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커피와 프리마, 의외의 소심함, 말조심, 갈치조림,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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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커피와 프리마>
(말투)
나는 성격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인지 말소리도 부드럽게 나오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 하물며 개인적으로는 참 부드럽고 어쩔 때는 느끼하게 느껴지는, 서울말투도 아니고.. 억세고 다른 지방의 누군가 들으면 놀라거나 싸우는 줄 알 수도 있는.. 부산 사투리에 한참 물들어 있으니.. 매일 쓰는 말투에도 상냥함이 많이 묻어있지는 않다. (어쩌면 서울의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것은 이번 생에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우스갯소리라면, 서울에 며칠간 가면 말투를 고치기보다는 목소리 볼륨을 낮추려는 편이다.
심지어 혼자 서울에 간다면 밖에서는 전화통화도 삼간다..
<의외의 소심함&말조심>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가면이 벗겨진' 모습들은, 대개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어 보여진다.
사실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적당한 가면이 필요한 데 말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괜히 상처받지 않으려면...
겉으로는 강인해 보였던 엄마도 속은 순하고 여렸다. 엄마의 눈물을 본 횟수가 꽤 된다.
엄마가 울면 나도 항상 따라 울었다. 내가 울 때 엄마가 따라 운 적도 있다. 이는 거의, 우리 가족의 속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J이모와의 가슴 울리는 대화 중에 매번 일어난 일이었다.
나, 아버지, 남동생은, '버럭'하면서 어투가 강한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물론 엄마도 가끔 그러신다.) 이 점은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서로 장난스레 따라 하면서 지적을 하며 은연중에 '고쳐야 할 부분이라' 인지하지만..
성격이 그런지.. 습관인지... 가족 간에는 가면이 다 벗겨지고 없어서 그런지.. 고치는 게 쉽지는 않다.
엄마랑은 요새 (엄마 입장에서는 질리도록) 붙어지내기 때문에 서로 몰랐던 사실도 이것저것 알아가는 중이다. 생각보다 엄마가 이런저런 나의 사소한 말들에 상처를 받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앞으로도 말을 좀 더 부드럽게 하고 크고 세거나 기분 나쁘게 하지 않게 노력해야 할 듯하다. 조용히 살살 말하자.
<갈치조림&공부>
부제에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적어볼까 하고 추가한 단어들이다.
외할머니댁은 경북 청도의 한 시골 마을에 있었다. 아마 초가집이었나 그랬다. 아궁이로 불을 때었다.
외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살아계실 적 놀러 갔던 기억이 조금 있다.
엄마는, 예전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묻는 나에게, '갈치조림'이라고 대답했는데 아마 그때에 듣기로는 '시골 호박을 넣은 갈치조림'이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 집 흙담에는 가끔씩 늙은 호박이 열렸다. 다 같이 방에 둘러앉아 먹었던 그때의 갈치조림에 애호박이 들어갔었는지 늙은 호박이 들어갔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매콤 달달한 갈치국물과 참 잘 어울리던 호박이 같이 들어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갈치 가격이 비싸서 생선은 작은 조기, 고등어만 주로 먹고 있지만..
재취직을 한다면 좀 괜찮은 갈치를 몇 마리 사서 요리를 해드리고 싶다. 물론, 요리 초보라서 엄마의 손길이 조금은 필요할 것 같다..
'공부'는, 어제 J이모와의 이런저런 대화 중 (이모나 엄마나 50대 후반~60대 초반의 세대이시다.),
그 시절에 여자들에게는 공부를 잘 안 시켜주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다.
지금이야, 외동딸만 둔 집안도 많고 오히려 아들은 키우기 힘들다고 딸을 선호하는 지인도 있다.
그렇지만 그 시절에는 꼭 아들을 낳아야 하는 웃지 못할 사정도 많았고..
2남 4녀인 엄마는 막내였는데,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에 가는 그런 (지금은 흔한) 일들이 그때에는 조금 힘들었나 보다. 게다가 엄마는 영어 공부에 대해 지금도 아쉬워하신다. 엄마는 통신대학교 진학 시에 영어가 부족해서 그 과정을 포기했다 하셨다.
J이모는 엄마의 부지런하고 강직한 성격상,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엄마도 원하는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했고.. 비슷한 이야기를 이모를 보고 하는 엄마와 서로 마음을 어루만졌다.
엄마가 아침에 이모를 만나기 전에, '이모도 공부를 했으면 선생님이라도 했을 건데'라고 하는데 나는 그 말에, '에이~ 이모 지금 사장 마누라인 게 더 낫지'라고 했고, 엄마는 '그래도 자신의 인생이 있을 거잖아'라고 했다.
물론 내가 그 시절을 같이 살아보지 않았으니 엄마와 이모에게 완벽한 공감은 할 수 없겠지만..
그래서 그 세대들의 부모님들은 딸이든 아들이든 공부를 열심히 하면 그렇게 물불 가리지 않고 밀어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부모님들 마음에는, '나는 고생해도 자식은 좀 더 편히 살길'바라는 마음이 크셨을 것이다.
그런 갖은 고생을 무릅쓰신 부모님들이, 귀하고 편하게 자란 자식들에게 충분히 대우받으면서 사셨으면 좋겠다. 나도, 올해 중순부터 재기하면 맛있는 것도 잔뜩 사드리고 10년 넘게 아껴서 입으시는 옷들도 좀 새로 사드리고 하고 싶다.. 하하하하하.
특히, 부모님은 항상 철 지난 휴대폰만 쓰시면서.. 돈은 자신들이 거의 다 버셨으면서 부모님들의 폰에는 데이터도 매번 부족하고.. 느리고.. (자식들은 무제한 5G 요금제를 쓰고..)
그런 것들을 좀 괜찮은 것으로 또는, 요금제를 좀 좋은 것으로 바꿔드리고 싶기도 하다.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겠지.... 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