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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Jun 04. 2022

화를 삭이는 방법

  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엊그제부터 새로운 밥벌이를 시작한다고.. 오전 중에 바짝 긴장을 한 근무 첫날에는 점심시간 전부터 벌써 배가 고프고 몇 달 동안 없었던, '코에 단내'가 나더라고요..(피곤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납니다..)

역시 백수가 최고로 행복했는데..

집에 와서 먹고 자기 바쁘고 지하철 출퇴근길에서는 눈감고 선잠에 들고.. 집에 와서는 밥 먹을 힘마저 남아있지 않아 잠시 누워있다 겨우 씻고 밥 먹고 오후 10시에 곯아떨어진답니다.. 그리고 다시 오전 6시 기상, 출근..

마치 컨베이어 벨트의 하나의 부품이 된 기분입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도 잠시 생각이 나더군요..


  여느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간 것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아, 오죽하면 남동생이 제 모습을 보고, '일 시작하니 표정이 어두워졌다.(전엔 참 행복해 보였는데..)'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리고 브런치에도 한동안 글을 못쓰고.. 지금도 바로 옆에 노트북이 있지만 배를 깔고 누워 핸드폰으로 써 내려가는 중이랍니다.

원래 브런치에 글을 쓸 때에 '~했다'라는 말투를 더 많이 썼던 거 같아 서론은 이쯤 하고 제목에 쓴 글을 시작해보려 합니다.(밑에서부터 '~~ 했다.'라고 문장을 바꿔 씁니다.)




  오랜만에 목욕탕에 들렀다. 엄마랑 함께 등을 밀자하고 왔는데.. 지금까지 한 10번 이상 왔던 목욕탕이었지만, 세신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만약 이후에 겪게 될 일을 알았더라면, 그 세신사에게 세신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간략히 적자면 세신사는 짜증이 가득한 상태였고.. 때를 미는 내내 전혀 나의 때를 밀고 싶어 하는 거 같지 않았고..

나는 그녀로부터 기분 나쁜 내용과 어투의 말을 들었다.

음.. 솔직히 때를 채 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그냥 베드에서 내려오고 싶었다.

굳이 누워서 그녀에게 세신을 받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이후, 여러 감정들을 거친 후 결론은, 다시는 그곳에서 세신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몇 분 동안, 원하지 않게 되어버린 불편한 서비스를 받으면서 여러 감정들이 스쳐갔다. 화, 분노, 증오 같은..

음.. 그런데 그것을 드러내서 그녀에게 노발대발하면서 따지기보다는.. 그냥 참고 삭였는데 그 과정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를 정도였다. 그 장소에서 벗어나서 엄마랑 대화하면서는 '왜, 굳이 돈을 받으면서 그런 (감정 상하는) 대접을 받았어야 했나.'라는 후회의 감정, 다음엔 세신을 받지 않겠다는 생각 같은 것이 오고 갔다.

요약하자면 사, 오만 원 치의 고객에겐 충성을 다하면서 단지 만원에 묵은 때를 미는 손님은 그곳의 그들에겐 눈엣가시가 되어버린 것.(이런 사실은 이곳과 다른 곳에서 엄마와 이모가 겪은 일로 알았다.)

차라리,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맡겨가면서까지 때를 밀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나는 가만히 누워서 여러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지켜보았다.

음.. 나는 상당히 화가 난 상태였기에 입을 꾹 다문 게 쉽게 열지 않고 있었는데 나 스스로의 (이미 진행되고 있는 세신 중에) 긴장감, 스트레스 상황을 풀기 위해 화 때문에 경직된 입근육을 살짝 열며 나 자신을 진정시켜보려 했다.

그런 면에서 살짝 입을 열며 공기로 욕을 했다.

의외로 이런 방법들이 꾹 입을 다물고 분을 삭이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일터에서 마스크가 참 유용한 점이 많았다.)

  그리고, 그녀에겐 그런 그녀의 기질이나 말투로 인해 주위에 그녀를 불편해하는 이들이 나 말고도 상당히 많을 거라 생각했다.

또한 그녀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짜증만 가득 섞인 사람도 있구나, 하고 느꼈다.

  엄마는, 내게 종종 '세상에 얼마나 이상한 사람들도 많은데.' 하시곤 했는데 나는 그래도 웬만한 사람들은 다 남을 충분히 배려하고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이제는 이번 일과 이런저런 여러 일들을 겪고 나니 사람이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도 다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애써 그녀에게 나의 감정이 상한 것에 대해 따지고 들기보다, '인과응보'라고 생각하며 그녀의 존재 자체에 대해 무심해지려 했다. 동시에 그녀에 대해 무감정의 상태가 되어보려 했다.

만약 그녀가 나나 타인의 감정을 단지 말로써 할퀴어댄다면, 그녀는 굳이 내가 반응해서 화를 돌려주지 않아도 언젠간 똑같이 돌려받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살아온 삶에 대해 책임을 질 사후세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겉으로는, 그녀에게 수고하셨다라고 했지만,

이미 그녀에게서 나의 마음은 떠난 지 오래였고,

그녀와 내가 다시 눈을 마주칠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너무 안 좋게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그녀와 그런 일을 잊으려 했다.


  엄마는 내가 세신을 받기 시작했을 때에 (자세한 상황은 모르시고) 그녀를 배려하는 마음을 내어 2주 정도 목욕을 하지 못한 나의 상태에 양해를 구하며

여태껏 내가 다른 목욕탕에서 세신을 받으며 보지 못한 팁이란 것도 챙겨주었다..

(이미 그녀의 화와 짜증으로 나는 감정이 상한 상태였다.)

내입장에선 '정말 안 될 곳'이었다.

다시는 그곳에서 세신을 받지 않을 것이다.

엄마랑은 농담으로, '만원 등 미는 손님 안 받음'이라고 써놓아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뭐, 그래도 10번 중 단지 한번 이런 분을 만났을 뿐이지,

나머지 분들은 참 좋고 감사했다.

그냥 지나가다 새똥을 맞은 격이라 생각해야겠다..


 



  이렇게 쓰긴 했지만,

오랜만의 목욕은 참 좋았습니다.

역시 (목욕탕과) 멀어지니

(일을 시작하고) 할 수 있는 시간 동안만 즐길 수 있게 되어

지난날 동안 지루할 때도 있었던 목욕탕 일정이

조금 더 아쉽고 행복감이 더 강하게 느껴졌달까요.

그리고 부정적일 때엔 그 극단을 달려버리게 되는 성격이라..

글에선 그렇게 썼지만, 사실 살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개 나보다 더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고 은근히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두서없이 쓴 글에.. 오늘 갔던 바닷가 사진을 올리고 이만 자러 가 보겠습니다.

다들 평안한 밤 되세요.

송미횟집에서 - 장어구이(남동생, 엄마와)
부산 기장 죽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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