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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May 19. 2022

일탈의 공간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나에게는 아웃사이더 기질이 꽤 있는 것 같다. 음.. 즉, 무리에서 겉으로 도는 특징이다.

대학 입학 시에도 또래의 동기들과는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비록 2011년 약 10여 년 전이지만 그 시절에도 나름 유행하고 여자들에게는 예뻐 보이는 스타일이 있었는데 그런 것을 따라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편한 게 최고라고 촌스러운 단발머리에 머리띠를 질끈 꽂은 채로 신입생 오티에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반면 언제 배웠는지 모르게 알맞게 눈 화장에 마스카라를 한 여자 동기들은 선배 오빠들과도 쉬이 잘 어울렸다.

나는, 네모나 방의 모서리에 앉아서 그들을 지켜보면서 대학생활의 만만찮음을 내심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전이라 잘 기억은 나질 않지만..)


  대학 입학 전 고등학교는 더 갑갑한 공간이었다. 중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가족과 함께 지내고 엄마의 정성 가득한 음식을 먹으면서 집에서 통학을 했었지만, 괜히 '경쟁하면서 공부하고 싶다'는 되도않는 핑계로 타지의 먼 기숙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래서인지 중고교 학창 시절을 함께한 진정성 있는 친구가 없다.

고등학교에는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만 모여있었고.. 다들 꽤 이기적이었다. 성적으로 사람을 판가름하는 이들은 학생 중에도 선생님 중에도 많았다.

고3 때는 주말에도 주위의 눈치를 보면서 집에 가지 못하고 학교에 매여서 잘 되지 않는 공부를 이어갔다. 그 시절에는 그나마 지금보다는 엉덩이가 무거웠나 보다. 자습실 칸막이 책상에서 꿈뻑꿈뻑 졸다가 학교 전체가 소등이 되고 잠겨버려 기숙사 점호시간에 늦은 적도 두어 번 있다.


  그때 나의 일탈의 장소랄까.. 그나마 숨통 트이게 해주는 장소가 몇 있었다. 일단 학교 내에서는 설명하기는 애매하지만, 학교 건물 옆으로 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계단의 제일 높은 위치에는 그냥 1평이 채 되지 않았던 공간이 막혀있어서 잠시 앉아 쉬거나 하늘을 내다보기 좋았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한숨 쉬고 싶을 적에 그 계단에 앉아 좀 쉬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이가 또 있었나 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본 이후로 그곳은 더 이상 나의 쉼터로 이용받지 못했다.

'그것'은 그 공간 테두리 벽에 여성의 나체가 어떤 자세로 그려진 모습이었는데.. 아마 남학생의 소행으로 보였던 것이, 말풍선으로 꽤 음란한 말이 써져있었기 때문이다.

그 남학생에게도 그곳이, 누구도 모를 자신만의 일탈의 장소였다면.. 어쩌면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이 그에게 숨통 트일만한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



  위의 장소에 이어 어떠한 장소를 쓰려하니, 뭔가 같은 느낌으로 오염되어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라..

글을 조금 늘어뜨려 써보려고 한다.('-b-'를 일부러 두 번 썼다.)

다음 장소는 제일 정감 갔었고 행복했던 장소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내가 더 좋은 대학교의 의대에 가길 바라셨겠지만.. 그 정도의 실력까진 되지 못해서 나는 아버지가 계셨던 지방국립대학교의 공대에 진학을 했다.

그러니 아버지의 사무실에도 틈만 나면 들락날락거렸다. 그 시절에는 아버지의 사무실이 '아웃사이더의 회피처'이자 '숨통 트일 장소'였다.

  같은 학교에서 편입 시험을 준비한다고 휴학하던 때에는, 점심시간이면 아버지와 학식을 먹거나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음식을 해 먹고는 했는데, 2년여 전 은퇴하신 아버지와 내게는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추억 중의 추억'이 되었다. 아버지는 공강 시간이면 정처 없이 헤매다 들어오는 내게 종종 녹차를 내려주시곤 했다. 가끔 아버지의 퇴근 시간과 나의 하교 시간이 맞아떨어지면 아버지의 차를 타고 같이 집으로 향하는 포근함도 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는 아부지의 차를 타고 근처의 밀면집에 가서 비빔밀면을 맛있게 먹었다. 물론, 만두도 같이.


  작년 갑상선 수술을 받기 이전에 1년 정도를 근무했던 직장은 근무공간에 비해 인구밀도가 꽤 높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 반 정도까지.. 특별하게 정해진 점심시간이 없어서 점심식사를 하다가도 손님이 오면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래도 화장실은 일이 많이 바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녀올 수 있었는데, 직원들 간 대부분의 공간을 공유하다시피 하니 개인 공간이랄 것도 없었고.. 내가 일하는 안쪽 공간에는 창문이랄 것도 없어서 오히려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문밖을 나갈 때 느꼈던 공기가 꽤 신선할 정도였다.

그래서 굳이 그 시절에 '일탈의 공간'을 꼽자면 화장실이라 하겠다. 또 바로 옆에 붙어있던 스타벅스 매장도 거의 매일 같이 출근 전 나의 숨통 트일 장소가 되어주었다. 화장실을 빨리빨리 다녔어서 갔다 왔다 하는데 2-3분도 안 걸릴 때가 많았지만 그 정도라도 잠시 나갔다 오는 것이 여러모로 기분전환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거 같다.


  이제 '미래 일탈의 공간'에 대해 짐작해보면..

다음 달 정도부터 새로이 돈벌이를 시작할 텐데 가능하면 파트타임으로 일을 구해서 오전 중이나 오후 중에는 여유시간을 두고 살 계획이다.

그러니 여유시간에 (아마 원하는 시간은 오전 시간에) 등산을 가서 늘 가던 '목표지점'에서 햇볕을 잔뜩 쬐고 오는 것이 제일 일등 가는 일탈의 장소이지 싶다.

  일단 흙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가면을 한 꺼풀 두 꺼풀 벗고 온전한 나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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