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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May 28. 2022

사람은 언제든 고꾸라질 수 있다

2021.10.8.

  '고꾸라지다'를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쳐보면, 1의 의미는 '앞으로 고부라져 쓰러지다.' 2의 의미는 ''죽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 중 제가 제목에 쓴 의미는 1의 의미입니다.

여태 긴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제 스스로 나아갈 길을 잃고 방황한 적이 꽤 됩니다.

어떤 때는 이유를 모르는 어떤 것 때문이었고 어떤 때는 사소한 질병들 때문이었습니다.


  '이유를 모른다'라고 적었지만, 사실은 사람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20대 시절 그리고 서른 살 지금도 타인의 감정이나 시선에 지나치게 의식을 하는 면이 있어서,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일들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고는 합니다.

  그 여파로 어느 날에는 저 자신의 줏대마저 흔들려버려서  

흔히 말하는 '편한 길', '정석의 코스'를 눈앞에 두고 그만, 제 스스로 고꾸라져버렸습니다. 그 시절에 주위의 가까운 가족들도, '제가 왜 그렇게 되어버렸는지'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말이지요.


  좋아하는 또래의 유튜버가 있는데, 어찌 보면 사소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던 일이 그 유튜버의 구독자 수가 100만에 육박하니 어떤 이들에게는 물고 늘어질 만한 일이 되었더라고요.

자신도 그리 될 줄 몰랐던 일인데 그런 반응들이 오고 가니 친구 같은 그 유튜버도 그동안 마음고생을 꽤 한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영상만 보고 댓글은 적지 않던 제가 오랜만에 댓글을 달았었어요.

'000님 같은 부산 출신이라 더 응원하는데, 제발 잘 나갈 때 몸 사려요!!!'

라는 느낌의 댓글이었는데 아마 몇 달 전의 일이라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몇 달 전'의 일도 꽤 오래 전의 일로 느껴지지만, 그의 유튜브 채널 이름을 검색할 때마다 따라 나오는 '000 논란'이라는 연관검색어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더라고요.


  그때 그 유튜버에게 적었던 댓글인, '잘 나갈 때 몸 사려요.'라는 말이.

역시 누군가에게 댓글을 적는 것처럼 말이나 글로 하기는 쉽지만, 실천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누군가 제 삶의 모토(신조)에 대해 한 단어로 요약해서 물어보면, '겸손'이라 하겠습니다.

그만큼 시시때때로 자만하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음... 이 신조가 생긴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보면

'전교 1등을 하는 친구에 비해 물리 점수를 잘 받았다고 내심 기뻐하면서도 겉으로는 차분하려고 했고..'(이런 부분이 과연 겸손에 포함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초중학교에 비해 성적 경쟁이 치열했던 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마저 성적으로 학생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상황에서도, (제 성적이 좋을 때) 그런 나 자신이 남들에 비해 우월하다고 의식적으로 느끼지 않도록 노력을 했달까요.. 고교시절에는 지금보다 더더욱 외부환경의 영향에 휘둘리기 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특히 가까운 어른(선생님)들의 사고방식이나 태도에 의문 없이 따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무슨 연유 때문인지 초등학생 시절부터 '잘난 척하는 사람'을 싫어했습니다.

어쩌면 '잘난 척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같은 아파트에 사는 남자아이들과 주로 어울렸는데, '잘난 척'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이쁜 척'하는 모양새는 남자아이들 무리에서는 때로는 놀림감이 되어버려서, 또래 여자 친구들처럼 '이쁜 척' 한 번 하지 않는 성격이 형성되었나 봅니다.

남자아이들의 무리에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도 남자처럼 굴어야 했달까요..

한 '이쁜 척'하던 여자 친구는 또 학원에서는 '잘난 척'도 잘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 친구로 인해, 저는 '이쁜 척'이든 '잘난 척'이든 기피(?)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아무리 '겸손'이 모토라고 하더라도.. 제 성격이나 삶이 마냥 겸손했던 것은 아닙니다.

모토라고 정한 것은, 아무래도 '잘 지켜지지 않아서'입니다.

'제 고집대로', '원하는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분통이 터지기 일쑤고, 그 화살은 언제나 그런 감정을 일으킨 장본인들이 아닌,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 튑니다..

바로 어제도 '왜 이렇게 성격이 더러운지'에 대해 엄마랑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엄마는, '현실을 모르니까. 좀 약게 살아야 하는데 걱정덩어리다.'라고 말씀하셨죠..(사실 기억이 안 나서 카톡을 올려보니.. 이리 말씀하신 것을 다시 보았습니다)


  또 저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남에 대해 첫인상이나 첫 대화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쉽사리 지레짐작 판단해버리고는 합니다. 상대방에게 뜻하지 않게 저만의 고정관념에 휩싸인 '틀'을 씌워버린 달까요.. 이런 점 때문에 '겸손'이라고 또 한두 번 되뇌이는 순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다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첫인상은 '자기 자신만 알고', '이기적으로' 보였지만..

막상 만나보니 '이런 사람이 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고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던 게 오히려 무안해질 정도'였습니다.



