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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May 01. 2022

나름 뜻깊었던 하루

별나보이더라도 내가 편한 대로 살 수 있을 때는 그리하기

  오래간만에 사람들이랑 모여 술도 마시고 노래방에도 갔다.

근 2년 만인가.. 아니 더 되었을지도 모른다.

특별한 친목도모의 자리가 아닌 이상, 낯선 이들과 노래방에 간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일 년에 한두 번 가족이나 남친과 갔던 게 다였다. 한 10년 전쯤 대학 MT서 동기들과 한번 가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나이는, 94년생 이상, 그러니 20대라 해도 29살이 제일 어렸고, 나머지는 서른인 나, 서른셋, 넷, 일곱 골고루 있었으니 거의 30대 모임이었다 하겠다.

그러니 20대 시절과는 다른 특징이 있었는데, 다들 체력이 이전보다는 못해서 밤 10시 반경 모임이 끝이 난 것.

이십 대 젊은 날이라면 노래방 시간을 계속 연장해서 밤새 지새웠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딱 두 시간. 누가 '시간 추가할까' 물으니 대부분의 눈이 도끼눈이 되어서, '그러다 죽는다'했더랬다.

  비록, 안면 있는 사람보다 처음 보는 사람이 많았고 첫 만남에 나를 다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나름 실컷 놀았지만) 그렇게 가까워진 이들도 없다.

운영진 여자분처럼, 화끈하게 춤도 추고 한다면 더 타인과 가까워질 기회가 많으리라..

그렇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고리타분한 안경을 끼고 그런 자리에 나가니.. 어떤 면에서는 말 다했다. 

숫기도 예나 지금이나 부족하다. 노래방 의자에 끝까지 앉아 있던 2인 중 한 명이 바로 나다.. (나머지 한 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대개, 단순히 즐기려고 온 이런 모임 속에서도 솔로들의 개개인 마음에는 어떻게,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는지 고민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여자 셋, 남자 일곱.(엄마나 나나, 나는 여자가 아닌 남자로 봐야 한다고 해서 이것을 반영한다면 사실상 여자는 둘 뿐인 셈이었다.)

나는, 여자지만 외적으로도 타 여성들에 비해 꾸밈의 수준이 부족하고, 뚱뚱한 편이라.. 나 스스로는 정작, 나를 여자가 아닌 남자로 생각하며 다소 무심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만약 (혹시 있을지도 모를) 남자들의 뒷담화 속 여자의 외모에 대한 순위 매김에 대하여(이는 학창 시절 동기 오빠들이 즐겨하던 것이다- 어떻게 여자 동기 모두도 추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꼴등이라도 그런 것은 나에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는 연애 중이니..


  그리고 난데없는 여성모임원의 등장이 그리 달갑지 않아 보이는, 서로는 구면인듯한 운영진 여성 두 분과 적당한 거리를 두며, 어쩌면 이성간보다 더 피곤한 (말 많고 탈 많고 뒤끝 많은) 여자끼리 억지스러운 관계 형성에도 그리 열심히 임하진 않았다. 우연하게 앉은자리가 그녀들과는 꽤 거리가 있어서 내심 편했다. 사실 여자의 적은 대개 여자일 때가 많다. 이후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에도 두 여자가 단짝처럼 꼭 붙어다니든 말든, 나는 혼자가 제일 편했다. 억지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끼던 지난 시절은 이제는 없다.


  게다가 사람들을 만나고 조금 있다 보면 누가 누구에게 호감이 있는 것인지 참여자이면서 제3자의 입장에 서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자발적 아웃사이더이다 보니) 어떤 때는 그런 상황이 재밌기도 하다. 굳이 소외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억지로 대화에 끼려 하는 경우는 드물고,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닌 이상 보통 말하기보다 듣기만 한다.


  '홀로 있음'이 불편하지 않게 된 것은, 불과 몇 개월 사이 겪은 갑상선암, 자궁수술 덕분도 있다. 이동 베드에 누워서 병실에서 수술실까지, 이어서 수술대 위에서, 수술 후 고통을 삭혔던 당일 밤 병실에서도 철저히 나 혼자였기 때문에(그나마 두 번째 수술 병원은 집에서 가까워서 어무니가 같이 계셨다), 그때에는 고독이 두려웠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에는 오히려 낯설지 않아 졌달까.. 고독이 찾아오면 억지로 떼내려 하지 않는다. 그 순간에 오롯이 집중한다. 그러면 사람들 사이에서 억지 미소를 지을 때보다 한결 편하다.


  고교시절 상처가 되었던, (지금 생각해보면 생각이 짧았던) 어떤 과목 선생님이 수업시간 중 서로 친해지기 위한답시고.. 첫인상 같은걸 적어내고 하물며 나랑은 잘 안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조별로 적어내는.. 기행은 저질렀는데.. 그 취지야 어떻든 간에 원래부터 친하던 3인 사이에 끼여서 그 쪽지는 나에 대해, 그리고 나의 단점에 대해 다 화살을 겨누고 있었고.. 그날에 여자화장실 끝 칸에서 변기물을 내리면서 눈물을 훔쳤던, 오래 전의 잊고 싶은 기억이 남게 되었다.(그런 (내입장에서는) 만행을 저지른 선생님이 누군지도 기억 안 날 만큼 오래 전의 일이다. 단지 그 쓰라린 마음만이 기억에 남았다.)


