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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May 19. 2022

생각 외의 난관

서울에서 만난 옷가게 사장님

  지난 서울 여행 중 우연하게 긴 대화를 나눈 빅사이즈 옷가게 사장님은, '(장사하다 보니) 너무 제 취향의 옷만 갖다 놔도 안 되더라고요..'라고 하셨다.

특별히 빅사이즈라고 명시되어있는 옷가게에 찾아가 본 것은 처음이어서 내심 걱정도 있었는데, 의외로 내 취향에 맞는 옷을 몇 분 내에 두세 벌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인터넷 쇼핑몰에서 '77 사이즈 언니들까지 가능'하다는 문구는 이제는 믿지 못할 말들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내 딴에는 나 자신이 88이라 생각하지만, 광고글에는 99까지 가능하단 말이 있어야 구매를 고려하게 될 만큼 그 설명과 실제 옷의 사이즈에 간극이 있다.

  


  어제, 그런 사장님의 이야기가 떠오르게 된 일이 있었다.

충동적으로 소모임(어플)에서 프리미엄모임권 구독료를 지불하고, 처음에는 노래 부르는 모임을 만들었다가

도저히 그 방면에 소질도 없을뿐더러 한 유투버의 혼자 노래하는 영상을 보고, '나도 노래방(연습장) 가서 노래 부르고 싶다'라는 생각에 이끌려 구체적인 계획 없이 모임을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아무래도 이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주제로 이것저것 고민을 해보았다. 이미 한 달치 요금을 선지불하는 시스템이라서 그냥 요금을 그대로 버리기도 아까웠다.


  그래서 만들게 된 모임은, '공부시간, 독서시간을 확보하는 모임'인데 같은 취지의 모임이 바로 옆의 광역시에서 있었고 나도 그 모임의 일원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기본 거리가 대중교통이용 시 1시간 이상 걸려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었다. 만약 우리 시내에서 그런 모임을 할 수 있다면  왔다 갔다 하는 시간 자체를 줄일 수 있으니 여러모로 편하겠다 싶었다.


  바로 어제, 내가 만든 모임의 첫 모임이 나포함 3명이서 진행되었다.

가령 저녁 7시에 모임이 시작한다 치면 1시간은 개인 공부하고 8시에 만나서 인사하고 이후에는 자율적으로 원하는 만큼 공부하고 헤어지는.. 그런 방식이었다.

  누가 보면 '그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나. 차라리 혼자 공부하는 게 낫지 않나.'싶을 수도 있지만, 요즘에는 이렇게 '만남이 만남이 아닌' 모임들도 꽤 보이더라.. '강제성 없는 강제성이랄까..' 한편으로는 요새 사람들이, '쓸데없이 참 외로운가 보다'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도 '사람 대 사람의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는 데는 무책임하거나 서툴고.. 그래서 직접적인 만남보다 이렇게 (너무) 직접적이지는 않고 약간 간접적인 느낌도 있는 만남을 선호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나처럼, 무리 속에 있어도 나 혼자만의 적당한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혼자 집에서 책을 잘 펼치지 못하고 집 밖으로 책들고 나서는데도 한참 게을러진 내게는, '나가서 글 한 글자라도 보고 오자'라는 취지가 강했다.

결론적으로는 오는 길 '15분 정도의 야간 운전'은 조금 힘들긴 했지만, 오랫동안 방치해놓은 책 속에서 깜박 잊어버렸던 전공 관련 중요 지식들을 되새김할 수 있는 유용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모임 중간 참여한 모임원들과의 대화에서 약간 불편함을 느꼈다. 사람을 한 번 보고는 그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여성분은 '기왕 온 김에 마치는 시간까지 정하고 해요.'라고 재고해볼 부분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시간 나면 트래킹도 하러 가요', '(카페에서) 공부하고 나서 보드게임도 하고해요.'라는..

나로서는 조금 난감하게 느껴지는 제안을 했다.

나는 겉으로는 우유부단하고 강단 있지 못하다 보니, 그녀의 그런 말에 '허허. 그것도 괜찮겠네요.'라고 대꾸했다.

  이후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활동을 하는 것은 내(가 모임을 만든) 목적 외의 것이고 모임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모임장으로서 바라지 않았다.


  이곳에 지인이 거의 없다는 타지에서 온 그녀가 정녕 그런 활동을 하고 싶다면.. 자신이 나처럼 구독료를 내고 원하는 주제의 모임을 만들면 되는 것 아닐까..

그게 몇 만 원 하는 것도 아니고.. 월에 14,000원 정도이니 현재로썬 모임원들에게 어떤 목적의 회비도 걷을 생각이 없고 다만 그 돈으로 내공부에 좀 더 충실해질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다.

한편 그녀가 단순히 그런 제안들을 한 것에 내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면도 없잖아 있겠지만.. (괜히 달력을 보니 그날이 곧이긴 하더라..)

좀 신경 쓰이고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모임도 어떻게 보면 사장님의 옷가게처럼, 들어오는 모임원들의 구미가 당기는 면이 있어야 지속될 수 있겠지만서도.. 아직 그런 부분에서 타인의 생각을 읽는 부분이나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나로서는..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은 모임의 극초반부에서 그런 분위기 전환 시도는.. 뭔가 버겁게 느껴졌달까..

  이런 생각들은 최대한 요약해서 '비록 밋밋하거나 지루할 수 있어도 이러저러한 것이 내 모임의 목적이다'라는 식의 채팅을 올리긴 했다.

  뭐, 불편하면 떠나는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이전에 다른 모임을 하면서도 몇 보아서 그리 괘념치 않는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쓸데없이 모임을 만들어서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내가 원인인 것일 테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그 시절에는 모임 본연의 목적을 잊고 사람들의 이런저런 의견에 쉬이 흔들렸다면, (그래서 즐기지 않는 술자리도 몇 번 진행되었다..) 지금은 굳이 나의 목적도 이루지 못하면서 (+내 돈 들여가면서) 타인의 입맛을 맞춰주고 싶진 않은 것이다.

  아마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그래도 여전히 똑 부러지지 못하고 꽁한 성격에, 대놓고는 확실하게 얘기 못하고 애꿎은 브런치에 분풀이라니..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긴 하소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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