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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May 02. 2022

서로 안쓰러워하는 엄마와 딸

갑상선, 수술, 생김새, 등밀이, 화장실 청소..

  엄마는 몇 해 전 갑상선 저하증 진단을 받으셨다. 그동안 가장 애를 먹인 사람은 나였기에.. 너무 죄송했다. 나는 학창 시절 동안 타인에게 휘둘리며 나 자신을 지키지 못했고.. 항상 괜찮은 척 문제없는 척하다 결국 탈이 났던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도 보통 애가 쓰이셨던 게 아닐 것이다..

그런 어머니의 지극한 보살핌에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고.. 나름 열심히 일해본답시고 재작년엔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 7일을 내리 일하고 스트레스를 푼다고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어 불은 몸을 한층 더 키웠다.

결국 작년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지금까지 거의 반년 가까이 쉬고 있다.

  갑상선 항진증이라는 것이 먼저 발견이 되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갑자기 옛날보다 더위를 많이 타서 넥밴드형 선풍기를 차고 일했었다. 차가운 음료도 하루 두세 잔은 기본이었다. 돈은 버는 만큼 많이 썼다.

  이제는 서랍장 구석에 박혀있는 목에 거는 선풍기들을 정리하며 엄마가 말씀하신다. '이런 거 걸고 일할 때 갑상선에 탈 난지도 모르고.. 어휴..'

괜히 무안한 맘에, '옛날 얘기 금지!'하고 소리쳤다.


  외가 식구 중 이모와 외사촌 언니들, 그리고 엄마까지 출산을 마치고 탈 많던 자궁을 들어냈다..

생리기간이면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혹여 피가 묻을까 봐 평상시에도 검은 치마만 입고 다녔다는 외사촌 언니의 말이, 남 얘기 같지 않았다. 나도 올해 초 근종 제거 수술을 받기 전까지 어마어마한 출혈량에 삶이 피폐해졌었기 때문이다.

출산까지 끝내고 자궁과 이별한 언니는, 속이 시원할 정도라 했다.

  엄마는, '안 좋은 거는 다 닮아가지고...' 하시며 본인 탓을 하셨지만.. 그동안 음식을 가려먹지 않고 운동도 안 하며 건강관리에 열심이지 않았던 나의 잘못이다.


  항상 강인하게 부지런히 가족들을 챙기며 살아오신 엄마지만, 최근에 백수로 지내며 엄마와 목욕탕에 자주 다니면서 엄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볼 시간이 생겼다.

생각보다 '철의 여인'인 줄만 알았던 엄마의 얼굴은, 순하고 여려 보였다. 엄마한테 내 느낌을 말하니, '니도 똑같다.'라고 하신다.. 허허.

엄마의 등은 요즘엔 내가 밀어드리는데, 항상 '네 등도 밀어줄게.'라고 하시는 엄마.

나는 항상, '아~~~~ 밀지 마라. 내 알아서 민다.'하고 때수건을 빼앗아들거나 도망쳐버린다.

엄마가 그마저도 힘들어하실 때가 많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때를 미는 것이 피부에 그다지 좋지 않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엄마를 힘들게 하면서 밀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어제 엄마는, '화장실 청소 좀 해야겠다.'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안방은 내가 할게.'라고 했다. 사실 이전에 제대로 해본 적은 없지만..

오늘 아침 엄마가 화장실 청소를 시작하시자, 보고 있던 컴퓨터 영상을 잠시 정지시켜놓고 안방 화장실로 들어가서 엄마가 이미 뿌려놓은 락스 물에 여기저기 솔, 수세미, 해진 청소용 칫솔로 문질렀다. 꼼꼼하게는 아니고, '엄청 대충'...

그래도 각종 세면도구가 들어있던 바구니 안과 밖의 물때도 고 하수구 쪽도 씻어내고, 칫솔 통도 씻었다.

문을 열어놓고 했지만, 락스 때문인지 눈이 따가웠다.

30분여의 청소를 대강 끝내고 일회용 인공눈물을 뜯어 넣었다.

  엄마는 몇 년 동안 청소일도 하시면서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셨는데, 아마 그때 쓴 락스 때문에 눈이 상하신 게 아닐지라는 뒤늦은 걱정이 스쳐간다.

예전에 엄마가 선풍기를 정리하면서 내가 아프게 된 일을 걱정했듯이, 나도 엄마를 따라서 '에휴.. 우리 엄마 락스때매 눈 다 상한 거 아니가.'라고.. 말한다.

엄마한테 인공눈물 넣어라 하니, 이미 넣으셨단다.

'그때 일할 때는 인공눈물도 안 넣었었제?(사실 '안'이라기보다는, '못' 넣으신 거였겠지만..)

'어..'(엄마의 대답)

'에효..'(나의 한숨)


  그래도 내가 엄마를 걱정하는 것은, 나를 걱정하는 엄마 마음에 비하면 비교 안될 정도로 작을 것이다.


  모녀는 가끔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서로의 사소한 부분도 과하게 마구 걱정하기도 하고.. 서로 짜증도 내지만..

떨어져 있으면 그립다.(아마도 나만? 하하)

고작 등산/가벼운 외출 또는 집안에서 샤워하고 나오는데, '내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아라.' 하니

엄마가 나에게 지어준 별명, '헛소리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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