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병원에 갈 걱정에 평소보다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구독하고 있는 작가님 한분처럼 눈을 거의 혹사시키면서, 이것저것 SNS나 유튜브를 보다가 그냥 불을 다끄고 누웠는데 평소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들었을 시간에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오래전 만난 연인과의 추억부터, 'SNS를 줄이는 모임'을 만들어 볼까, '라디오와 다큐'에 관한 모임을 만들어 볼까 하다가.... 뜬금없이 떠오르는 생각, 광주의 아파트 건축 붕괴사고 까지. 무질서하게 오가는 잡생각에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 핸드폰으로 공영방송 라디오를 켰다. 엄마는 종종 자기 전이나 새벽에 라디오를 틀어놓으신다. 아마 오전 3-5시 말고는 거의 방송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요새는 라디오를 핸드폰으로도 들을 수 있으니 여간 편리한 것이 아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집중하니 잡생각이 사라졌다. 노래에 맞춰 발을 까딱까딱거리다가, 요새 라디오 방송의 40퍼센트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중간광고방송에 또 어수선해지다가, BJ의 나긋나긋한 말소리에 또 괜찮아졌다가..
노래의 볼륨과 BJ의 볼륨이 차이가 있어서, 낮춰놓으면 BJ의 말소리를 분간하기 힘들었고, 높여놓으면 노랫소리가 너무 크니.. (쓸데없이 예민한 탓) 성가셨다.
자동꺼짐기능을 자정까지 설정해두었으니..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는 중, '좋아하는 냄새'에 관한 문자 사연을 받는다던 BJ의 말까지 듣고 나서 잠이 든 것 같다.
기차표 1장의 가격이, 거의 비행기표 두 장의 가격이라서, 미리 비행기를 예매해두었다.(부산(김해)<->김포)
'바람 쐬러 간다', '여행 간다' 생각하려 하지만, 사실은 '암이 남아있는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검사와 외래를 보는 일이 목적이므로..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다.
여태껏 외래나 수술 일정에 먼길을 같이 동반했던 남친도 이제는 직장이 바빠 여유시간을 내지 못해, 혼자 가니 더 쓸쓸하고 오직 걱정만이 함께 한다.
어젯밤 들었던 잡생각 중에는, '몸이 아픈 것만 같이 불효하는 일도 없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가 그동안 마음 졸이셨던 것을 생각하면, 너무 죄송해서 잠시 눈물이 차올랐지만 이내 또 다른 생각으로 황급히 이동했다.
잘하면 당일치기도 충분히 가능한 일정이겠지만, 워낙 바쁜 교수님이고 겨우겨우 스케줄을 잡은 것이 오늘 초음파를 보고, 내일 외래진료를 보는 일정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외박을 해야 하는데, 이점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드는 것 같다.
비록 가끔씩 온갖 걱정에 쉽사리 잠들지 못하더라도, '우리 집- 나의 방'에서는, 마음 놓고 편하게 뒤척이면서 당장 너무 불안하면 다른 방의 가족의 얼굴을 볼 수도 있지만..
타지에서 홀로 자면.. 조금 예민한 나는 마냥 편하게 쉬지만 못한다.
만약 예상치 못한 소음이라도 있다면.. 이어폰을 꽂은 채 잠을 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 조금 무심하게 예민함을 가라앉히고 대할 필요는 있겠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특히 짜증 나는 일에 대해서는.
숙소는 병원에서 지하철로 약 40분떨어진 인사동에 잡았다. 예전 코로나가 한창 물이 올랐을 때, 서울 여행의 숙소로 잡았던 곳인데.. 결국 코로나가 너무 극심해져(아마 대구 31번 나올 때였나..) 일정 금액을 날리면서 가지 못했던 곳이다. 그때에 이미 숙소의 컨디션 같은 것은 다 확인을 해놓은 터라, '병원도 가기 싫은데 숙소 잡기는 더욱 귀찮아서' 이전에 조사를 해놓은 그곳으로 예약을 한 것이다.
