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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May 12. 2022

부지런히 살아가기+잡담

아침의 두려움, 대접받길 바라는 여자, 우중충할 땐 밝은 옷, 스카프들

글쓰기 시작한 날: 2022.5.12.목.

올린 날: 당일 저녁

(이것(날짜 및 시간)은 종종, 어릴 적에 일기를 쓸 때에 나쁜 습관이라 교육받은 '오늘'이라는 글자(저는 초등학생 때, 일기를 매번 '오늘'이라는 글자로 시작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 엄마한테 지적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가 글에 포함되는 경우에 (하루에 몇 번씩이나 올라올 때도 많은, 복잡한 글을 참고 연달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의 불편함(?)을 줄여보고자 기록해봅니다. 그리고 쓴 글을 작가의 서랍에 몇 날 며칠간 묵혀 두었다가 미숙한 표현이나 맞춤법 등을 수정해서 업로드하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로 쓰기 시작한 날짜를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소제목은.. 크게 의미는 없고, 뭔가 그때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잡아두기 위해 기록하는 용도로 요새는 주로 쓰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아침의 두려움>

  가끔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주어진 하루가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두려움인지 마음속의 압박감인지.. 형용하기 힘든 감정인데 아주 가끔 이런 기분을 느낀다.

오늘 아침에도 그래서, 이 이상한 기분을 (저리 가라) 훠이~ 쫓아버리면서 '그냥 주어진대로 닥치는 대로 충실하게 살아보자'하고, 세수한 뒤 화장대 의자에 앉아 스킨로션을 바르면서 마음을 다독였다.

  점심때 친애하는 J이모와의 약속이 있는터라, 1~2시간 일찍 등산길에 나섰다. 우리(엄마, 나, J이모)의 약속은 특별히 시간을 정하지 않아도 '날만 잡으면' 대개 오후 1시경에 만나고는 해서(그리고 점심식사와 카페코스로 온종일을 보낸다.)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하고, 이모한테 생각해둔 카페 몇 곳과 메시지를 보내니, 이모가 오늘은 정오에 만나자하셔서 등산의 목표지점까진 못 가고 부랴부랴 돌아와서 씻고 늑장 부리는 엄마를 기다리며 글의 초반부를 쓰고 있다.

-여기까지 쓰고 이모를 만나고 저녁이 되어 돌아왔다-


<대접받길 바라는 여자>

  최근에 유투버 진용진님의 없는 영화 시리즈에서, '감성주점'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다룬 영상에서,

남자들이 단지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배려하지 않아도 될 많은 부분을 여자들에게 배려하는 그런.. (영상의) 같은 일자리에 있는 어떤 남성에게는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그런 모습들이 나왔다.

물론 영상의 시청자 입장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

  여튼 영상 밖의 세상에서도 그렇게, 여자들이 굳이 받지 않아도 될 배려를 남자들에게 요구하는 모습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뭐랄까.. 단지 이성'이라서' 바라는 듯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뒤로한 요구라고 할까.. 표현하기는 좀 복잡하다.. 이것은 다름 아닌 내가 몇 달간 활동해오고 있는 사진모임의 단톡방에서의 일이다.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타지로의 사진 모임 일정에 대해 최근에 새로 들어온 얼굴 모르는 어떤 여성분은 대뜸, 픽업을 원하는 눈치였는데 아마 그녀 외에 대부분(혹은 전부)의 참석인원이 남성이었다.

가만히 채팅방에 올라오는 대화를 지켜보는데..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 그녀는 다소 '여우' 같게, 자신이 가까운 위치에서 픽업이 가능한 사람을 계속 찾는 말을 (지켜보는 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불편하게 계속 올렸다.