  이제 모토에 대한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다시 제목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최근 2-3일 정도 브런치에도 못 들어올 정도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때 이를지도 모르는 취업 준비 때문이지요. 사실 속마음은 좀 더 쉬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인생의 때가 항상 마음 같지 만은 않게 매사가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음.. 경쟁률은 낮았고 결국 최종 합격을 했고, 물론 그 결과에 대한 만족이나 행복감은 있지만 이제는,

'그 과정을 기다리면서 받는 스트레스', '최종적으로 확실하게 판단날 때까지는 사람의 인생은 알 수 없는 면'이 어떤 면에서는 합격의 기쁨보다 더한 부담을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후자에 대해서는, 아직 신체검사를 기다리는 중이고 또한 첫 출근을 시작하기도 전이기 때문입니다.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냐. 다 잘될 것이다. 이제 다 온 거야.' 하면서 스스로 달래보기도 하지만,

'지난번에도 이렇게 다 왔는데 고꾸라져버렸었잖아..' 하면서 걱정하는 마음이 계속 고개를 듭니다.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라고 하시듯이,

완전히 확실해지기 이전 동안만이라도, 가뜩이나 모자란 마음을 조금이나마 경건하게 해 보아야겠다고

또 매사에 더 신중을 기해야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사실 지키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벌써부터 월급이 당장 들어온 것처럼 이것저것 사고 다니기 바쁘거든요..

  내일은 꼭 산에 다시 올라야겠습니다. 사실, 산신령님이 계신다고 생각해서 혼자 산에 앉아서 속으로 주절주절 거리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 산이 변함없게 해 주시고, 엄마 아픈 거 괜찮아지게 해 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이야기합니다.


  


    나름 (성질이 더러운) 저에 대해 잘 아는 남친이 얘기하길, '너는 바람 같은 사람인데 그런 갑갑한 곳에 들어가서 잘 지낼지, 한편으론 안 갔으면 싶더라.'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이런저런 채용절차의 관습적인 과정에 혀를 내두르며 신음하고 있던 터라, 남친의 그 말이 더 와닿았습니다. '그래, 나는 그렇게 자유롭고 싶은데.. (꽤 보수적인 집단으로 느껴지는) 이곳이 내게 맞을까?..'


  바로 그날에 당장 다음 달부터 같이 일하게 될 상사들을 뵈었는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괜찮았습니다.

오히려 저처럼 '바람 같고 싶은 사람들'이 비교적 출퇴근 시간이 빠른 이곳에서 (제가 다니던 이전의 직장들에서보다) '돈 주는 사람의 눈치'를 덜 보면서 어찌저찌 잘 어우려져 일하다가,

또 비교적 이른 저녁에 퇴근해서 각자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듣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뭐든 시작해봐야 아는 것이지 싶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그곳에서 인생이 어떻게 펼쳐져나갈지 또 어떤 눈물을 쏟게 될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다짐한 게 있다면, 사람을 대할 때 적당한 거리를 두자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저는 때때로 사람에게 너무 휘둘리고 쓸데없이 상처받습니다.

  보통은, '사람을 대할 때, '난로'처럼 대하자'라고 말하지만

이제 여름이니 '에어컨 같이 대하자'라고 하면..

혹자에겐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에어컨을 바로 맞으면서 시원함을 즐기시는 분들에겐..),

저한테는 에어컨 바람을 곧바로 맞는 것이 몸이 시리고 불편한 게 더 클 때가 많아서

'에어컨 같이 대하자'라고 하면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의미입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도, 시작한 이후에도 모토처럼 '겸손'하기란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저는 성인군자가 아닐뿐더러 자주 감정적으로 행동합니다.

어쨌든지 이제는 몸을 잘 챙기고 스트레스를 잘 해소해나가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여전히 나의 건강을 챙기는 것보다 타인의 눈밖에 나지 않는 것을 더 생각하긴 하지만..


  제 어머니는 늘, '독소 해독'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솔직히 암세포도 몸의 여기저기에서 노폐물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은 결과로 생길 수 있다는 면에서 일가견이 있습니다.

엄마는, 스트레스나 피로로 몸에 독소가 쌓이면 산에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운동하면서 그 독소를 해독해야 한다고 매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말은, 불과 작년 갑상선암으로 또 한 번 고꾸라지기 이전에는 그렇게 주의 깊게 듣지 않았었지요.

조금 늦었지만 이제는 엄마 말을 잘 듣고 '독소 해독'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추신. 소제목에 쓴 '2021.10.8.'은 제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날짜입니다. 혹자에겐 뭐 대수롭지 않은 질병일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새로 태어난 날'과도 같고 매번 살아가면서 고난에 부딪칠 때 떠올리고 싶은 날입니다. 그날 수술을 받고 홀로 병실에서 고통을 삭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는데,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혼자였고 이전에 눈치 보던 많은 이들도 없이 혼자만의 고독함과 외로움이 가득 찼었지만..

동시에 그 시간 동안 제 자신은 인생에서 가장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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