 움츠러들 필요 있나.

확 마, 오늘도 만보 찍는기다.

하고.. 하하하

일부러 서울 경기의 지인들에게 연락을 안했더만

왠지 외로워진다.. 그래서 오늘은 글을 더 많이 쓴다.

고독을 씹는 것도 운치 있고 사람 만나는 일이 귀찮기는 해도..


  헐.. 경복궁 야간개장이 역시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써 생겼다.. 다름이 아니라 경복궁 입구에 무인키오스크에서 휴대폰 번호를 치니 예약 내역이 없다는 것.. 인터파크였나 11번가였나..(둘 다 빨간색이라 헷갈린다.)

결국 예매했던 경로인, 네이버 지도-경복궁 야간개장 예약으로 들어가서 확인해보는 중..

뒤에서 안내원이, '날짜가 내일이시네요.'라고 흔히 있는 일인 듯 귀띔을 해준다. 하하하하하.

내일 저녁 7시엔 경상도 집에 있을낀데..

역시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

특히 나처럼 허둥대는 바보한테는 더욱..

  다시 발길을 돌려, 아까 봐놓았던 (아마 안국역 6번 출구 부근의) 붕어빵집이 아직까지 하고 있을까 내심 기대하면서(한편으로는 '다이어트해야 하는데'라는 고민과 함께) 숙소 쪽으로 향한다.

여행지에서는 다이어트에 대한 (안 그래도 허술한) 강박이 순식간에 봉인 해제된다. 그래도 이런 헛걸음 덕에 오늘도 만보를 넘겼으니, 혹시 먹을지도 모를 야식에 대해 변명거린 만들어 놓은 셈.


  아쉽게도 붕어빵집은 닫은 터라 옆의 군밤집에서 군밤 오천 원 치를 샀는데 아까 전에 손수건과 핀을 사면서 같이 구입한 큰 비닐을, 주섬주섬 꺼내니 군밤 할머니께서 '그 비닐 쓰는교'라고 하신다.(아마 서울말을 쓰셨을지도 모르지만, 사투리로 들리더라.)

'(순간 당황하며) 어- 필요하세요?' 하면서 비닐을 건네드리려니, 내가 군밤을 거길 담을걸 아셨는지 다른 비닐 하나를 주시면서 '내 하나 줄게. 이거 깨끗한 거다'라고 하신다. '아, 군밤을 5만 원어치 사가는 사람이 있어가꼬'.

이번에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가장 길게 대화를 나눈 사람이 (역시 예상치 못했던) '안국역 6번 출구의 군밤 할머니'였다.

  그리고 나올 적에 깜박했던 치약과 부족한 생수를 편의점에 들러 샀는데, 써머스비(청포도맛 맥주) 작은 캔도 보여서 충동구매했다.

노파심에 숙소 창문을 두 개 다 걸어 잠가놓으니 더워서 술을 마실 엄두가 쉬이 나지 않는다. 뭐, 사고 나는 것보다 더위를 견디는 것이 낫다 생각하는 미련곰탱이+걱정생산쟁이.


  휴, 여튼 오늘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되어간다.

외지에서는 일박 정도가 충분한 듯.(호텔에서는 다를 수도 있겠으나.. 이제 게하도 조금 힘들어진 걸까..)

어서 내일이 오늘이 되어 안전하게 집에 잘 돌아가길. 뭐니 뭐니 해도 집이 최고다.


  참, 경복궁은 보지 못했지만..

조계사의 멋진 장관도 가는 길에 들러 볼 수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한쪽 귀는 열어놓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