  대화를 대충 생략하고 올려보면, '(자신을 태우고) 같이 갈 사람 있으면 좋겠다'하면서 그리고 픽업을 해준다는 남성이랑 대화에서 이미 특정 위치까지 가기로 해놓고서는..  다음날 또다시 운영진의 이런저런 (모임 일정에 대한) 이야기에, '00(자신이 사는 지역)에 한 표를 던진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오지랖 넓은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이미 이야기했던 남성이) 픽업해준다는 그곳까지 가는 것마저도 싫은가'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한마디로 자신을 태우러 (상대방이 굳이 안 거쳐도 될) 특정 장소까지 오라는 것이다.

  뭐, 어떻게 보면 그렇게 자신의 편의를 위해 그런 식의 말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능력일 수도 있지만.. 나라면.. 그렇게 가볍게(?) 픽업을 부탁할 수 있을 거 같지는 않다. 단지 내가 여성스럽지 못해서 그런가... 몇 개월간 운전을 해보니 이 일이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선뜻 베풀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식으로 무턱대고 이성의 대접을 바라는 여자들 때문에 전체적인 여자들의 평판이 깎아지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이 내용들은, 쓸데없이 든 생각에서 다소 과장해서 해석한 면도 있을 수 있다.


<우중충할 때는 밝은 옷>

  예전에 우울증 비슷한 것을 앓으면서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헤맬 때, J이모가 미용실에 나를 데리고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이모는, '00아~ 머리 한번 밝게 염색해서 분위기를 바꿔보자~'하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이모의 그러한 영향으로 기분이 꿀꿀하고, 우울할 때 어두운 무채색의 옷을 입기보다 분홍색이나 노란색 같은 밝은 색의 옷을 입는다. 그래도 뚱뚱한 체형 상, 가지고 있는 옷은 검은 옷이 가장 많기는 하다.

  물론 나란 사람 자체의 성격은 긍정보다는 부정이고, 행복보다는 우울감이 더 짙지만..

그렇다고 옷까지 그렇게 우중충하게 맞춰서 입을 필요는 없고, '좀 더 밝아지고 싶다'거나 '인생이 좀 더 화창해졌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담아, 기분이 축 처질 때는 일부러라도 밝은 색의 옷을 입는다.


<스카프들>

  나는 작년 말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명의인 교수님과는 무관하게 피부 자체가 흉터에 취약한 편이라서 결국 목에 약간의 흉터가 남았다. 수술 이후에도 자외선 차단 등 관리에 힘써줘야 되기 때문에 갑상선암 환자들에게 스카프는 필수이다.(EBS에서 나온 '명의'서적 중 갑상선암 외래 현장을 묘사하는 문장 중에,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환자들이 많다.'라는 내용이 있었을 정도다.) 

  수술을 기다리면서, 수술 이후에 한두 개씩 사모으다 보니 색상별, 길이별로 다양하게 모였다. 그리고 얼마 전에 다이소에서 우연하게 발견한 '스카프 걸이' 덕분에 좀 덜 너저분하게(?) 정리하고 편하게 꺼내서 쓸 수 있게 되었다.

  제일 많이 쓰는 것은 위에 줄의 분홍점박이스카프와 노란색왕관스카프, 그리고 제일 오른쪽의 분홍줄무늬에 하늘색배경 스카프이다. 보통 '상의(上衣)' 색상에 맞춰서 골라서 두른다. 밑에 위치한 것들은 대부분 길이가 길어서, 요즘은 좀 더워서 잘 안 쓴다. 그리고 흰색 S자 고리에 걸린 둥그런 목수건(연두색 무늬, 검정색)은 생각보다 흉터부위가 잘 안 가려지고 축 늘어져서 자주 안 쓰게 된다. 이것들은 그나마 목지퍼가 있는 등산복을 입을 때, 늘어진 스카프 자체를 목지퍼를 올려 잡아주면 좀 나아서 보통 등산할 때 주로 쓴다.

 


 --여기서부터 아래 내용(<~>)은 이모를 만나는 중에 떠오른 생각들을 중간중간에 미리 메모해 놓은 것이다.


