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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Jun 05. 2022

비 내리는 산속

투명우산을 쓰고

  어제부터 날이 흐리더니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엄마는 그래도 해야 하는 (하루 이틀 동안 쌓인) 빨래를 아침에 돌리셨고, 평소에 자주 빨래를 널어놓는 동남향의 거실 베란다 말고, 아마 반대쪽 그러니 북서방향의 부엌 베란다(오후에는 이쪽으로 햇볕이 들어온다)에 빨래를 너셨다.

내가 다시 밥벌이를 시작한 지 이틀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같이 해오던 집안일은 어느새 엄마의 몫이 많아져서 괜히 죄송한 맘에 내가 빨래를 널려니, 굳이 엄마가 하신대서 대신 엄마의 옷 중 떨어진 부분이 있어 바느질을 해드렸다.

  엄마는 어제 커피를 대중없이 먹어 밤새 잠을 설치셨다고 하셨다. 엄마가 오전의 집안일을 대강 끝내고 침대에서 잠이 드신 후, 나는 부지런히 등산 갈 채비를 했다.

백수일 때에는 이틀에 한 번은 꼭 등산을 하며 산 공기를 마셨는데, 이제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등산을 할 생각이다.

직장이 위치한 부산 시내의 공기는, 집이 있는 곳의 공기와 상당히 달랐다. 집 근처와 집 뒷산의 산 공기도 다른데.. 오죽하면 퇴근하고 집 근처에 오니 코가 뻥 뚫렸다.

아무래도 도심에서는 살 수 없겠다, 싶었다.



    집을 나서기 전 베란다 창문을 열어보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산에 오르는데 우산과 등산스틱 둘 다 들긴 번거로우니 우산만 챙겼다. 마침 선물 받은 투명우산이 있어서 이것을 쓰면 우산에 풍경이 덜 가려질 거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카톡 캐릭터 '죠르디' 우산이다.

(애벌레 같이 보이지만 실은 공룡 캐릭터이다.)

걸어가는 길에 잠시 서서 위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에 나온 포장길은 산을 오르는 입구로 가는 길이다.

산에 들어서니 더욱 비가 많이 와서 이후로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신선한 공기를 잔뜩 들이켜고 녹색 나뭇잎들에 비가 떨어지는 모습을 구경했다.

  날이 흐려 어두컴컴해진 산속에 있으니 마치 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우리 뒷산은 소나무가 많다. 또 편백나무도 있다.

그 외의 나무도 있지만 이름을 잘 모른다.

녹차나무가 양옆으로 심어진 산책로도 있는데 근래 몇 달 동안 여러 사람들이 녹찻잎을 따는데 여념이 없었다.

사람들의 손톱자국이 남은 채 자란 녹찻잎의 모습들이 꽤 보인다. 우리 부모님도 몇 년 전까진 한창 녹찻잎을 땄었는데, 기껏 말려서 차 재료로 만들어놓고 결국 잘 먹지 않아 따는 일을 그만두고 요새는 등산만 즐기고 계신다.

  

  비 오는 산은 고요해서 좋았다. 예전엔 비가 오면 하려던 등산도 비를 핑계로 안 하며 게으름을 피웠는데, 오히려 비 오는 날 두어 번 가보니 참 좋았다.

공기의 밀도가 더 꽉 채워진 느낌이었고 식물들도 땡볕 아래서보다 한층 생기도는 모습이었다.

누가 툭툭 건드리는 것처럼 빗방울에 잎사귀들이 요동쳤다.

참, 오랜만에 무당개구리도 보았는데 그리 크지 않아 무섭지는 않았다.

  (인제 다시 직장인이라 그런지..) 벌써부터 다음 주말을 기다린다. 그때 또다시 산에 올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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