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냥이 May 26. 2022

때로는 엄마도 어린아이처럼

예민한 엄마 vs. 예민한 딸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에서도 서로 감정이 상하는 것은 사소한 말과 행동이 원인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엄마는 때늦은(?) 코로나로 벌써 삼일 째 집안에서 지내고 계시는데 그전에는 매일 같이 등산이나 산책을 해오셨기에..

아마도 현재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이만큼 쌓이셨을 거다.

그리고 무증상으로 지나갈 때도 많은 젊은 층과는 달리 엄마 또래(50-70대)의 코로나를 앓은 가까운 분들은, 다들 극심한 통증과 기침 등 불편을 겪으셨다.

엄마는 남동생과 내겐 크게 표현하시지 않으셨지만, 이웃집 이모랑 통화하시면서 '목이 찢어질 거 같이 아프다'는 이야기도 하셨고 그것을 내가 이모한테 전해 들었다.


  그렇다고 엄마를 제대로 간병할 이도 없었다. 남동생은 타지로 출퇴근을 하면서 오전 7시 반에 나가서 오후 7시 반에 돌아왔으니 스스로도 힘에 부칠 때가 많았을 것이고..

나 또한 백수지만 계획 없던 채용과정에 응시하여.. 엄마한테 뭐 밥 한번 제대로 못 차려드리고 괜히 바빴다고 할까..

엄마는 서운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식재료 장을 봐오는 일을 평소 모녀끼리 같이 해오다가 내가 도맡아 한두 번 했을 뿐.. 식사를 차려드린 적은 거의 없으니.. 고기를 간단히 구워드린 적이 한번 있을 뿐, 따듯한 국 한번 혼자서 끓여내 보지 않은 것이다..

콩나물만 사 오는 게 아니고, 직접 끓여드려야 했는데..

후회해봐야 무엇하리..


  여튼 그렇게 '코로나가 무엇인지'..

나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매일 엄마 냄새랑 엄마 촉감이 그리운데..

그런 우리 사이를 '무형의 무언가'가 억지로 떼어놓는 기분이었다. 비유하자면 옛날 신분이 다른 두 남녀가 서로 연모하면서 먼발치서 지켜보지 밖에 못하는 모습과 비슷하달까.. 뭐, 이런 생각도 몸이 아프지 않은 나만 하는 것이고 엄마는 종종 식은땀도 흘리실 만큼 힘들었다, 괜찮아졌다를 반복하셨다.

  이게 언제 끝날지, 일주일 뒤면 좀 나아질련가.. 하면서.

평소에는 잘만 흘러가던 요일과 시간에 버퍼링이 걸린 기분이다.


  그나마 엄마가 집안에서는 마음 편히 있으시도록 나는 그동안 실외에서 주로 생활해왔다.

그렇게 하루 이틀 흘러가던 중,

때 아니게 모녀의 마찰이 있었던 것이다.

  '여성의 예민함'에 대해 0부터 10까지 수치가 있다면,

엄마는 바이러스로 인한 극심한 고통에 10의 예민함에도 자식들 앞에서는 가라앉히고 숨기면서 지내왔었을 것이다.

반면 나는, 새삼 팔자 좋은 백수여서 0이어도 무방했을 테지만 엎친데 덮친 격인지 몇 년 만의 서류 준비, 자기소개서 작성 그리고 PMS까지 겹쳐 불과 하루 사이에 '예민 수치'가 0에서 8, 9, 10에 육박해진 것..

아마 둘 다 그런 상태라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 감정이 서로 상했다.

오랜만의 외부활동으로 지칠 대로 지쳤지만 엄마와 다투고 또 이런저런 이직에 대한 걱정으로 어젯밤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구글의 검색창을 켜고 '엄마와 싸우는 이유'에 대해 검색했을 정도로 답답했다. 그리고 불과 몇 분 안에 심심하게 위로가 되는 글을 보았다.

 

50도 넘었는데 엄마랑 싸웁니다, 이럴 때요 -

https://www.google.co.kr/amp/m.ohmynews.com/NWS_Web/Mobile/amp.aspx%3fCNTN_CD=A0002798629


이 글 중 가장 위로(?)를 받은 말을 캡처해서 올려본다.


  엄마와 나는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다른 만큼 서로를 사랑하는 데 있어 그 방식은 다르겠지만..

굳이 위 사진의 글을 통해 변명하자면 나도,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거라 착각해서 먼저 사과하거나 배려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거다.


  그래서 바로, 용기를 얻고 엄마에게 사과의(?) 카톡을 보냈다. 엄마가 좋아하는 수국 사진을 인터넷에서 받아서..ㅎ

어제도 왠지 잠을 설쳤는데, 새벽에 CCM을 틀어놓고 작은 조명을 켜놓고 누워있으니 엄마방으로부터 인기척이 들렸다.

괜히 평소처럼 부엌으로 나가면 무안해질까 봐..

뜸을 들이며 남동생이 나오기 전까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이부자리에 누워 잠자코 있었다.

가만히 엄마의 말소리를 들으니 한층 차분해진 것 같았다.

곧바로, 마스크를 낀 채 달려 나가 엄마를 뒤에서 안으니..

'코로나다. 저리 가라.' 하시면서(며칠 전부터 집안에서도 서로 마스크를 낀다) 뒤늦게 덧붙이는 말,

'엄마랑 같이 살아서 좋은 말 못 듣는다. 빨리 나가라.' 해서

나는, '뭐~ 짜증 나서 그럴 수도 있지.'하고 덧붙였다.



  그리고 또다시 산으로.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엄마가 그동안 살아오시면서 겪은 여러 일들과 상처 때문에 엄마도 그렇게 모서리가 날카로워진 걸 수도 있다.

엄마도 겉은 어른이지만 속은 마음 여린 아이일 때가 있다.

그 아이도 나처럼 위로와 관심을 바랄 때가 있을 것이다.

  이제 서른이니 나도 한없이 어린아이만은 아니고,

가끔은 '어른인 척' 할 수 있으니

되도록 나 스스로 어린아이인 채로만 엄마를 대하기보다,

엄마가 힘들 땐 내가 엄마를 안아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보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어떤 클리셰라도 부수어버리는 웹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