일산 병원이 있는 마두역까지 3호선을 타고 쭉 갈 수 있으니 나름 괜찮은 편이다.
물론 일산에서 숙박을 하는 것이 제일 낫긴 하나, 수술 날 이전에 여러 곳 돌아다니다 보니..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따지자면, '경기도'가 아닌 '서울' 바람을 콧구멍에 쐬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별로 달갑지만은 않은 일로 방문하는 일정이다 보니, 근처에 사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따로 하지는 않았다.(만약 결과가 좋지 않다면 혼자 있는 것이 백배 나을 것이다)
지금은 오전 7시, 비행기는 11시 비행기이고, 보통 국내선이라도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자는 주의인 나는, 감사하게도 아버지의 차를 타고 오전 8시 30분, 인간극장이 끝나는 시간쯤에 집을 나설 예정이다.
아마 일찍이부터 수화물 검사 등을 마치고 탑승구 앞에서 대기하면서 핸드폰을 한참 만지작거릴 예정이다.(이런 습관이 있다 보니 비행기를 놓치는 경우는 웬만해선 없다. 단점은, 거의 기차 타는 것만큼의 시간을 교통편을 이용하는데 소모한다는 것...(비행기 운행 50분, 기차 운행 3시간 정도이니..))
벌써 비행기 안에서 볼 영화(유브 갓 메일-톰 행크스 주연)도 오프라인 이용이 가능하게 준비해두었고, 짐은 고작 일박이일 일정에 한가득이다.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지만,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혹시 괜찮아서 이제 외래를 6개월~1년 주기로 갈 수 있다면, 그 일정을 고려해서 다음 직장을 구하는데 참조해야겠다.(이전에 섣부르게 직장을 구하지는 말자.)
이어서 공항에 도착해서-
오전 9시 반이 채되기도 전에 벌써 수속까지 다 마치고 오직 탑승할 일만이 남았다. 시간이 넉넉해서 오는 길 아버지 주유도 해드리고 출발장 입구에서 바이오 인증 등록도 했다. 아직 1시간이 넘게 남은, 11시 10분 출발 비행기이다.
공항에서도 시간이 꽤 남았으니, 탑승구 쪽의 좌석에 자리를 잡지 않고 뒤편의 카페에서 콘센트가 있는 1인석에 자리를 잡았다.
공항이나 기차역 같은 곳에서 마음에 여유를 가지기는 쉽진 않다. 그나마 공항내의 카페 같은 조금 분리된 공간에서는 괜찮지만, 조금만 머뭇거려도 사람들과 부딪칠만한 곳이 대부분이다. 정신없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쉽게 짜증이 날 때도 있다. 같은 공간 안이지만, 이곳은 정신없는 곳 저곳은 여유가 좀 있는 곳이니.. 공간의 특성에 맞춰서 행동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사람에 치이고 짜증 낼 일이 적어진다.
2시간 반~3시간을 내리 타야 하는 기차보단, 이런저런 과정이 번거로운 비행기가, 질펀하게 퍼져있는 게 종종 답답하게 느껴지는 나에겐 더 맞을 때도 있지만, '모든 것이 다 귀찮고 피곤할 때'에는 현시세로 1.5~2배의 값을 치르더라도 기차 안에서 곯아떨어지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대개 이용구간이 서울/행신역 <->부산/구포역, 즉 시작과 끝이 종점에 가까운 위치니 세상사 다 잊고 자불더라도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운행 중 사고에 대해서도 비행기보다는 기차가 더 안심이 된다.
그러나 어쩌랴.. 통장 잔고는 넉넉지 않고 비행기가 기차보다 더 저렴한 것을..
