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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May 12. 2022

한 것도 없는데 힘든 하루

돈이 사람 잡는다는 말..

(글쓰기 시작한 날 2022.05.11.수.

마무리 및 올린 날 2022.05.12.목.)


  하루 종일 기분이 요동쳤다. 호르몬 영향인가.. 살기 싫을 만큼 축 처지다가 다시 괜찮아졌다가.. 이놈의 감정기복.. 좀 없이 살아보고 싶다.

  작년 말 연말정산 중도정산을 하고 퇴사하고..

뭔가 자질구레하고 복잡한 일을 이번 달 중에 처리를 해야 했다.

이것도 퇴사 이후 한참 잊고 지내다가, 문득 아침에 눈을 뜨면서 생각난 것이다.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포탈 검색의 도움을 받아 연말정산에서 누락된 부분에 대해 수정을 마치고..

이런저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회사(정확히는 회사에 딸린 세무사)에 나의 세금 문제를 다 믿고 맡기면 안 되겠다는 교훈(?)도 얻었다.(뒤늦게 확인해보니 동생이 회사 쪽에 요청했던 몇 가지의 중요 부분이 누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일단 어찌저찌 블로그의 도움을 받아서 재신청을 했지만.. 뭔가 공무원이 검토해보면 빠뜨린 부분도 있기 마련 일지라 아침 먹고 나서 커피 한잔 할 겨를도 없이 세무서로 향했다.


  그런 와중 필요한 정보를 몰라서 가족 간 몇 번의 불통인 전화 시도에 진이 빠질대로 빠진 데다가, 엄마랑 붐비는 장날 장터를 돌 때까지 남은 일처리에 핸드폰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해서.. '앞 좀 보고 다니세요!'라는 아주머니의 말에 구석진 데서 계속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평소에는 나도 폰을 보며 앞을 안 보고 다니는 사람들을 싫어하는데.. 그때 나의 모습이 딱 그것이었다.) 글로 써도 정신없지만 실제로도 정신이 없고 혼이 빠지는 상황이었다.

과장하자면, 모든 이성과 감정의 끈을 놓아버릴 만큼 힘들었다.


  솔직히 그런 상황에서는 차 안이나 조용한 곳에서 천천히 업무를 보고 나서도 되었건만.. 일련의 일이 두서없이 일어난 탓도 있다. 일은 해결해야 하는데, 엄마가 장 본 짐을 혼자 다 드시는 것못 두고 보겠는 마음이 일어서.. 이런저런 욕심 때문에 정신과 몸만 피로해지게 된 것이다.


  장보고 돌아오는 길, 추어탕을 먹으며 다시 힘내보자, 하고 엄마를 보며 다짐했다.

이 와중에 안 하던 눈 화장까지 하니 눈 피로가 가중되는 느낌이다.(뭔가 관공서에 들리는데 멍청하게 보이면 안 되겠다는 쓸데없는 걱정에 그사이에 화장을 대충 하고 갔던 것이다.. 막상 가보니 나를 상대한 공무원은 아무런 화장도 하지 않은 듯 보였다. 역시 괜한 걱정이었나 싶기도 했다. -이렇게 피곤하게 산다..)



  생각보다 많은 세금을 환급받을 수 있단 사실에 일희하다가, 그 과정에서 미처 생각지 못한 여러 가지 애로사항에 일비하고..

돈이 무엇인지, 사람을 이렇게 들었다 놨다 했다. 이래저래 돈이 얽힌 일들은 정신을 피로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그만큼의 돈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누구에게 무엇을 사주지'하면서 들뜨면서, 이전처럼 엄한 곳에 베풀지는 않으려고 했다.

  예를 들면, 지금껏 나를 보살펴주고 도와준 많은 이들을 잊어버리고 단지 내가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나 호감을 사고 싶은 사람들한테 베풀기보다는, 평소 나랑 살갑게 지내고 변덕스러운 나의 투정들도 다 받아주며 갖은 고생을 한 사람들을 챙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떠오른 분 중 J이모, W형님께 오랜만에 연락을 드리고, (아직 돈을 돌려받은 것이 아님에도) 당장 얼굴을 보자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로부터 불과 몇 시간 뒤에 일이 꼬여버렸고, 맘껏 들뜨던 마음은 어느덧 시궁창에 떨어져 버렸던 것이다.


