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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May 22. 2022

'니가 될 거 같다'라는 말

몇 년 만의 도전

  (서울에서는 '네가 될 거 같아.'라고 할지도 모르지만..ㅎㅎ

부산에서는 '니가'라는 말을 더 많이 써서 수정하지 않고 씁니다.)


  고작 서른이지만, 지난날의 패기가 어디로 갔는지..

그 시절 내가 만났던 서른 살 언니들과 같이 소심해진 거 같기도 하다.

  무엇이든, '일단 해보자'하고 무턱대고 시작하고 부딪힐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예를 들자면,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길에 들어서서 각종 자기소개서(자소서)와 면접 등 복잡한 절차를 앞두고서도 그것들은 으레 해내어야 할 일로 생각하며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임했었는데..


  지금은.. 그 모든 형식 절차가 다 귀찮고 부담스러워졌다.

지난날 공들여 썼던 대입 자기소개서, 취업 자기소개서..

이제 또다시 곳곳에서 대하는 그런 양식들에서는, '과연 이런 걸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두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와 같은 괜한 의문들도 점차 피어오르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공개채용의 방식(?)에서 조금 거리감 있게 복잡한 형식 절차가 간단한 이력서와 1대 1 면접 등으로 간소화되어있는 현 직업군에서, 일해왔던 것에 내심 안도하기도 하다가..

이곳에서도 어떤 크고 작은 기관에 들어가려면 그런 자소서, 면접의 과정을 필히 거쳐야 함에 또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 마주한 자소서는, 지원동기와 업무수행계획, 지난날 이룬 성과 등의 항목에 1,000자 이내로 서술하는 양식이었다.

처음 그것을 마주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덮쳐왔지만, 그런 감정을 누르고 조금씩 써 내려갔다.

브런치에서 두서없이 모호한 글을 많이 써왔는데 자소서에는 그런 나의 우유부단한 면을 가려보려고,

쓰면서도 도통 무슨 말을 하려는지 본인도 파악하기 어려운 장황한 문장에 각종 한자어를 섞어 쓰다가,

첫 번째 항목만 겨우 써 내려가던 중 노트북을 절전모드로 바꾸었다.

  그리고 바로 가족모임에서 돌아와 곤이 쉬고 계시는 엄마 곁으로 가서 한참 누워있었다.

'이놈의 자소서'를 쓴다고 방금 집에 돌아오신 엄마의 소소한 이야기에 귀를 온전하게 기울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엄마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취해 쉬다 보니, 방금 썼던 글은 '역시 좀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엄마의 잠자리 준비를 도와드리고 방으로 돌아와서

써놓은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를) 글에 백스페이스키(?)를 꾹 눌러서 다 지워버렸다.


  그렇게 두세 시간 동안 새로이 쓴 자소서에 맞춤법 확인에.. 곧바로 보내 놓고.. 기진맥진하여 드러누웠지만 그날 오후에 마신 커피 때문인지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해서, 불 끄고 라디오를 켜놓고 있다 보니 어느 순간 잠이 들었나 보다.

참, 자소서 쓰는 중간에 남자 친구의 전화가 왔지만,

'지금 자소서 쓴다고 바쁘다'하면서 바로 끊어버렸다.


  다음날 만난 남친과의 대화에서, '뭐 1명 뽑는데 안 될 가능성이 크다. 다음에 많이 뽑을 때 다시 넣던지..'라고 하는 나에게, 남친은 '왜, 난 니가 될 거 같은데.'라고 했고.

그 순간에는 별로 귀담아듣지 않고 조금 무안하기도 해서 다른 이야기를 하며 흘려들었던 그 말이,

지나고 보니 참 고마웠다.

  꼭 내가 합격하지 않는다 해도, 나를 그만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에 더한 힘을 얻었던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는 합격을 하려면 어떤 욕심 같은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지만..

막상 (결과가 괜찮았던 지난날의) 어떤 면접 자리에서 누구에게 이기려고 한 적은 없고, 그저 나의 생각을 진솔하게 말하려 했던 거 같다.

물론, 그 시절의 어떠한 다짐들이 이후 지켜지지 않은 것들도 있지만..


  또한, '불합격'을 받으면 조금 속상하긴 하더라도

크게 괘념치 않으려고 한다.

  가끔은, 나를 비롯한 소심한 취업준비생들에게,

'(누구보다 열심히 할 자신이 있는) 날 안 뽑다니.. 그럼 뭐, 그쪽 손해인걸요. 뭐.'

라는 자부심(?)이 섞인 자기 위안의 자세도 필요하다고 본다.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언제까지나 자신 뿐이니..

'나'라도 세상의 수많은 창에 '나'를 위한 방패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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