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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May 11. 2022

나도 꼰대일까

중고등학생이 가득 찬 버스를 타고

  눈떠보니 서른이라 하면, 엄마 아빠가 웃으실 수도 있겠다.

나는 또래 친구가 거의 없다. 그나마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도, 다 나보다 5~10살 정도 많은 동기 언니나 전 직장동료들.. 한두 명 있는 친구도 다 타지에서 저마다의 밥벌이에 바쁘다.

  그러니 백수 반년차, 슬슬 심심해서 여러 가지 모임에 들었더랬다. 그중 드문드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사진모임의 경우 20대 후반에서 30대 후반까지의 나잇대 사람들이 많다. 모임을 가입하기 전에 모임 구성원들의 나이를 파악할 수 있는 어플의 특성 덕인지 예를 들면, 97년생들이 많은 곳에는 최대가 94년생이고 최소는 2003년생 이렇게 나잇대별로 모이는 특징이 있다.

  97년생들이 많다는 모임은 몇 주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는 등산모임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가입은 못하고 있는 게, 우선 내가 제일 연장자가 될 수도 있는 불편함도 있을 거 같고 이미 벌여놓은 모임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진모임은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들이라 평균적인 체력도 비슷한지 얼마 전 회식에서도 오후 10시쯤 되자, 모두들 슬 방전되어버린 기색이었고 10시 반경 파장을 했었다.

반면 만약 이십 대 초중반 위주의 모임에 들어가면 밤을 지새워도 모임이 안 끝날 수 있는 점도 망설여지는 이유이다.

그쪽 입장에서는, '술자리를 즐길 줄 모르는 삼십 대 할머니는 오지 마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 이런 불편한 곳에 뛰어들어서 약간의 세대차이라도 느껴보고 그동안 쌓인 나의 꼰대 기질이나 고정관념들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고 싶다는 다소 억지스러운 생각도 드는 것이다.

  만약 그들에게 내가 할머니일지라도, 그 속에서 할머니 역할에 충실하게 지내면 되는 것 아닐까.(구시대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편한 것이 최고라는 생각 vs. 노력할 자신 없으면 맞지 않는 자리에 섣불리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굳이 가면을 쓰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더 짙긴 하다.

  더 나아가서는 7살 차이를 무릅쓰고 나를 자신들의 무리에 끼워준 동기 언니들이 느낀 여러 감정들을 (졸업 후 4년 가까이 지난 이제야) 뒤늦게나마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이 되진 않을까, 하고..

굳이 뒤늦게 그런 것들을 느낀다 해서 뭐 특별히 좋을 것도 없지만..


  한편으로는 서양에서 타인에 대한 나이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모습이, 좀 자유롭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1, 2살 차이나도 형님, 언니 하고.. 나이에 따른 서열이 잡혀버린다.

고작 몇 살 더 먹었다고 대접받길 바라는 태도도 좀 아닌 것 같다. 실제 내가 여태 만난 이들 중,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더 어른스러운 사람도 많았고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어른들은 다, 나이와 체면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들이다.

  그러니 설령 나중에라도 그 등산모임에 나가더라도 예상했던 많은 부분이 지레짐작했던 것과 다를 것이다.

어쩌면 (등산모임이니) 산의 매력에 대해 나보다도 일찍 알게 된 그들이 나보다 인생에 대한 생각이 더 깊고 진지할 수도 있을 거다.

사람을 나이로만 판단하지 말자, 하고 다시 다짐해본다.


   나는 상사로 치면, 겉으로는 표현 못하고 혼자 속을 삭이는 꼰대일 수도 있겠다.

나의 생각이나 습관에 맞지 않는 이들도 포용할 줄 알자.. 하고 미래에 상사가 될 자신을 그려본다.

  그럼에도 당장엔.. 버스에서 마주친 중고등학생들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몇 번의 '나 때는 말이야~'하고 되뇌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꼰대들을 싫어할 젊은 층으로 우뚝 설 그들이 한편에서는 무서웠달까.. 솔직한 생각으로는, 가끔 산책로에서 마주치는 유치원생들의 무리가 마냥 귀엽게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컸을 때 나는 그들에게 비난받거나 무시당할 수도 있는 중년이 되었을 테니..

 

  학생 시절, 나는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돈도 부족함 없이 철없게 마구 쓰면서 어려운 형편에도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다 지원받고.. 돈 벌기 힘든지도 몰랐었다.

  요즘으로 치면, 친구들이 아이폰을 사면 나도 아이폰을 사야 했다.

교복은 유명 브랜드 꺼여야만 했다. 물려받거나 유명하지 않은 곳에서 만든 교복은 입을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을 만큼, 절약을 모르고 한없이 자기중심적이었다.


  그리고 때 아니게 '삼류 성인군자'(?)처럼 굴려고 해서, 불필요하게 많은 간식들을 (부모님이 어렵게 버신 돈으로 사서) 나눠먹고.. 모든 친구들에게 호감을 사려고 했다. 빼빼로데이 때, 굳이 빼빼로 한 박스를 사서 반전체에 나눠줬던 일이 갑자기 기억났다. 아무래도 타지의 고등학교에서 많이 외로웠나 보다..

상대에게 뭘 주면 상대가 날 알아봐 주기 바랐는지도 모른다.


  다시 꼰대 이야기로 돌아가서..

동기 언니가 했던 말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00아, 우리가 힘들게 공부한 이유가 사장이 00 같으면 언제든 때려치우기 위해서야."

몇 년 전 언니의 말은, 평소 나긋한 언니의 성격과 말투와는 상반되면서 화끈하고 날카롭게 다가왔다.

그래.. 부모님은 종종, '공무원이나 시킬걸..'이라고 하시며 한숨 쉬시지만..(단순히 그 직업의 '안정성' 때문에.)

  만약 상사가 꼰대라면,

이것저것 체면을 중시하는 내가 그렇게 쉽게 그만두고 나올 수 있을까.

직장 내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수많은 이들 중 누군가가 되어 또다시 나 자신이 무너져 내려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유리멘탈이니..


  술을 한껏 마신 어제저녁 남동생의 말을 덧붙이면서 글을 끝내보려 한다.

"강하게 살아야지."

(엄마에게 어리광 부리는 두 살 터울 여동생 아니, 누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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