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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May 09. 2022

엄마랑 다투기~화해(?)

목욕탕, 바람막이&양말

  그런 때가 있다. 정작 내 마음에 짜증 또는 화의 불씨를 지핀 것은 다른 이인데 그 화가 더 크게 드러나고 불 지펴지는 것은 이후의 다른 이들의 별거 아닌 행동이나 말에 의해서일 때. 대개 전자는, 나와는 좀 덜 친하거나 공적인 관계에 있는 조금 불편한 이들이고 후자는 가까운 가족이나 연인일 경우가 많다.


  이번의 엄마와의 다툼도, 원인은 제일 먼저 속이 좁은 나 자신일 테고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친할머니였다. 

오랜만에 뵌 친할머니는, 나 혼자 있는 틈을 타서 가까이 접근해와서 '언제부터 돈을 벌거냐. 이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는 네가 다니던 자리는 비어있냐.'라는.. 대수롭잖게 넘기면 아무렇지도 않을 이야기인데, 사람들의 별별말에 다 민감한 편인 내게는, 그다지 대답하고 싶지 않은 말들을 하셨고.. 하물며 각종 질병들을 얻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전직장에 돌아갈 마음이 하나도 없었기에 (비록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할머니셨지만) 그런 얘기가 듣기 참 거북했다.

'몰라요. 그런 거 없어요.'하고 공손하지도 예의 바르지도 않게 내 멋대로 대답해버리고 잠이 들어버렸다.

그래도 그런 일들에 대해 부모님에게까지(특히 엄마에게까지) 내가 느낀 감정들에 세세하게 털어놓진 않아야겠다, 하면서 할머니의 그런 이야기도 지나고 보면 관심의 표현일 수도 있겠지 하며 나름 어른스러운 척을 해보려 했었다.

  이후 이어진 가족 모임에서도, 아빠가 은근히 '돈 언제 벌러 갈 거냐'란 식의 말을 했고, 몇 시간 전에 같은 말을 할머니한테서 들은 것을 알고 있는 엄마는, 나를 보호해준답시고 '애가 낫고 있는데, 놀고 있는 거냐.'라고 으름장을 놓으셨지만.. 아버지의 그 말도 그냥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이것도 속 좁은 내 탓일 수도 있지만..

시시때때로 구인 사이트에 들락날락거리면서 다시 일해야 할 그날을 위해 준비를 하면서 남모를 스트레스도 있어왔기에.. 그런 가벼운 말 한마디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극이 되었나 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다이어트를 새로 시작한답시고 계란을 삶으려는 내게 엄마가, '먹을 생각밖에 없지, 계란도 없는데 뭘 삶는다고.'한 말이.. 별거 아닌 말이었지만 내게는, '계란도 없는데 돈도 안 벌면서 뭘 그리 먹냐'라는 식으로 들렸고.. 1번은 할머니, 2번은 아빠에서 지펴진 짜증과 화의 싹이 엄마의 그 사소한 한마디에 불이 붙어버렸다. 나는, '돈 안 번다고 난리.'라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엄마랑 같이 목욕을 가려했건만 그냥 집 밖을 먼저 뛰쳐나가버렸다.


  차가 대어져 있는 주차장까지 걸어가면서.. '엄마도 저렇게 말하는 것은 좀 아니지.' 하면서 엄청 서운했었다.. 어디든 가고 싶었다. 기름값이 들긴 해도.. 오늘은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달까..

그런데 하필 떠오르는 곳들이 통도사나 인근의 목욕탕 같은.. 엄마랑 주로 다니던 곳이 아닌가..

거기에 가더라도 둘이 있다 홀로 있으면 엄마가 더 그리워질 뿐일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남친의 퇴근시간까지 부산에 나가서 정처 없이 떠돌기도 싫었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브런치에 별거 아닌 일들을 주절주절 써 내려가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 논리적이 되었는지.. 무분별한 사고에 조금의 질서나 체계 같은 게 잡혔는지 몰라도..

내가 낸 '화'가 엄마 때문이 아님을 은연중에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 중에 제일 성격이 순한.. (소싯적엔 한 고집하셨다는데.. 나머지 식구들이 워낙 별나니 엄마만 양보하고 스스로 둥근돌이 되신 것이다) 또는, 제일 편하고 만만한.. 엄마는 아빠든 동생이든 내가 화가 나면 항상 그 화살을 오롯이 견뎌내야 했었다. 이런 사실들도 그나마 이제 서른 살에 겨우 깨닫게 된 것들이다.

즉, 엄마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이번에 내가 감정이 솟구친 것도 첫 번째로는 나의 탓이고 두 번째로는 할머니나 아버지의 화살이었지.. 엄마는 그저 사소하게 아주 조금 짜증 섞인 한마디를 하셨을 뿐이다.


  이런 생각 끝에 나는, 아파트 주차장으로 차를 끌고 올라왔다. 어디를 가든, 엄마를 외롭게 하거나 엄마를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진 않았다. 전화를 두 번 하니 두 번 다 안 받으셨을 정도로 삐치신 것 같았지만..

세 번째에는 받으셔서, '왜 니 혼자 (목욕) 가라!' 하는 말에 나는, '빨리 내려온나!'하고 대답했고 전화는 툭 끊겼고.. 이내 엄마가 얼굴을 찌푸리신 채로 내려오셨다.

그 길로 티격태격하면서 모녀는 늘 가던 목욕탕으로 향했고.. 분쟁의 원인이 된, '삶은 계란'을 가지고 몇 번의 분풀이 격 농을 주고받았다.

3시간 여의 목욕 끝에 그 계란들은, 이후 통도사로 향한 모녀의 간식으로 유용하게 쓰였다.

삶은 계란과 두유의 조합으로.. 둘의 배에는 가스가 잔뜩 차게 되었지만 말이다.

  참, 부제에 쓴 '바람막이와 양말'은, 사소한 다툼을 일단락 짓는데 한 역할을 한 물품들이다.

사실, 목욕탕 갈 일정만 알고 내려왔던 엄마는 맨발에 운동화 차림이었고 평소 늘 입고 다니시던 바람막이도 두고 오신 상태여서, 통도사의 '무풍한송로'를 걸으려니 여간 쌀쌀하고 불편한 게 아니셨나 보다.

그래서 나는, 조금 춥긴 했지만 나의 바람막이를 벗어드리고 ('이런 친절함 제일 싫다!'라고 엄포를 놓으시는 엄마의 만류에도) 양말을 벗어서 엄마에게 드렸다.

'나는 이런 친절함 제일 좋다~~~~'하고 너스레를 떨면서..

엄마는 평소에 새까만 양말을 잘 안 신으셔서, 헐렁한 바지 아래에 까만 양말이 드러난 엄마의 발목이 뭔가 낯설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고서는 '아지매~ 까만 양말 잘 신고있네예~'하고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하시는 엄마를 잔뜩 놀리기도 했다.


  엄마가 단순히 제일 편하고 만만해서.. 엄마한테 화내는 일을 삼가도록 해야겠다..

엄마랑 인생은 한 번뿐일 테니까.. 잘해드리지는 못할 망정.. 상처가 되는 말은 하지 않게 마음이 좀 넓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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