  <누군가의 반응에 집착 또는 실망하지 말 것>

  특히 단톡방에서 나의 말에 대한 아무런 대꾸도 없을 때, 약간 난감함을 느낀다. 음, 난감함이라기보다는 뭔가.. 불편하다. 괜히 채팅을 쳤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뭔가 내가 잘못 말했나' 싶다.

이는, 사실 당사자들은 별생각이 없더라도 과하게 타인의 반응에 신경을 쓰는 나의 성격 탓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무응답이라도/무시하더라도/기대했던 대답이 없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하려고 한다.

누구의 응답을 꼭 바라던 이전과는 달리, 생각을 바꿔서 '그래, 뭐 남의 무슨 대꾸를 바라고 올린 것은 아니니까. 이미 올린 채팅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고 잊어버리자.'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자신의, 복잡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한없이 많이 쓰고 싶어지면 그냥 브런치를 들어온다.


  <타인에게 바라는 반응, 받아서 좋았던 말 먼저 해주고 돌려주기>

  만약 기대치도 못한 기분 좋은 대답을 받는 경우, 그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 말을 해준 사람에게 똑같이 대해주려고 한다. 이것은 어쩌면 어린 생각일 수도 있는데, '내가 좋은 것은 남도 좋아하겠지'라는 단순한 논리에서 기인한 생각이다. 한편으로는, '나도 내가 받길 원하는 것을 종종 남에게 해주면서 (나도 받고 싶은 마음을) 표현할 때가 있어서' 혹시라도 상대방도 자신이 받았을 경우 기분 좋을만한 말을 한 것이라면 나 또한 상대에게 그렇게 대해주고 싶은 것이다.


  <정구지(부추)를 세 번 정도 베어줘야 뿌리가 단단해진다는 말>

  이것은 이모랑 엄마가 차 안에서 하는 대화 중에 있었던 말 중의 하나이다.

경상도에서는 부추를 흔히, '정구지'라고 하는데 우리 가족의 시골집에도 정구지가 자라서 종종 전이나 겉절이를 해 먹었다. 이모도 농지를 소유하고 계셔서 농사일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가 오고 가던 중, 정구지 얘기가 나왔고.. '정구지를 어떻게 하면 잘 기를 수 있냐'는 말에 '이미 자라고 있는 정구지 사이에 모종을 심어야 잘 자란다'는 얘기, '정구지는 씨가 아닌 모종을 심는 게 더 잘 자란다'는 얘기 등이 오고 갔고 또 한 번,

'정구지는 처음에 몇 번(세 번?) 베어줘야 뿌리가 단단해져서 더 잘 자란다'는 얘기가 오고 갔다.

  별거 아닌 이야기였지만, 요새 글을 쓰다 보니 사소한 말 한마디가 울림(?)이 있을 때가 있다.

정구지를 그렇게 몇 번 베어주면 뿌리가 단단해진다는 이모와 엄마의 말이.. 마치,

인생에서 풍파를 몇 번 겪으면 마음의 기둥이 더 단단해진다는 식으로 들리기도 했다.

  그래서.. 불면증, 갑상선암, 자궁근종 그 외 인간관계에서의 여러 실망들과 어려움 같은, 사소한 질병들과 고난들이, 여전히 무르지만.. 예전보다는 단단해지고 상처에 내성이 생긴 나 자신을 만들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저것 잡담이 길어진 글이었는데..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우아하거나 재밌는 글만 쓸 자신은 없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기에서나마 주절주절 끌적이고 싶다.

그리고 나의 글은 마냥 밝지만은 않은데 이건 성격 탓인 거 같다.

  주로 우울하거나 허전하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글을 쓰니, 행복한 내용은 온데간데없고 삶의 허무와 절망만이 가득할 경우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억지로 기쁨이나 행복의 감정을 가장해서 쓸 자신은 없다.

그리고 쓸데없는 고민들과 공상을 하는 것이 하나의 취미이기도 한 것 같아서.. 글도 이렇게 두서없고 복잡한데, 본디 나 자신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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