  결국 오전에 들렀던 세무서에 오후에 다시 들러서 일을 마무리하고, 동행한 어머니와 함께 인근의 창고형 매장을 기웃거리다가 둘 다 진이 빠져버렸다.(우리 갑상선 환자들은 폐쇄된 공간에 오래 있으면 진이 빠진다.) 심지어 주차를 하는 과정에서도 몇 번 헤맸다.

  모녀는 다크서클이 잔뜩 내려온 채로, '어서 집에 가서 자자'하며 오후 5시에 서둘러 귀가를 했고

나는 씻고 난 뒤에 바닥 위에 축 늘어져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마치 방전된 배터리에 충전기를 연결하면 '0%'가 뜨면서 조금 후에는 전원을 켤 만한 전력이 생기듯이, 바닥에 몸을 붙이는 것이 꼭 핸드폰에 충전기를 연결하는 것과 같았다. 약 한 시간여 뒤에는 슬 배가 고파서 어제 동생이 남긴 '치킨'과, 단호박 등으로 평소보다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겨우 하루 이틀 다이어트한답시고 저녁 식사량을 줄이던 차였다.)


  이후, 배가 불러서 가볍게 산책이나 하고 올 겸하고 집을 나서려니, 엄마가 창밖을 보시고 '비 오네~'라고 하셔서.. 아쉽게도(?) 산책은 뒤로 하고 집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이나 조금 하다가, 통닭 전기 통구이에 캔맥주를 잔뜩 사서 귀가한 직장인 남동생 덕에.. 캔맥주 한잔을 오랜만에 했다.

술은 안 마셔야 되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먹게 되는지 모르겠다..

  (특정 나라에 대한 감정은 뒤로 하고) 10여 년 전에 진주 유등축제에서 사 먹어 본 맥주인, '아사히 캔 맥주'라서 동생이 그 맥주를 사 온 것을 보고 그때의 감정과 분위기에 벌써 취해 (양치를 끝낸 이후였음에도) 캔맥주를 뜯었고...(하하) 사이즈가 큰 캔이어서 2/3 정도만 따라 마시고 남은 것은 동생에게 넘겨주었다.

  그 맥주를 홀짝홀짝 먹으면서 (양심상 통다리 구이는 먹지 않고 방울토마토를 곁들여서 먹었다.)

남동생, 엄마, 나 셋이서 유튜브 삼매경이었다. (아부지는 시골에 또 가 계신다.)


  그러면서 아부지랑 동생이 '스포티지'차량 한 대를 가지고 매번 타협하는 것에 나의 처지나 분수도 잊은 채, '동생아 니 차 한 대 사야 하지 않겠나'하면서 중고 SUV를 알아볼까 싶다며 헛소리를 했더니..

  엄마랑 동생은, '자네 차나 사세요'라고 하더라..

동생은, 아부지가 꼭 스포티지를 몰 필요가 없다면서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아버지 명의의 중고 모닝을 아버지 드리고 내 차를 새로 사라 했는데..


  뭔가, 나는 (식구들은 아부지가 차에 큰 욕심이 없다고 하고, 현재의 내 형편도 그리 변변치 못함에도) 아부지가 중고 경차보다는, 좀 좋은 중형차량을 모는 게 맞지 않냐고.. (비록 남동생의 성격은 이기지 못하지만) 혼자 고집스러운 생각을 내심 품고 있다.

  왜냐하면, 자식 뒷바라지만 아니었으면 아부지도 거의 40년 가까이 일해 오시면서 좋은 차나 집을 충분히 사실 수 있으셨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버지가 스포티지를 사기 전에 몇십 년 동안 몬 차도 봉고차나 마티즈 정도가 다 였다. 단지 그런 모습들 때문에 남동생이나 엄마는 아부지가 차 욕심이 없다고 보는 거다.

그렇지만 아부지는 종종 나랑 차에 둘이 있을 때, 앞에 가는 차를 보면 '저건 얼마 정도 하노'라는 말씀이나, '옛날에 스타렉스 저걸 참 갖고 싶었다'라는 말씀들을 하신 적도 있을 만큼, 그동안 내심 마음에 드는 차도 꽤 있으셨지 싶다.


  여튼.. 나는 당분간 모닝을 몰아도 되니 아부지랑 동생의 불편함을 덜려면 아부지의 차를 좀 좋은 것을 하나 사드리는 게 맞지 않냐고... 글로나마 공상을 해본다... 이것도 실현되려면 일단 올해 중순부터 일을 다시 시작하고 나서일 것이다.

  역시 돈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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