오늘은 수요일, 평일이지만 공항이 이전 코로나가 한창 일 때보다 붐빈다. 그때에도 나는 외래와 수술 때문에 비행기를 이용했었다. 갑작스러운 여행수요의 증가에 업무량 과다로, 인천공항에서 난 안타까운 사고도 오늘 아침 뉴스에서 보고 와서, 기분이 마냥 들뜨지만은 않다.
그때 병원을 간다고 공항에 온 날, 불과 몇 초 전에 우리에게 수속 데스크를 안내하던 직원이 우리가 지나가고 쿵-쓰러졌다. 다행히 다른 직원들이 바로 들쳐 엎고 구급차로 가는듯했다. 그녀도 아마 과로로 쓰러진 것은 아니었을까..
고용주 입장에서 사람 한 명으로 너무 뽕을 뽑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적당히 쉬어가면서 일할 수 있는 근무환경을 (추후에 개업을 한다면) 만들고 싶다.
아마 요새 풀타임 근무자가 줄어들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나도 돈을 많이 벌 때는 그에 따른 스트레스에 더 씀씀이가 커졌다. 적게 일해도 그만큼 자기 시간과 회복에 집중하는 게 나은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사장들은 사람을 부릴 때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노동력을 얻으려 해서 문제다.
때에 따라서 융통성도 필요하다 생각한다.
이렇게 쓰다 보니 어느덧 오전 10시다. 10시 55분에 탑승이니, 시간이 금방 갈 거 같다.
글을 분할해서 올리려다가, 그냥 구독자분들의 글목록에 자리만 차지할까 봐 한번에 길게 올려버리려고 한다.
병원 일정이지만, 이것도 여행이라 치면 보통 여행 중에는 거의 생각지 못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당장 오늘 점심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도 미정이다.
예상치 못한 아는 얼굴을 마주칠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같은 입원실을 썼던, 옆 베드 환자분이라든지..
사실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공항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많아진다.
한편으로는 코로나 감염을 걱정하면서도 기내에 음료 반입이 안될까 봐 커피를 수시로 홀짝이고 있다.
홈페이지 상에서는 기내 취식은 불가하지만, 테이크아웃 음료에 대한 기내 반입 규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체온이 혹시 오르면 탑승에 방해가 될까 봐 별 이상이 없지만 이부프로펜을 한 알 먹었다.
체온에 얽힌 우스운 경험이 하나 있다.
작년 7월에 직장을 다니며 겨우 여름휴가기간에 예약을 잡아 수술 전 외래를 볼 수 있었는데, 혹시 체온이 걸려서 먼길 왔는데 의사 선생님 얼굴도 못 보고 돌아갈까 염려스러워 동행한 남친과 편의점에서 산 시원한 음료를 병원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얼굴과 귀에 계속 갖다 댔다. 그런 우리의 노력이 무색하게..
그냥 열화상 카메라와 연결된 티브이만 달랑 놓여있었다.
그래도 이전에, 결국 음성으로 판별 난 아버지의 응급실 진료가 미열에 한참 지체된 경험도 있었던 탓이었다.
어쨌거나 오늘 오후 4-5시경에 예약한 숙소에 들어서고 나서야 분주했던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가 될듯하다.
일단 체크인해서 짐부터 놓고, 하루 묵어갈 공간에 대한 어색함을 조금 희석시켜 놓고 나서 근처 인사동의 거리를 둘러볼 생각이다.
물론 그전에 김포공항서 또 일산까지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점심식사를 혼자 해결하고,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놓여있다.
이제 10시 15분, 갑자기 왼쪽 자리에 요란하게 움직이는 여자 한 명이 앉아 성가셔졌다.. 마치 좁은 그 공간을 자신에게 최적화시키려는 듯 가만히 있지 못하고 요리조리 움직이는 모양새가.. 안경을 벗었다 썼다, 아이스음료의 얼음을 미친 듯이 휘젓고.. 혹시 문제 있는 사람인지 잠시 고민하게 만들지만.. 뭐, 곧 우린 서로의 갈 길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