  여튼 그런 상처도 나름 장점이 있다면, '내가 타인에게 그리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성격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대강 파악하고 있으므로, 이전보다 훨씬, 부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나가는 애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약간 지금보다 어리숙할 때는,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은 타인의 사는 곳이나 가족관계까지 물어보면서 안절부절 대화를 이어나가려 하기도 했다. 

이제 그보다는 대화는 필요한 경우에만 적당히 하며 좀 더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하는 편이다.

  대개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을 좋아하니, 다소 낯선 이들의 만남에서는 잠자코, (보통 모서리 끝자리에 앉아) 멀리서 들려오는 각종 얘기들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다. 이렇게 끝 좌석에 앉으면 성격과 더불어 더 소외될 가능성이 높아지긴 하나, 약간 방관되어 있을 때가 솔직히 편하다. 사실은, 오롯이 경청할 때보다 자잘한 공상들을 머릿속에서 혼자 펼치고 있을 때가 많기에.. 마치 스마트폰/노트북을 충전(=공상)하는 중에 작업을 어어나가는 것(=대화를 듣는 것)과 같달까..

  그렇게 1차 회식이 끝나고, 2차는 (아마 엄마&엄마친구분따라 가고 처음 가본) 노래주점에서 진행되었다.



  모임에 온 것은, 요즘 들어서 노래방에서 타인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기에, 노래를 예약할 때 타인의 눈치는 조금만 보고 2시간 동안 4곡 정도를 불렀으니 나로서는 충분했고, (노래를 하고 타인의 노래도 따라 부르고 듣고 하는) 그런 (바랐던) 시간들이 주어진 것이 참 감사했다. 

  내가 시시한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흡연자들이 타이밍을 잡아서 우르르 나간 것이 내심 민망스럽고 속상하기도 했으나.. 애써 인자하게 굴자면,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노래할 적에 그렇게 해서 다행이다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솔직히 속으로는 삐쳤다고 할 수 있겠다. 친한 사람들이 아니기에 '삐쳤다'라기보다는.. 음... 오히려 그 순간에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에 대한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호감이 한층 더 커졌달까.. (쓸데없이 예민해서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몇몇 사람들에 대해 벽을 만든다...)


  '사랑two- 윤도현', '시작- 가호', '그건아마우리의잘못은아닐거야- 백예린', '캔디- HOT'

 가 내가 부른 노래들이다. 필자는 노래를 그리 잘하진 못하지만, 누구에게 잘 보이려 하는 노래도 아니고 어색한 시선을 모니터에 두고 최선을 다해 열창해볼 뿐이었다. 사실, '빅뱅의 마지막인사'도 부르고 싶었지만, 중간에 타인이 부른 '뱅뱅뱅' 같은 신나는 빅뱅 노래에서 다 같이 나와서 춤을 추고.. 한바탕 소동이 있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무거운 엉덩이를 들지 않았던 내가 쉽사리 '마지막 인사'를 예약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엉덩이를 붙이고 내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던 것은, (본디 필자가 재미없는 사람이라서라는 이유가 제일 크고) 혹여 춤을 추러 나가더라도 온전한 나의 공간이 없을 가능성이 크고 어색한 이들에게 부딪힐 수도 있었기에.. 그저 앉아서 손뼉만 죽어라 쳤다. 그러니 다음날 아침 안 아프던 어깨와 손가락이 여기저기 아프다..

  내가 일어나서/앞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 경우는 단지 '가족과 함께' 할 때뿐이니.. 타인들이 보기엔, '영~ 흥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웬만큼 편하지 않지 않고서는 나(아마 체면 같은 것)를 내려놓거나, 무대에 서지 못한다.


  (곧 30대인 사람들을 포함해서) 30대 초, 중, 후반을 저마다 지나고 있는 우리들에게 곧 있을지도 모르는 '결혼과 가정을 이루는 일', 이후에는 더욱더 이렇게 놀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것이다. (육아와 출산을 하는 언니들이 한층 얼굴 보기 힘들어진 것만 봐도..)

  '노래방에서- 장범준', 그 외 제목은 기억 안 나지만 가사는 들어본, 타인이 부르는 여러 아는 노래들도 같이 부르면서..

1차 때 자리와 같이 가장 끝자리에 앉아, 혼자 동떨어진 기분도 들었지만 굳이 어색하게 남에게 과한 시선이나 관심을 주기보다, 열심히 박수라도 치면서 그 시간을 스스로 온전히 즐기는 시간으로 만들었다.(타인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멀찌감치 두는 게 나 혼자 애써 지키려던 예의였다.)


  뭐, 그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느냐는 둘째 치고, 모임 참석 이전에 마음먹은 대로 이것저것 사소한 것들을 챙기고 친절함을 조금 짜내었다. 지나고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즐거웠다는 것. 이게 제일 중요한 게 아닐까.


  그러고 나서 집이 먼 편이라 제일 일찍, 어설픈 인사를 마치고 홀로 나왔다.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한편에서는 코로나가 걱정되어 여기저기 알콜을 뿌리고.. 집에 오자마자 정신없이 씻긴 했지만..

  참, 고작 5~10분 차이로 일찍 나서게 된 우스꽝스러운 모양이 되어버렸기는 했지만, 혼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그들 중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보다 한결 가벼웠다. 또다시, 나만의 온전한 '휴식과 공상의 시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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