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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May 01. 2022

아침부터 산이 고프다

아침식사도 안 하고 뛰어오다

  어제 무리하게 술을 고작 몇 모금 마셨다고.. 거기에 늦은 귀가에 이은 자정을 넘긴 늦은 취침.. 오랜만에 노래방에서 손뼉만 열심히 쳤더니 아침부터 몸이 개운치 않고 어깻죽지부터 손가락 여기저기 아팠다.(결국 산행 후에 약을 먹고 파스를 부쳤다..)

  원래 이틀에 한번, 오전 10시 이후에 등산을 하는데 오늘은  오전 7시(약 먹는 시간)에 습관적으로 눈이 뜨였고, 방창문으로 내리쬐는 따스한 햇살과 닫힌 창문 사이로 미세하게 새어 나오는 신선한 공기에, 핸드폰을 쥐고 누워있기보다 재빨리 산에 갈 채비를 서둘렀다.


  세탁기를 돌리려고 나가보니, 부지런한 엄마가 벌써 돌려놓으셨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엄마한테 말한다.

'엄마, (집안일 못 돕고 가서) 미안한데..  산에 좀 갔다 와야겠다.'

'갔다온나. 운동한다는데 누가 뭐라니.'

엄마는, '꿀꿀이 내'가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하는 것엔 언제나 환영이시다.


  어제 노래방에서 내가 불렀던 '가호의 시작'을 들으면서, 부지런히 산을 올랐다. 여태껏 노래를 부르면서 산을 오른 적은 잘 없는데, 오늘은 사람이 안 보이면 마스크 안으로 흥얼거리면서 올랐다. 숨은 차지만 마음이 한결 더 즐겁다.

  중고등학교 시절인가.. 노래 가사를 인쇄해서 가족이 아무도 없을 때에 실컷 불렀던 적이 있다.

노래를 하는 게 부끄러워 텅 빈 집에서 나 홀로 불렀던 것.

이번에도 혹시 눈치채지 못한 등산객등장할까 봐 맘 놓고 크게 부르진 못한다.


  엄마가 자주 하시는 말 중에, 특히 지방이 두터워진 자신이나 나의 몸을 보고 '독소가 가득 찼다'라는 것이 어제 술자리 이후에 확 와닿았다. 난데없이 (아마도 림프절이 있을) 오른쪽 사타구니가 쑤시고.. 컨디션이 안 좋았으니..

재빨리 산에 가서 신선한 공기를 들이켜서 '독소 해독의 시간'을 가져야 했던 것.

  어느덧 목표지점에 올라, 햇살이 잔뜩 내리쬐는 벤치에 앉아 이어폰도 다 빼고 안경과 모자도 벗고, 안과에서 해주는 적외선 찜질의 업그레이드 버전의 따스한 눈 찜질도 하고, 땀에 젖은 옷도 말렸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이 고요한 가운데 들린다. 행복하다.

두꺼운 등산화에서 발을 잠시 내어,

혹시 사람이 올지 모르니 한 발씩 양말을 벗고 주무르고 햇볕을 쪼인다. 발은 제2의 심장이라고 한다. 발 지압점만 쳐봐도 군데군데 연결된 부위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온다. 또한 아마, 몸 중에서 가장 무심하게 다루는 부위일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부터 힘들게 산을 올랐으니, 새삼 발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뜬금없이 또  MBTI얘기지만, 나의 MBTI는 자연과 어울리면 좋다더라.(이것에 관계없이 누군들 안 그러겠냐만..)

미래 거주지가 자연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면 좋겠다.

세상살이 각박하고 힘들어도, 집에 오면 자연 속에서 푹 한시름 놓고 힘든 일 잠시 접어두고 쉬고 싶다.


  하산할 즈음, 슬 배가 고프다.

아침공복운동이 살을 빼는데 효과적이라긴 하지만, 아침상 차리는 것 돕고 빨래도 널고 설거지도 하고 산에 오르는 것이 마음이 한결 편하다.

요즘은 아침 식후 엄마랑 치즈와 요거트도 챙겨 먹는데, 둘 다 갑상선이 안 좋아서(사실 나는 없고..) 브라질너츠와, (아부지가 티브이 방송 보고 구매하신) MBP가루도 요거트에 넣어 먹는데, 내가 안 챙겨주면 엄마는 귀찮아서 빼먹는 일이 많으시니.. 같이 아침을 먹고 챙겨 드리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


  삶에 지칠 때, 뭔가 허할 때 산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단, 나 홀로 산행이 무서운 여자분이라면 사람이 좀 다니는 공원이나 둘레길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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